대체로 첫번째 시가 좋은 것일까?
이유도 없이 슬퍼졌다.
아니 나는 그런 작은 행성에 살지 않아서 슬펐다.
이 커다란 행성에 사는데도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싱거운 손사래를 칠 수 없어서, 대신 내 앞에는 헤엄쳐도 건너 갈 수 없는 바다가 있어서 슬펐다.

소행성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의자만 뒤로 계속 물리면 하루종일 석양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너와 나는 이 별의 반대편에 집을 짓고 산다. 내가 밤이면 너는 낮이어서 내가 캄캄하면 너는 환해서 우리의 눈동자는 조금씩 희미해지거나 짙어졌다.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적도까지 몇 발자국이면 걸어갈 수 있다. 금방 입었던 털외투를 다시 벗어 손에 걸고 적도를 지날 때 우리의 살갖은 급격히 뜨거워지고 또 금세 얼어붙는다. 우리는 녹아가는 얼음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나는 네게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못 보고 지나친 유성에 대해 행성의 반대편에만 잠시 들렀다가 떠난 외계인들에 대해, 너는 거짓말하지 마, 라며 손사래를 친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네 꿈속의 유일한 등장인물은 나. 우리는 마주보며 서로의 지나간 죄에 밑줄을 긋는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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