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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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었다. 유홍준교수님의 책을 이리 책꽂이에 쭈욱 꽂아 둘 줄을. 처음 이 시리즈가 나왔을 때 어려웠다. 가보지 않은 곳을 몇 장의 사진과 글들로 아둔한 머리와 가슴을 채울 수 없었다. 더불어 아직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문화 유산을 찾는다는 건 부모에겐 노동이고 아이들에겐 담장 없는 고문이었을게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보다 나를 위한 시간으로 박물관을 찾고, 부러 경주를 찾아 가고 길 가는 길에 절이라도 하나 있을라치면 불쑥 들어가 보게 되었다. 불교 신자는 물론 아니다. 나이가 40줄을 넘어가면서 불교란 것이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종교적 의미보다는 수양의 학문, 철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 근처의 가까운 길상사를 교회보다 많이 찾으며 오솔길 사이 걸린 법정 스님의 글귀가 가슴에, 심장에 콕콕 박히는 날이 많아졌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대로 흥겨우면 흥겨운대로 묵지룩할도 발걸음은 절로 길상사를 찾아가는 것이 신기했다. 그곳에 가면 내 마음이 보였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내 마음이....


그래서 사찰이 좋았다. 물론 커다란 부처님이 계시는 불당보다 절이 있는 그곳을 좋아했던 거 같다. 지나는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에 귀를 열고 오롯한 산중의 자리매김에 눈을 열고 낮으막히 울리는 범종 소리에 마음을 열어보곤 했다. 이런 느낌 속에 만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번외편인 산사 순례는 너무도 반가웠다. 게다가 우리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어느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절이 어떤 차이로 등재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인도와 중국엔 석굴사원이 있고 일본엔 사찰정원이 있고 우리나라엔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있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산사가 있다는 말에 그 차이점이 확 와 닿았다.


산사 순례에는 모두 22곳의 사찰이 소개되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속의 산사들을 모은 별권으로 이번에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통도사, 법주사, 마곡사는 아직 답사기가 따로 없어 앞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터이다. 차례를 주욱 훑어보며 내가 다녀온 곳을 꼽아 보았다. 올봄에 홍매화를 보러 동생과 다녀온 순천 선암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남편과 여행중 들렸던 고창 선운사도 보였다. 이 많은 곳 중 딱 두 군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어렵다고 느꼈던 전력이 있던 터라 이 두 곳을 먼저 읽었다. 사전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두 곳에 대한 부분을 찾아 읽고 갔던지라 여행 중 느꼈던 구석구석이 새로운 추억이 되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스치고 지났던 부분들도 지난 사진을 꺼내 살피면서 읽다보니 또다시 새로운 느낌이 팍팍,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음 속에 작은 꿈을 심어 본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고이 손에 들고 사찰 이름 옆에 빨간 동그라미 그려가며 책 속 산사를 모두 찾아보게 될 그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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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작은 집 창가에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3
유타 바우어 글.그림, 유혜자 옮김 / 북극곰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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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아서 한 마디 두 마디 말을 배우는 때는 참 신기하다. 귀로 듣고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아기에게도 신비로운 경험일 것이다. 거기다가 음을 얹으면 노래가 된다. 토닥토닥 등을 쓸어주며 들려주는 가락은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숲 속 작은 집 창가에’를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할머니를 통해서인 것 같다. 마치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반복되는 스토리 구조의 내용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집 앞에 나서 서 있는 작은 아이는 마치 나인 듯 얼마나 친절한지, 거기다가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와서 ‘빵’ 쏜다고 하는 장면은 극적인 손짓까지 덧붙여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었다. 나 또한 내 아이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려주었었다.

주홍빛으로 물든 숲속, 저녁을 짓는지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는 작은 집을 토끼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풍경이다. 작은 집 창가에 비친 집 주인의 모습은 토끼처럼 보이지 않는다. 집 밖의 토끼는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걸까?

책 장을 펼치니 눈 덮인 풍경이 펼쳐진다. 표지와 다른 갑작스런 변화에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창으로 넘겨다 본 집 주인은 그대로이다. 주인장은 바로 노루다. 우리나라 노래에선 토끼인데 왜 노루일까? 작가인 유타 바우어는 독일인인데 독일의 노루에 대한 느낌이 우리나라 토끼와 비슷한 걸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노루는 눈이 내린 쌀쌀한 바깥을 왜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것도 창문을 활짝 열고 말이다. 아마도 무슨 소리를 들었나보다. 그것도 아주 다급한 소리를 말이다. 다음 장에 토끼가 마치 허공에 뜬 듯이 달려오고 있다. 얼마나 급했는지 사람처럼 서서 마구마구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그란 눈망울과 손에 묻은 눈이 날리도록 두드리는 모습이 급하긴 어지간히 급했나보다. 토끼는 입이 뒤집어 지도록 통 사정을 한다. 사냥개를 앞세운 사냥꾼이 자신을 땅 소려고 한다고.

파자마 바지 바람에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숟가락을 든 채 토끼랑 똑같은 동그란 눈망울의 노루는 기꺼이 토끼를 안으로 들인다. 사람인 사냥꾼의 등장은 종이 다른 두 동물이게 동지애를 심어주었나 보다. 거기다 안으로 들인 것 뿐 만이 아니라 손까지 꼬옥 잡아준다. 사냥꾼에게 쫓기며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 토끼의 콩쾅거리는 가슴은 노루의 따스한 손길에 어느새 안정을 찾아간다. 대학 시절 학교 앞에 있던 카페 이름이 생각난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어느새 노루의 따스한 마음이 토끼에게까지 전해졌나보다.

토끼와 함께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 노루. 또 누군가의 다급한 소리를 들은 걸까? 그렇다 바로 여우다. 그런데 토끼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혀를 빼물고 바들바들 떨며 노루네 문을 두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집안에서 여우의 등장에 더 몸서리치며 떨고 있는 토끼가 왠지 더 다급해 보인다. 결국 노루의 침대 속으로 숨어든 토끼를 뒤로하고 노루는 여우를 집안으로 들인다. 어찌나 급하게 들어왔는지 문도 채 닫지 못하고 들이닥친 여우의 저 눈빛...... 노루는 여우에게도 손을 내밀지만 토끼는 차마 손을 잡기엔 너무나 겁이 난다. 숙적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먹이 사슬의 위층을 만났으니 말이다.

이제 서로 손을 잡은 노루와 토끼, 여우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정답게 카드 놀이를 즐기는 표정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 코를 킁킁거리는 사냥개를 앞세운 사냥꾼의 등장. 아직 집 안에선 사냥꾼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등불이 흔들리도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을 했을 것이다. 사냥개는 마치 제 할 일을 다 마친 듯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사냥꾼은 누군가에게 쫓겨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란다. 과연 노루는 사냥꾼을 집 안으로 들일 것인가?

구석구석 집 안으로 흩어져 숨은 친구들을 뒤로 하고 노루는 문을 활짝 연다. 노루가 무엇을 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손을 잡을 것이다. 물론 허기에 지친 사냥꾼에게 맛난 음식도 대접하고 말이다. 노루가 내민 것은 단순히 손이 아니다. 마음까지 내어 준 것이다.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뒤편에는 악보가 나와 있다. 율동 그림까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가르쳐 주던 율동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이 비슷하다. 정말 이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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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미술관 그림책이 참 좋아 9
유주연 글.그림 / 책읽는곰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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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즐기는 시간은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1층, 2층 3층 100여 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도 10분 만에 둘러볼 수도 있고 2시간을 볼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작가를 작품을 얼마나 아느냐에 달렸다. 전시장에 가기 전에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보인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진다는 것이다.

‘뒤죽박죽 미술관’이라는 제목을 보고 맨 먼저 든 생각은 난감함이다. 미술에 거의 문외한인지라.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알고 있는 작가와 작품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다행이 표지에서 알고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뭉크의 절규가 가운데 보이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밀레의 이삭줍기, 다빈치의 모나리자, 고흐의 해바라기, 앤디 워홀의 통조림까지 낯이 익다.

책 표지 안쪽엔 표지에서 만난 그림들의 원화가 전시실처럼 모여 있다. 표지에서 찾아낸 그림들을 확인하곤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알 수 없는 뿌듯함이라고 할까? 표지와 실제 명화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속표지에 걸린 푯말. ‘정기휴관일’. 왜 정기휴관일인지 첫 장을 들추면 알 수 있다.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시관은 주말에 복작거리고 월요일에 휴관이다. 그 휴관일에 몰아친 회오리바람은 미술관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을 보니 왠지 오즈의 나라로 날려간 도로시가 생각난다. 온통 난장판이 된 미술관을 치울 사람은 경비아저씨뿐이다. 가냘픈 몸매로 구석구석 누비며 청소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안쓰럽다. 갑자기 들려오는 울음소리. 그 주인공은 모나리자다. 우아한 얼굴에 얹힌 송충이 두 마리. 이 노릇이 어떻게 된 것인가? 난감한 상황은 비난 이 뿐이 아니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것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도 경비 아저씨도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 문을 열어야 하는 미술관인데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눈에 익은 그림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은 재미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 보며 박장대소하는 이삭줍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호쾌하기까지하다. 없어진 그림 또는 덧붙여진 그림들의 조각들은 모두 미술관 작품들이 일부다. 백남준의 텔레비전 작품이 이삭 줍는 여인네들을 동네 찜질방 아줌마들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서로 이가 엇나간 부분을 맞추어 보는 재미가 넘친다.

그 중 최고의 이변은 바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심각한 표정의 정체가 정말 저 이유 때문이었을까싶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보는 사람마다 폭소를 터뜨리기에 충분한 아이디어다.

부지런한 아저씨 덕분에 이 소동의 범인인 회오리 바람이 잡힌다. 아저씨의 호통에 또다시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고 그림들은 제자리를 찾는다. 단 한 작품만 빼고. 회오리 바람과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갈 것은 무엇일까? 기막힌 반전이다. ‘절규’라는 작품이 왜 ‘절규’인지를 보여주는 유쾌한 아이디어에 감탄한다.

다음에 미술관에 가면 나 혼자만의 뒤죽박죽 미술관을 만들어 볼게 될 것 같다. 미술관에 가고 싶게 만드는 유쾌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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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 탐정단이 달려간다 별숲 동화 마을 2
김일옥 지음, 최덕규 그림 / 별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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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해 전에 한 대학의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동네 탐정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의 탐정 소설을 읽으며 자란 세대이기에 오랜만에 듣는 ‘탐정’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었다. 학교 과제에 학원 숙제에 치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탐정놀이는 물론 탐정 소설을 마음껏 읽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태인지라 ‘탐정’에 대한 묘한 향수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치우 탐정단이 달려간다’를 접하게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방학동이나 빨래골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익은 지명이라 특별하게 느껴졌다. 꼭 가까운 지인이 텔레비전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열었다.

탐정단이 결성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집에서 일하는 아빠를 피해 간 곳이 마을문고이고 그곳에서 늑대가면 아저씨를 만난 것이다. 아빠의 화를 피할 곳이 마을문고라니. 현실같지 않은 이야기다. 아마 아주 사실적인 현실이라면 PC방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민성이나 친구들은 참 행복한 곳에 사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늑대 가면 아저씨에게 하나하나 탐정에 대해 배우고 연습하게 된다. 도깨비 대장인 치우천왕에서 비롯된 치우탐정단의 이름을 만들고 각자 자신의 개성을 가미한 암호명을 짓는다. 마치 제임스 본드가 007이라는 암호명을 가졌듯이. 탐정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살펴보니 멋지다.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고, 보는 일에 궁금증을 가지며 일지를 작성하고 메모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탐정이라고 하면 혼자서 아니면 조수 한 명 정도만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알았는데 치우탐정단의 규칙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 맺기가 주요한 것 같다. 거기다가 주변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호기심은 주변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자주 만나던 마귀할멈이며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건물들, 아이가 우니 벨을 누르지 말라는 메모, 배가 나온 버려진 고양이들 등등. 처음부터 없었던 것들이 아니다. 단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내가 속한 마을이고 한 마을에 몇 년을 함께 사는 이웃이지만 타인 이상의 무관심으로 살았던 것이다.

치우탐정단이 하는 일들이 어른들에게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의 피난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치우탐정단은 공부해서 얻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 보는 주변 환경과 사람을 조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점을 찾으려 고민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책만 파고드는 공부 벌레가 얻지 못한 큰 지혜일 것이다. 치우탐정단이 어떤 사건을 맡아서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탐정단의 공적을 기리자고 작가가 책을 쓴 것도 아닐테니까. 치우탐정단에는 숨 쉬며 살아있는 행복한 아이들이 있다. 떠밀려 세상으로 밀려나가기 보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발걸음을 걷도록 해야 할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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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마수리 요걸까? 조걸까?
도브로슬라브 폴 글.그림, 이호백 옮김 / 재미마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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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마수리 요걸까? 조걸까?

도브로슬라브 폴 / 재미마주


울 아이들의 첫 번째 장난감은 책이었다. 어른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앙증맞은 책이었다. 표지도 폭신하고 두툼해서 아이들이 다치지도 않고 물고 빨고 해도 손상이 되지 않는 하드보드형 책이었다. 글을 읽진 못하지만 그림과 색깔을 즐기고 책장을 펄럭거리며 넘기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즐거운 놀이였다. 하지만 책은 그저 책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그저 책이었다. 쌓거나 펼치거나 하는 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 서점에 가보면 유아를 위한 다양한 유형의 책들이 있다. 천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욕조에서 볼 수 있도록 물에 젖지 않는 책도 있고 누르고 소리나고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우리 아이 때는 왜 저런 책들이 없었을까 살짝 부럽기도 하다.

표지부터 회색 빗금이 죽죽 그어진 책을 만났다. 제목도 요상하게 ‘수리수리마수리~’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요걸까, 조걸까’라는 제목으로 봐서는 무슨 선택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 대한 궁금증은 띠지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책 속에 내장되어 있는 매직필름을 통해 두 가지 그림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왠지 르네 마그리트의 ‘백지 위임장’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숲 속에 말을 타고 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3차원 그림처럼 수직으로 나누어져 있는 그림 말이다.

먼저 표지를 펼치니 왼쪽에 회색 줄이 있는 필름이 들어있다. 오른쪽에는 언듯 보기에 두루미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필름을 꺼내 흰 선 위에 회색선이 올라 오도록 얹으니 가위의 모습이 보인다. ‘오호~’하는 탄성과 함께 얼른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그림에는 다른 색의 줄이 있는데 그곳에 필름을 올려 놓으면 다른 그림이 등장한다. 그런데 첫 장부터 문제가 생겼다. 초승달처럼 예쁜 달 위에 필름을 올려 놓으니 갈색의 무언가가 나타난다. 새우인가 하고 보니 크루아상이라는 초승달 모양의 프랑스 빵이었다. 하지만 주부로 제과점을 들락거리는 나는 알아보지만 아이들은 새우란다. 그리보니 새우같기도 하다. 요즘엔 껍질을 까서 판매하는 칵테일새우가 있는데 그 모양같기도 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체코 사람으로 유럽의 문화권에선 일상적인 크루아상을 떠올리는게 당연했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라 할까?

다음부터는 먼저 무슨 그림인지를 묻고 필름을 올려 놓으면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를 추측해 보는 놀이를 해 보았다. 대부분 전구, 모자, 제비, 잠자리 등 그림을 보고 알아보는 것은 잘해 낸다. 그런데 어떤 모양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름을 올리면서 약간 김이 빠졌다. 어떤 선에 올려 놓아야 원래 모야에서 변형이 되는지 충분히 숙지가 되지 않으면 그냥 휙휙 지나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림을 통해 본 모양 그대로 필름을 잘 올리고 옆으로 살짝 옮기면서 새로운 모양이 딱 등장해서 재미가 배가 되는데 잘못 올리면 바로 다른 모양이 나온다. 어른이 먼저 몇 번 해 본 후에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림의 변화에 있어 비슷한 형태에서 추론할 수 있는 그림(잠자리와 헬레콥터, 물고기와 로켓, 우산과 버섯 등)보다는 전혀 새로운 형태로 전환되는 그림(악어와 톱, 침대위의 아기와 해)을 더욱 좋아한다. 스스로 필름을 옮겨보면서 한동안 재미있게 논다. 흡사 까꿍놀이를 떠올리며 ‘수리수리마수리 아브라카다브라~’를 외치며 공부가 아닌 놀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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