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 탐정단이 달려간다 별숲 동화 마을 2
김일옥 지음, 최덕규 그림 / 별숲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에 한 대학의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동네 탐정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의 탐정 소설을 읽으며 자란 세대이기에 오랜만에 듣는 ‘탐정’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었다. 학교 과제에 학원 숙제에 치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탐정놀이는 물론 탐정 소설을 마음껏 읽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태인지라 ‘탐정’에 대한 묘한 향수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치우 탐정단이 달려간다’를 접하게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방학동이나 빨래골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익은 지명이라 특별하게 느껴졌다. 꼭 가까운 지인이 텔레비전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열었다.

탐정단이 결성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집에서 일하는 아빠를 피해 간 곳이 마을문고이고 그곳에서 늑대가면 아저씨를 만난 것이다. 아빠의 화를 피할 곳이 마을문고라니. 현실같지 않은 이야기다. 아마 아주 사실적인 현실이라면 PC방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민성이나 친구들은 참 행복한 곳에 사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늑대 가면 아저씨에게 하나하나 탐정에 대해 배우고 연습하게 된다. 도깨비 대장인 치우천왕에서 비롯된 치우탐정단의 이름을 만들고 각자 자신의 개성을 가미한 암호명을 짓는다. 마치 제임스 본드가 007이라는 암호명을 가졌듯이. 탐정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살펴보니 멋지다.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고, 보는 일에 궁금증을 가지며 일지를 작성하고 메모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탐정이라고 하면 혼자서 아니면 조수 한 명 정도만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알았는데 치우탐정단의 규칙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 맺기가 주요한 것 같다. 거기다가 주변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호기심은 주변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자주 만나던 마귀할멈이며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건물들, 아이가 우니 벨을 누르지 말라는 메모, 배가 나온 버려진 고양이들 등등. 처음부터 없었던 것들이 아니다. 단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내가 속한 마을이고 한 마을에 몇 년을 함께 사는 이웃이지만 타인 이상의 무관심으로 살았던 것이다.

치우탐정단이 하는 일들이 어른들에게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의 피난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치우탐정단은 공부해서 얻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 보는 주변 환경과 사람을 조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점을 찾으려 고민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책만 파고드는 공부 벌레가 얻지 못한 큰 지혜일 것이다. 치우탐정단이 어떤 사건을 맡아서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탐정단의 공적을 기리자고 작가가 책을 쓴 것도 아닐테니까. 치우탐정단에는 숨 쉬며 살아있는 행복한 아이들이 있다. 떠밀려 세상으로 밀려나가기 보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발걸음을 걷도록 해야 할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