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악플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어떤 이유도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어대는 악성댓글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저건 일종의 자해가 아닌가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을 때 그 몸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저런 식의 댓글을 달려면 최소한 하루의 반은 투자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자기의 일상을 낭비할수 있을까도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의외로 간단한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교신하고 싶은데,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은데, 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고립감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외부에 대한 적개심을 낳는다. 이 적개심은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자신을 증식해 간다. 이보다 더 심각한 자폐 증세가 있을까? 이것은 내부로 향하면 자살 충동이 되고, 밖으로 향하면 원인도 목적도 없는 공격 심리가 된다. - P168

최고로 좋은 운세란 운명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이름하여, 운명애 (Amor fati)! 나쁜 운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아니라, 설령 운이 좀 나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것을 인생의 자산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개발하는 것, 다시 말해 화를복으로 바꾸는 습관 혹은 훈련 말이다. 그런 식으로 운세가 좋으면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다가오는 지금 여기의 삶을 긍정할 수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운세가 어디 있으랴.  - P183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은 스승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는 벗일 뿐이라고 했다.
- P189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설령 입시를 위한 것일지라도 선생님이 공부에 미치면 자연스럽게 그 배움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 - P191

그러므로 스승이란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다. 배움을 가르치는 이,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 그가 곧 스승이다. - P194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 P213

근대 교육은 분석과 비판을 주요 방법으로 삼는다. 공교육이든대안교육이든 지식이란 대상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이거나 자신과 다른 입장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다 보면, 개개인의 다양한 차이나 이질성은 무화되어 버린다. 오직동일한 규준 위에서의 위계와 서열화만 가능할 뿐이다. 그와 더불어신체를 통해 터득되는 직관과 충동, 잠재적 열정 등은 봉쇄되고 만다. - P228

지금 같은 시대에 그냥 내버려 둔다는 건 청년기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설치해 놓은 빽빽한 그물망에 그대로 걸려드는 걸 의미한다. - P66

카프카가 말했듯이,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 P66

그때 자유란 ‘그 억압에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는가‘ ‘그에 맞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법이다. - P66

배움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자들과의 향연, 그를 통한 존재의 대반전, 그것이 곧 배움이다. - P75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가르친다 하더라도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
이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바가 가르치는데 자식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
이는 자식이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배우기는 하되 힘써 노력하지 않는 것
이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유영 - P78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 P140

생긴대로 쓰고, 쓰는 만큼 살아간다 - P145

번뇌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때가 바로 공부할 때라고, 번뇌와 깨달음은 동시적인 것이라고.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치다. - P149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에게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연습은 동일하다." 에피쿠로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