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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제목이 인상깊다. 구디. 당신이 아는 그것 맞다. 구로디지털단지. 그렇다면 얀다르크는?
1인칭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여주인공 이름이 사이안. 애칭이 얀으로 통한다. 불우했던 학생시절 잔다르크의 환영을 본 여주인공은 잔다르크의 앞에 자신의 이름 얀을 달았다. 그래서 구디 얀다르크다. 구로디지털단지는 구로공단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책이 노동의 한복판에서 부당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처절하게 외치는 노동이야기 일것이라고 짐작했다. 결론적으로 맞았다. 여주인공은 구디와 가디(가산디지털단지, 구 가리봉)를 오가며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일을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숨을 헐떡였다. 이야기는 현재 시점인 40살의 여주인공, 전성기를 맞이한 30살의 여주인공, 대학교를 갖 졸업한 20살 여주인공의 시점을 정신없이 오고간다. 초행길라면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자. 좀 헷갈린다.
처음 소설을 펴 들면 사회적 약자인 40대 여주인공이 보인다. 공감했다. 이 책을 읽으며 2000년대 후반 구디에서 IT업계 프리랜서로 일했던 나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주인공의 삶은 나와 닮아있었다.
2000년에 난 서울로 상경했다. 컴공을 전공한 나는 IT업계에서 일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은 일산 사무실 앞 골목의 작은 TV 앞에서였다. 일산과 강남을 오가다가 여의도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내 나이 23살이었다. 웹하드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던 사내후배의 이야기가 이 소설로 인해 다시 기억났다.
꺾어지기 시작한 것은 26살 사내정치에 실패에서(줄을 잘못 서서) 회사가 망하고 오갈데 없어진 후였다. 나는 노량진에서 고단한 생활을 시작했다. 노량진에서 그래픽분야에 경력을 쌓은 후 구디에서 프리랜서 활동을 펼쳤다. 아파트형 공장이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빌딩숲을 오가며 사내정치라는 것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구디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줄을 잘 서려고, 회식자리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스마트폰이 발달하며 내가 몸 담았던 IT업계는 줄줄이 도산했다.
30살이 되던 해 해외 취업을 하고 1년여의 해외생활을 정리한 후엔 강원도 산골로 내려왔다. 강원도에서도 비슷했다. 처음엔 크고 화려한 회사에서 불렀다. 서울에서의 경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다시 나를 빛나게 해 주었지만, 여성은 사내정치에 이용되기 쉬운 존재였다. 1년 미만의 경력이 켜켜히 쌓이기 시작했다. 자잘한 경력은 취업시장에서 나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결국 마지막은 6개월 경력의 지역방송 피디로 끝을 맺었다. 나이 마흔인 지금은 좋은 남자를 만나 완전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며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그 모든 과정이 사이안. 그녀와 닮아서 소스라치게 소름이 끼쳤다. 나에게는 믿음직한 엄마와 늘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형제 자매가 있었기에 그녀처럼 팍팍하고 메마른 정서를 느낄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취업시장에서 느낀 그녀의 감정은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잔인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급변하는 IT업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은 지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