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멸종 ㅣ 안전가옥 앤솔로지 2
시아란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평점 :
이 책은 ‘냉면’에 이은 안전가옥의 두 번째 앤솔로지 시리즈이다. ‘대멸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지구 멸망에 관한 다섯 편의 소설을 엮은 단편집이다. 작가들의 상상력에 놀랐다. 정말 일어날 법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판타지, SF,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오가니 더욱 색다른 느낌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은 지구 멸망 당시 사후세계 이야기가 보고서 형식으로 펼쳐진다. 인간이 멸망하면 저승도 사라진다는 데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부분이 흥미롭다. 질소를 채워 기록물을 오랜 시간 보존하고,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사람을 기다린다는 부분에서 이집트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피라미드를 발굴할 때 초반에 많은 이들이 피라미드 안의 독가스에 질식해 죽었다는 이야기. 피라미드에도 우리가 잊고 있던 사후세계를 기록한 기록물이 발견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이전에 진짜 있었을 수도 있다. 잉카문명 유적지에서 마이크로 칩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는가.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지루할 수도 있는데 방사능이나 핵분열, 우주 방사선에 대해 흥미를 가진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게임 프로그래머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제 멋대로 설계하고 바꿔버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버뮤다 삼각지대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세계를 잘못 만든 신에 의한 오류라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면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아닐까.
세 번째 이야기인 ‘선택의 아이’는 인류멸종과 아동인권을 자연스레 연결시킨 작품이다. 동남아는 아직 아이들과 여자들의 인권이 바닥이라고 들었다. 5살 아이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결혼 전부터는 무수히, 결혼 후에도 남편이 허락하면 몸을 팔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가난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데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주인공 가나가 좀 더 일찍 인류의 멸망을 선택했다면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
네 번째 이야기는 ‘우주탐사선 베르티아’이다. 이 이야기는 고도로 발달한 인류가 우주의 새 생명 탐사를 위해 보내진 우주선 안에서 500년 동안 생존해 온 우주인들의 이야기이다. 달이 파괴되어 강력한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를 강타한다면 어떨까? 아니면 인간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다 못해 자살을 꿈꾼다면? 그리고 인공지능이 발달한 세상에서 자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인공지능인지 헷갈리게 된다면? 현실이라고 믿는 세상이 AR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인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는 판타지 장르로 멸망을 이야기 한 작품이다. 처음 마빈 이야기가 나올 때 까지만 해도 유머러스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끝에 그의 문제점이 지구멸망을 불러오기까지의 과정은 어둡고 막막함 그 자체라고 하겠다. 대거 사망하고 쫓기고 왕위를 탐하고 결국 정쟁에 휩쓸리고, 사기꾼인지 미친놈인지 모를 바보가 하는 이야기대로 세상은 망하고 만다. 뭐랄까... 늘 비난받던 이가 작정하고 사고 친 느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고 할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집의 느낌이 있다. 장르가 다양해서 SF를 꺼려하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원한다면 ‘선택의 아이’를 추천한다. 단, 참담한 기분이 될 수도 있다. ‘우주탐사선 베르티아’는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들어 긴장되기도 했다. ‘세상을 끝내는데~’는 일본 라노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다양한 작품을 한 책에서 만나니 다이나믹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