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 님이 떠나신 지도 5년이 넘었네요.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고 특히 한국 문학소설과는 더욱 거리가 있는 편인지라, 작품을 읽어본 작가는 커녕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도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 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을 받은 작가들을 보면 여성 작가분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라 쉽게 아울러 이야기할 수 없겠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이분들이 보여주는 솔직함과 시원시원함에 매력을 느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완서 님의 글은 소설조차도 수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냉정하리만치 솔직하게 자신을 돌이켜보는 모습을 보여주시더군요. 그런 솔직함에 나 자신을 투영하여 생각하게 되고 말이죠. 떠나신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새로운 책이 출간되고 예전의 책이 재출간되는 것은 이런 매력에 끌린 독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이 책을 펴면서 살짝 걱정이 되었던 것은 이것이 교회 주보에 실렸던 글의 모음집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년기에 쓰여지기도 했고 말이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년기에 종교에 귀의한 예술가들이 개성을 잃는 경우를 제법 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자에 합일하면서 일종의 달관의 경지에 이르른 것일 수 있겠고, 나로써는 이르지 못한 그런 경지에서 얻는 평화를 엿보는 맛도 있겠습니다만, 인간의 경지가 아닌 예술가의 경지에서는 오히려 퇴보해버린 예가 꽤 많습니다. 좋아했던 모 가수의 음악이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생동감 넘치던 화풍을 보여주던 모 화가가 종교에 귀의한 후 극도로 경직된 화풍을 보여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을 보노라면 기우였다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주보에 실을 글을 부탁했을 때, 성직자분들은 과연 이런 내용을 기대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 성경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자극적이거나 심각한 회의가 담긴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보에 싣는 글이고 보면 신성에 대한 복종과 귀의를 기대하게 마련일텐데, 이 글들에서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고민이 앞섭니다. 신이 절대적인 답을 주셨고 그것이 답임을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신의 말씀을 읽고 따라가는 과정이 힘겹고 의심스러워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예수를 통해 보여준 자취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죠. 이러면 오히려 다른 종교의 신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물론 적당한 수준에서 추스르며 끝내는 글도 꽤 보였습니다만 이것이 주보에 실릴 2쪽 정도의 짧은 글이고보면 지면적인 한계가 작용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특유의 솔직함과 쿨함이 글 속에서 살아있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만큼 여전히 글 속에서 젊음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인생 선배와 차를 한잔 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실제로 글을 읽어가다보면, 할머니 박완서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더 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글의 특성을 알았기 때문이겠지만, 삽화 역시 편안하고 친근하게 그려낸 것들을 끼워놓아서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었네요.



 다소 딴소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종교 역시 역사적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크리스트교의 경우, 구약은 차치하더라도 신약에서 보여주는 예수의 언행은 혁신적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현대의 주류 종교는 대부분 시작점을 돌이켜보면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상처를 치유하는데 관심을 가졌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점차 보수화되면서 기득권에 관심을 가지고 경계를 만드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을 보게 되지요. 교리가 완성된 것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것을 바꾸거나 심지어 해석하려고 하는 것도 불경일 수밖에 없는 것이 논리적이기도 하겠고요. 세상 모든 것이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고 보면, 종교도 변모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존재하는 한은 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주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바뀌면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바뀌어야만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떤 종교도 쉬운 길을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지요. 교리에 맹종하는 것은 쉬운 답이기에 틀리기 쉬운 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들,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