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태양 시칠리아의 달 내가 사랑한 이탈리아 2
우치다 요코 지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이국적이다라는 말이 로맨틱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만큼 여행은 설레임을 불러오곤 하죠.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만큼 낭만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을까요? 로마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화려하면서도 위엄있는 삶의 흔적들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강렬한 태양과 지중해의 짠 바람, 와인으로 익어가는 포도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풍광에 힘입은 바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심성이 낭만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책은 어떤 장면을 그려낼 때 풍광보다는 사람을 담아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하나의 좋은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30년 이상 머무른 작가가 그려낸 이탈리아 사람의 삶의 면면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본인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오래 살아버리면 그 눈이 이탈리아 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인지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깊이있게 파고들어 드러내는 솜씨가 너무 자연스럽네요. 마치 몇 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낸 소설집처럼 쓰여져 있는데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신기할만큼 진실성있게 다가옵니다. 얼핏 에쿠니 가오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너무나 일상적인 것을 그려내면서도 이면에 비일상을 담아내는 솜씨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0편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만 일단 첫편부터가 독특합니다. '밀라노에서 산 상자'는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저자가 바에서 만난 생전 초면의 교수와 함께 집을 구매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우연히 만난 외국인과 함께 집을 살 생각을 하는 교수님의 머릿속도 신기합니다만 걸작은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전경이 너무나 맘에 들었던 저자는 살짝 집을 개축할 욕심을 내는데요, 일이 꼬여버려 건축법에 위반되는 상황까지 이어집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넘어갔냐고요? 담당 공무원에게 무려 뇌물을 먹여서지요.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던 그 공무원이 '문득 이쪽을 보더니 가볍게 손을 올려 천천히 (뇌물을 담아 건네준) 상자 뚜껑을 여는 시늉을 했다'는 마지막 문장에는 페이소스와 뉘앙스가 넘쳐납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에 실어 책을 보는 시선과 시야를 조정해주는 구성도 절묘하다고 생각되고요.


'철도원 오스왈드'는 가장 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라 기억에 남는군요. 이 이야기도 두 부분으로 나뉘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오스왈드라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철도원을 알게 되는데요, 그녀의 딸은 그 철도를 타고 7시간이 넘는 곳으로 통학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차를 타는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요. 마침내 이 청년과 딸이 결혼할 때까지, 옆에서 설레어하고 불안해하고 한편으로 기뻐하는 오스왈드의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런 행복 가운데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하지요. 철도보수 공사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한쪽 손을 잃게 된 것입니다. 슬픔을 함께 하던 저자에게, 오스왈드가 자신이 제직하던 철도회사에서 준 편지라며 전해준 짧은 글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불러일으키죠. '오스왈드 씨에게, 이곳 역사를 평생 지킬 것을 특별히 명합니다'  인생은 늘 우리가 기대치 않던 것을 던져줍니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짐일 때 함께 짊어져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삶을 얼마나 멋지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잔잔하고 간결하게, 하지만 날카롭게 장면을 잡아내는 것은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만듭니다만 책 속에서 작가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제3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그려내니 독자의 입장에서 더 몰입하여 읽게 되는 면이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오래 이탈리아에서 머물렀으면서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위치가 무의식중에 비춰진 것은 하는 아닐지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따뜻한 소설을 읽어가듯 한장한장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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