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할 수밖에 없는 재난이 7년이나 지속된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 녹지 않은 눈이 세상을 덮은 디스토피아에서 두 아이가 마주한 세상은 분명 절망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희망찬 발돋움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함께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연결감이 보여주는 온기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적당한 온기. 녹지 않는 눈을 녹여낼 뜨거운 온도가 아닌 그 눈에 파묻히지 않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의지와 닮은 온도였다. 


재난 소설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지만. 시원하게 읽었다. 걸리는 부분 없이 눈썰매 타고 내려가는 기분으로 모루와 이월의 이야기를 읽었다. 반려견과 엄마 그리고 이모 등.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앞에선 주인공들과 함께 멈칫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읽는 느낌은 시원스러움이었다. 그래서 끝날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란 상황에 포개어진 이 소설이 음울하지 않은 것이 묘한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큰 재난이 일어나면 그 이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다.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길 바라지만, 그 이전의 삶이 아닌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시간을 드라이브 하듯이 달려 나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기분 좋은 드라이브가 될 수는 없겠지만, 혼자가 아닌 옆자리에 다정한 봄이 함께 타고 있다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게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이 함께한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싸늘할 수밖에 없는 상왕이었지만, 다른 온도로 나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누군가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가는 와중에 나에게 다정한 온기가 되어준 사람을 ‘함께’, ‘자주’ 만나고 싶다. 그나저나 언제쯤 끝나려나, 이 재난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1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와인교에 귀의한 한 사내의 좌충우돌 신앙생활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다. 첫 만남의 그 신비로운 체험에서 시작해 고진 박해(아내의 등짝 스매싱)와 경제적 어려움(가산탕진)을 이겨내며 자신의 믿음을 견지하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을 거짓 없이 유쾌하게 그려낸다.”_ 12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흥미로운 주제와 술향 폴폴 나는 에세이가 감성적이지 않고 이토록 실용적일 수 있다니. 술린이이자 와린이인 내 마음을 홀딱 가져간 책이다. 분명히 나는 와인, 그거 어렵지 않나?”라며 주저하던 와린이였는데, 와인을 영접한 신도의 간증서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데, 작가가 나의 손을 붙잡고서 와인을 어떻게 사야하며, 어떻게 마셔야하며, 음식과 분위기에 젖어드는 와인까지 다 챙겨서 가방에 넣어주는 책이다. 마치 학교에 입학했을 때, 등교하는 첫 날 꽉 찬 가방 든 것처럼 든든한 와인 지침서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되서 되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는 와인 책이다. 되돌아가서 읽는다면, 아직은 낯선 와인 이름과 와인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우린 아직 와린이니까.) 이해가 안되는 건 없다. 와인에 갓 입문한 초심자를 위한 쉬운 내용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글이 재미있다. 작가님의 글 자체가 정말이지 내 취향 저격이었다. 매끄럽게 읽힐 뿐만 아니라 가성비를 논하는 어딘지 모를 짭조름한 감성은 책을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을 부른다. 자신이 와인에 왜 이렇게나 진심이며, 그 진심의 끝에 맞이한 결과를 읽다보면 , 실용서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였지.”란 생각이 든다.

 

*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이 와인 간증서를 읽으며, “와멘-!”을 외치는 건 필연을 넘은 운명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무수히 많지만, 20대 초반에 난 주량을 꼭 알고 싶었다. 하지만 겁도 많았고 (착하지도 않으면서) 술을 안 마시는 것이 효의 전부라고 믿었던 난 나의 주량을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에 묻었다. 그런 내가 정기적으로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마신 술이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와인이었다. 성찬식 때마다 작은 잔에 담긴 검붉은 포도주 한 모금이 남긴 향이 싫지 않았다.

 

효녀의 삶을 뒤로한 나는 이제 나의 주량을 잘 알고 있다. 주종에 무관하게 기분 좋아지는 주량은 1, 몹시 기분이 좋아지는 주량은 2, 아슬아슬하게 기분 좋아지는 주량이 3잔이다.

그래서 난 너무 아쉽다. 이 책에 나온 와인을 언제 다 맛볼 수 있을지 아득해서. “연말연시 가성비 최강 와인 5”, “2만 원대 최강 와인 5”, “심리상담사 같은 와인 3”, “가을에 어울리는 와인 3”, “비 오는 날 추천 가성비 와인 3”, “책을 마치며 추천하는 와인 4”까지. 이 모든 와인을 모두 마셔보고 싶은데..

그나저나 와인을 열 줄도 모르는 진짜 와린이인 나는 와인 여는 법을 배우든, 와인을 잘 열어줄 수 있는 와인 메이트를 찾아야겠다. 아무래도 후자가 와인이 아깝지 않을 선택이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한 유산》을 읽은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자랐던, 내가 좋아하는 동네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훨씬 전과 내가 자랐을 때 본 동네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벽수산장이란 이름과 그 터가 어디인지만 알았고, 친구 집을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럴싸한 상상을 더해가며 읽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잘 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데다 심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도 지나, 일본과 수교가 다시 이루어진 1960년대 중반을 무대로 한 이야기다. 친일과 독립이란 날이 선 경계가 지독한 가난으로 흐릿해져만 갈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흡입력 있는 문체로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억하고 싶을 때가 아닌 시기의 일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눅눅한 그 시대와 닮은 서사로 몰입감을 더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이해동은 친일파가 남긴 벽수산장이란 저택에 빌붙어 다시 아버지가 누렸던 영광을 다시 누리고자 하는 윤원섭의 말을 통역해야 하는 일을 하는 청년이다.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원섭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해동이 답답하면서 나라도 아무 말 못 하겠구나 싶어 씁쓸함을 몇 번이나 삼켰다.

해동은 통역 비서의 본분을 잊은 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통역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하는 것은 그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질문을 던졌다.

(중략)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일등을 할 거까지야 있었을까?”

둘의 대화가 항상 답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했던 해동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던 순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반문을 주저하고 속으로 삼켰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던 순간부터 소설의 흐름은 달라진다. 해동과 윤섭 외에도 다른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지난 석 달 동안 그것의 질긴 생명력을 경험하면서 해동은 그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는 분하고 고까울지언정 그것이 아예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사라지더라도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거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라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니, 어떤 해석으로 만들어졌던 건 아닌지, 또 그런 해석의 틈에 이상한 논리가 들어와 꽤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상하다 느꼈을 때, 내가 떠올린 의문이 나의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순서가 있지 순서가. 저런 데에 나무가 서려면 씨앗부터 천천히 자라야 해. 이렇게 산 안쪽에, 그나마 흙이 좋은 데부터 나무가 서야지. 그러면 나중에 저렇게 박한 땅에도 씨앗이 떨어져서 자라겠지. 하지만 지금 저기다가 나무를 세우려고 하면 되지도 않는단 말이야. 뭐든지 제대로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네.”

벽수산장은 무너졌고, 제법 잊혔다. 그렇다면 해동의 마음에는 무엇이 제대로 심어졌을까. 1960년대를 지나 2020년대에는 박해던 땅에도 씨앗이 잘 떨어져 자라고 있을까. 내 생각에 영원한 유산은 벽수산장도 힘도 아니었다. 해동은 알지 않을까, 그 유산이 무엇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 - 프로 일잘러를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 공존라이프
장금숙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지만 뭔가 아쉬웠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 - 프로 일잘러를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 공존라이프
장금숙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로 일잘러가 되고 싶은 소신을 목표로 다잡기 위해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을 읽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른 두 직종을 오간 저자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 나온 많은 조언과 제안은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이지만, 실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둔 이야기이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기획이다. "창의적인 마케터가 되고, 물건을 잘 파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결국 좋은 기획자일 때 가능하다.

내가 하고 있는 출판 마케팅으로 생각해보았다. 마케터이지만 세상에 필요한 책이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필요한 메시지를 잘 팔 수 있는 방법도 모두 기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편집자가 만들고 기획한 책을 파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좋은 마케터는 아닐 것이다. 책을 기획한 의도와 필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기획해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 아는 과정이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영화와 트라우마.. 무엇을 해야할까?)

덧붙여 20여 년간 디자이너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초보 마케터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마케터로 오래도록 살다가 디자이너로 사는 것도 가능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