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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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을 읽은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자랐던, 내가 좋아하는 동네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훨씬 전과 내가 자랐을 때 본 동네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벽수산장이란 이름과 그 터가 어디인지만 알았고, 친구 집을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럴싸한 상상을 더해가며 읽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잘 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데다 심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도 지나, 일본과 수교가 다시 이루어진 1960년대 중반을 무대로 한 이야기다. 친일과 독립이란 날이 선 경계가 지독한 가난으로 흐릿해져만 갈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흡입력 있는 문체로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억하고 싶을 때가 아닌 시기의 일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눅눅한 그 시대와 닮은 서사로 몰입감을 더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이해동은 친일파가 남긴 벽수산장이란 저택에 빌붙어 다시 아버지가 누렸던 영광을 다시 누리고자 하는 윤원섭의 말을 통역해야 하는 일을 하는 청년이다.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원섭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해동이 답답하면서 나라도 아무 말 못 하겠구나 싶어 씁쓸함을 몇 번이나 삼켰다.

해동은 통역 비서의 본분을 잊은 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통역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하는 것은 그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질문을 던졌다.

(중략)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일등을 할 거까지야 있었을까?”

둘의 대화가 항상 답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했던 해동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던 순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반문을 주저하고 속으로 삼켰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던 순간부터 소설의 흐름은 달라진다. 해동과 윤섭 외에도 다른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지난 석 달 동안 그것의 질긴 생명력을 경험하면서 해동은 그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는 분하고 고까울지언정 그것이 아예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사라지더라도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거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라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니, 어떤 해석으로 만들어졌던 건 아닌지, 또 그런 해석의 틈에 이상한 논리가 들어와 꽤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상하다 느꼈을 때, 내가 떠올린 의문이 나의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순서가 있지 순서가. 저런 데에 나무가 서려면 씨앗부터 천천히 자라야 해. 이렇게 산 안쪽에, 그나마 흙이 좋은 데부터 나무가 서야지. 그러면 나중에 저렇게 박한 땅에도 씨앗이 떨어져서 자라겠지. 하지만 지금 저기다가 나무를 세우려고 하면 되지도 않는단 말이야. 뭐든지 제대로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네.”

벽수산장은 무너졌고, 제법 잊혔다. 그렇다면 해동의 마음에는 무엇이 제대로 심어졌을까. 1960년대를 지나 2020년대에는 박해던 땅에도 씨앗이 잘 떨어져 자라고 있을까. 내 생각에 영원한 유산은 벽수산장도 힘도 아니었다. 해동은 알지 않을까, 그 유산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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