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0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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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에게도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었으면 싶었던 때가 있다. 누구보다 착하고 26년 동안 나의 모난 성격을 다 받아주는 남동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은 동생이 섭섭하다고 해도 할 말 없는 바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가 무심결에 말하는 자매 간에만 있는 유대감에 대해 들을 때면, 역시 나도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지만 『작은 아씨들』을 읽을 때 유독 심하게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오만과 편견』 속 제인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메그는 기울어진 가세에 불만이 있지만 마음 따뜻한 큰언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인물인 작가 지망생 조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헌신적인 마음을 가진 베스와 어리고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에이미까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네 자매가 각자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이 소설 『작은 아씨들』 줄거리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에서 시작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마치 가문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난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때로 동화처럼 때로 소설처럼 가슴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네 자매 중 둘째인 조. 조는 조세핀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이 불리길 원하는 '조'라고 불리기 위해 싸움도 불사했다. 이처럼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거침없고 감정적인 성격에 놀랐지만, 말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가리지 않는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일러스트 그림 너머로 보이는 듯한 조의 반짝이는 눈이 빛나 보였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이 어떤 곳인지 거침없이 말하고, 자신과 이웃에게 지나칠 만큼 솔직한 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원고는 조의 자랑이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작가의 재능이 보인다며 인정한 작품이었다. 여섯 편의 짤막한 동화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가 출판을 꿈꾸며 전력을 다해 쓴 것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옮겨 적은 후, 옛 원고를 모두 없애 버린 터라 에이미의 불장난은 몇 년 간의 고생을 모조리 태워 버린 셈이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몰라도 조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_ 『작은 아씨들』, 181쪽


조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삶의 근원이자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한 후 다락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키운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소중히 대했다. 에이미가 원고를 태웠을 때, 내 마음이 다 쓰라렸지만 마음을 다독이는 조가 기특했다. 선명하게 그려온 자신의 꿈만 고집하지 않고 때로 가족에게 헌신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용기 있는 모습을 나는 닮고 싶었다.


조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지만, 네 자매가 크리스마스 저녁에서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까지 과정을 읽으며 네 사람 모두 자기 자신다움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끔 책을 통해 삶을 조금 더 온기 있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가족과 이웃과 마주하며 달라지는 모습이 무엇이고, 다양한 관계 맺음 속에서 변하지 않고 지켜낸 나의 모습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건, 정말 의미 있으니까.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듯했으며, 지난날의 쓰라린 기억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선물의 달콤한 추억만이 남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고백이 내년 크리스마스 무렵 나의 말이 되길 바라며, 책을 덮었다. 2월에 개봉하는 영화 <작은 아씨들>이 기다려진다. 동화 같지만 사실은 제법 두꺼운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부터 연초까지. 요즘 읽어 참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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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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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여기까지도 괜찮은데, 그 나를 좋아하지 않는 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친구를 좋아하는 상황. 생각만 해도 탄식이 나오는 상황. 영화 <접속>의 수현이의 사랑이 그랬고, 희극 『시라노』의 주인공 시라노의 사랑이 그랬다. 그런 사랑의 끝을 보는 것까지. 두 작품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도와줄 수 있을까. 애써 쓴웃음조차 짓지 않고, 그 사랑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수록 마음이 초라해지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수없이 아니라고 말했어도, 아마도 두 사람은 애초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을테니까.

그 미친 듯한 열정의 말들, 그건 당신이었어요…….

아니오, 아니오, 내 소중한 사랑,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이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짜게 식어버리는 소심이가 된 나는 두 작품을 보며 아이러니하게 나의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우스워지는 것도, 아무 반응이 없어 무시당하는 것도, 마치 내일이 없는 듯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나와는 다르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두 인물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은 내가 싫었다가도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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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몸을 챙깁니다 - 바디풀니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첫걸음
문요한 지음 / 해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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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할 때, 출근길에 미세 먼지 없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때, 길가를 구르다 낙엽이 내 신발을 덮을 때. 그렇게 오늘 내가 미소 지었을 때. 이 순간의 경험을 내 머리와 마음만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돌아보세요.

당신에게 가장 편안했던 장면을 찾아보세요.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곳에 있다고 느껴보세요.

아니었다. 나 역시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가장 편안해지는 순간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햇볕에 이불을 바삭바삭 말린 그날 밤에 잠든 순간이 떠올랐다. 햇볕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베개와 이불에 온몸을 묻어두고 눈을 감았던 순간 온몸의 긴장이 다 풀어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은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나와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해온 몸에 조금 더 귀 기울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훌륭한 보호 장치를 한두 개쯤 가지게 되겠군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는 때가 있을까?

몸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까먹는 일이 내 몸 챙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앞으로 더 예전 같지 않을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순간의 감정에 몸을 뒤로하는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 자신감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고 조금씩 몸을 사리며 아끼고 있다.

이렇게 나는 몸을 사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몸을 아끼는 것이고 챙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몸을 챙깁니다』의 저자가 말하는 몸을 챙긴다는 의미는 달랐다. 바디풀니스(bodyfulness), "순간순간 따뜻한 주의를 몸에 기울이는 것"이 진짜 몸을 챙기는 것. 진정한 의미의 몸 챙김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몸 챙김의 여러 부분 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걷기였다.

내가 바로 속도 중독자다. 혼자 걸을 때, 나는 빨리 걷는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가만히 서서 오르거나 내려가는 일이 없다. 움직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회사에서도 계단을 두 개씩 올라가는 일이 잦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걷는다. 빨리 걷는 것이 익숙해서 일부러 느리게 걷는다는 건 웬만해선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몸인데도 스스로 그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속도 중독으로 인해 마음은 몸과 함께 살지 못하고 늘 몸은 먼저 떠납니다. 마음은 늘 몸보다 앞서서 몸을 부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속도가 나에게 맞는 속도라고 생각했고, 그 속도 안에서 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 앞에 나를 솔직히 내려놓으니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글로 열심히 몸 챙김 훈련을 배운 후, 오늘 퇴근길에서도 나는 어김없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쫓기듯 빠르게 올라갔다. 그렇다고 니트를 실천할 겸, 계단 오르기를 선택하지 않고. 참 습관이 무섭다. 내년에는 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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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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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고 고백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 내가 아무리 꽁꽁 숨겨도 빛이 절로 나는 시인이었다. 메리 올리버는. 내 품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시인이었고, 얇은 그녀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은 등 뒤로 감춰둔 채 나만 몰래 꺼내보고 싶은 책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움켜쥐고 싶어도 결코 그럴 수 없는 자연처럼,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는, 나만 좋아하는 글일 수 없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앞으로 더 알려질 일만 남은 책이었다.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책이었다. 아래의 문장을 수집하며, 더 일찍 만나지 못해 못내 아쉬우며 동시에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안도하게 된 시인의 글이었다. 읽는 내내, 밑줄 치고 싶었던 글이 한가득이었고, 포스트잇을 이곳저곳에 붙여두었다. 아마 다음에 읽으면 또 다른 문장에 밑줄을 치고 싶어질 것 같은, 또 다른 인덱스 포스트잇이 종이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 분명한 책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붙잡으면 내가 더 완벽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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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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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쓴다면 어떤 모습일까. 동심을 간직한 소설가 무라 키미 하루키가 쓴 겨울 이야기를 읽었다.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다. 사실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양 사나이 이야기는 읽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한 책이었기에.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양 사나이다. 올해 양 사나이 마을에서 열릴 축제에서 크리스마스 음악 연주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나이가 도통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깊이 고민에 잠긴다. 그런 그는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양 박사를 찾아간다. 그런 양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기가 막혔다.


성 양 축제일에 구멍 뚫린 도넛을 먹었기 때문이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해와 납득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읽는 데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또 믿고 저주를 풀기 위해 양 사나이가 하나 둘 해나가는 일을 확인하다 보면 피식 웃음 나오고 몇 차례 웃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는 끝나있다.


하지만 만약 서사만 두고 보았다면, 이 소설은 그리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보는 데 있었다. 양 사나이의 캐릭터에 사실감을 불어넣어 주는 그림 덕분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냥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페이지마다 숨어 있는 펼침 장치 또한 흥미로웠다.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확인한 하루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예쁘게 담긴 크리스마스 엽서가 덤으로 찾아왔다. 양 사나이와 함께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엽서에 작은 멘트도 함께 적어 보내주면 어떨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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