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서재 -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책 읽기의 힘
하지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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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작가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는 자신의 독서 경험과 읽어온 책이 꽉 차진 서가다. 자신이 읽어온 책 그리고 그 책을 읽어오는 과정을 요목조목 살펴본 독서 에세이다. 정독보다 다독을 즐긴다고 말하는 저자답게 이 책에는 인문학부터, 소설, 전공 서적(정신분석학), 에세이까지 분야도 다양하고 베스트셀러부터 절판된 책까지 시간의 폭도 다층적인 책이 등장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듯 책마다 담긴 매력을 살뜰하게 챙긴 글에는 서가를 골똘히 살펴보며 고르고 또 고른 주인의 노력이 묻어나 있다.

정독보다 다독을.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기보다 한 번에 3-5권의 책을 동시에 읽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은 에세이였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내 이야기 같아서였다. "책 안의 지식과 정보를 뽑아서 내 안에 쌓아놓고 있다가,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꺼내는 것이 내 자존감의 기초"가 되었다는 말처럼. 어렸을 때 난 열심히 책을 읽고서 누군가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대답할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꼈다. 다만 저자와 달리 난 지적 허영심이 상당한 아이였다ㅋㅋ

지저분하게 읽는 책은 1년에 10권 이내로 만나는 희귀한 책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책은 내가 치른 가격 이상의 가치를 지닌 책이다. (중략) 책을 읽으면서 이리저리 해체한 정보의 편린, 느낀 감정의 조각들은 내 안에 있던 다른 감정, 기억과 만나 화학작용으로 대사되거나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면서 드디어 내 머릿속에 안착된다. 그 과정이 독서의 진수이고 책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_ 86쪽

최근 책을 선물받으며 "처음 읽은 자기계발서"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상대가 좀 부러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읽었던 자기계발서, 처음으로 감명깊게 읽은 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지만 처음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책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할 수 있게 더 좋은 책과 만났다는 뜻도 되지만, 처음으로 잘 안착된 책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역시 조금 아쉬운 일이다. 앞으론 조금 더 내 생각과 마음에 잘 안착될 수 있게 신경을 써야하나?

언제나 선물할 사람을 떠올리며 뭘 좋아할지 상상해본다. 그 사람에 대해서 이미지를 그려보고, 또 지금 내 마음에서 그를 향해 투사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는 한다. 그만큼 상대방을 생각하고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성향을 고려해 책을 고르는 일은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재미있는 프로세스다. 고리타분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책을 선물하기를 즐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전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서점을 들른다. _ 155쪽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의 글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보다, 책을 사랑하는 동지의 생각을 확인하고 좋은 팁이 있으면 획득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오은 시인의 추천사에 나오는 말처럼, 책과 사랑에 빠지는 건 쉽지만 그 사랑을 오래도록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책태기라는 권태로움이 찾아올 수도 있고, 다른 유혹에 참 쉽게 진다. (스마트폰의 무수히 많은 앱) 그럴 때 성실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이 필요하다. '맞아, 나도 그랬는데. 다시 읽어볼까?' 싶은 마음을 부르는 책이.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처방을 내리는 의사 선생님은 책덕후의 책태기를 극복하는 처방도 아주 잘 내려주시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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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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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난 건, 《그 쇳물 쓰지 마라 》에서였다. 뉴스와 나란히 놓인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찌르르 떨게 하는 시에 멈칫 멈추곤 했다. 뉴스와 나란히 놓인 시는 시를 먼저 읽고 뉴스를 읽어도 뉴스를 읽고 시를 읽어도 마음을 아릿하게 울렸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때 느꼈다. SNS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고 잘 쓴 글도 많지만, 잘 쓴 글과 마음을 울리는 글이 무엇이 다른지. 제페토 시인의 시로 난 경험했고,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제페토 시인이 시를 쓴 지 10년이 되는 해에 나온 《우리는 미화되었다》는 《그 쇳물 쓰지 마라》 이후 6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그리고 2018년에서 2020년까지. 헤아리면 6년의 세월인데, 벌써 6년이나 지났나 싶어 놀랐다. 지난 6년이 그 이전과 비슷하게 흐른 것 같아 서글펐고 달라진 것 없는 오늘의 모습에 씁쓸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서문을 처음 읽었다.

댓글의 부작용을 오랫동안 지켜본 탓일까. ˊ를 읽고 거침없이 글을 써 올렸던 과거와 달리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기 검열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댓글은 손쉬운 유희가 아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목소리가 된 셈이다. (중략) 말(글)은 가시 돋친 생명체다. 밖으로 내보내기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_ 서문 <소풍 전날 밤 같은 시간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 시에 담겨 있었지만, 6년이란 시간 동안 달라진 제페토 시인의 마음이 서문에서 전해졌다. 댓글로 건네는 시에 자기검열을 시작한 만큼, 그러한 성찰을 일깨운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비슷해 보이는 우리 삶의 궤도가 달라져 있다고 믿고 싶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한 줌 움켜쥐니
틈새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아마도 별빛이
매끄러워서겠지요.
<빛나는 것의 속성>중에..

유독 별자리, 밤하늘에 대한 시가 많아서일까. 시집이 나는 마음에 별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작지만 우리가 발견해야 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따뜻한 면을 하나둘 발견해 시로 이어나간 시집은 6년이란 장대한 시간에 새긴 별자리였다. 캄캄한 밤, 어둠에 익숙해져야 더 밝게 보이는 별처럼.
어두운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며 쓴 마음 무거운 시와 그 마음에 잔잔한 미소를 부르는 시를 함께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망하게 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희망을 품게 하는 모습도 함께 있어 다행이라고.

그림자가 사라질 수 없듯이, 절망하게 만드는 일은 계속 있을 것이다. 굵직한 이슈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삶에 계속해 엄습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조금 더 따뜻한 손길이, 서로에게 다정한 안부를 묻는 말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이 갈라지고 매마르는 일상에 두 손은 움츠러들어 주머니에 감추기 바빴고, 귀는 에어팟으로 매웠고, 건네야 했던 많은 말을 삼키기 바빴다. 저마다 달랐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었다. 《우리는 미화되었다》 속 시에는 내가 지나치고 삼켰던, 하지만 세상에 존재해야 했던 말이 글로 남겨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정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그 정보 대다수는 금방 잊힌다. 난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보다 쉽게 잊어버린 절망이 머물고 간 일을 쉬이 잊어버리고 무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억울한 죽음, 참담한 삶을 쉬이 지나친 내가 시를 읽는데 보였다.
2020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잊힌 시간에 휩쓸린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 아닐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뉴스에 남아있던 댓글 시에서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사연에 멈추고, 삼키지 않고 무어라 말해야 하는 감정을 돌아보면 어떨까?

유독 힘들었던 올해, 나만큼 힘들었을 누군가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 제페토 시인의 《우리는 미화되었다》가 그 시간을 만들어주리라 확신한다. 그 시간이 지금을 미화하지 않을, 아름다운 시간이 아닐까 싶다.

※ 본 서평은 수오서재 마케터가 진심을 담아 쓴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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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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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난 건, 《그 쇳물 쓰지 마라 》에서였다. 뉴스와 나란히 놓인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찌르르 떨게 하는 시에 멈칫 멈추곤 했다. 뉴스와 나란히 놓인 시는 시를 먼저 읽고 뉴스를 읽어도 뉴스를 읽고 시를 읽어도 마음을 아릿하게 울렸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때 느꼈다. SNS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고 잘 쓴 글도 많지만, 잘 쓴 글과 마음을 울리는 글이 무엇이 다른지. 제페토 시인의 시로 난 경험했고,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제페토 시인이 시를 쓴 지 10년이 되는 해에 나온 《우리는 미화되었다》는 《그 쇳물 쓰지 마라》 이후 6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그리고 2018년에서 2020년까지. 헤아리면 6년의 세월인데, 벌써 6년이나 지났나 싶어 놀랐다. 지난 6년이 그 이전과 비슷하게 흐른 것 같아 서글펐고 달라진 것 없는 오늘의 모습에 씁쓸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서문을 처음 읽었다. 


댓글의 부작용을 오랫동안 지켜본 탓일까. 늇를 읽고 거침없이 글을 써 올렸던 과거와 달리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기 검열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댓글은 손쉬운 유희가 아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목소리가 된 셈이다. (중략) 말(글)은 가시 돋친 생명체다. 밖으로 내보내기 앞서 구부리고 깎고 표면을 다듬지 않으면 필경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_ 서문 <소풍 전날 밤 같은 시간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 시에 담겨 있었지만, 6년이란 시간 동안 달라진 제페토 시인의 마음이 서문에서 전해졌다. 댓글로 건네는 시에 자기검열을 시작한 만큼, 그러한 성찰을 일깨운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비슷해 보이는 우리 삶의 궤도가 달라져 있다고 믿고 싶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한 줌 움켜쥐니

틈새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아마도 별빛이 

매끄러워서겠지요.


<빛나는 것의 속성>중에..



유독 별자리, 밤하늘에 대한 시가 많아서일까. 시집이 나는 마음에 별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작지만 우리가 발견해야 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따뜻한 면을 하나둘 발견해 시로 이어나간 시집은 6년이란 장대한 시간에 새긴 별자리였다. 캄캄한 밤, 어둠에 익숙해져야 더 밝게 보이는 별처럼. 

어두운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며 쓴 마음 무거운 시와 그 마음에 잔잔한 미소를 부르는 시를 함께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망하게 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희망을 품게 하는 모습도 함께 있어 다행이라고. 


그림자가 사라질 수 없듯이, 절망하게 만드는 일은 계속 있을 것이다. 굵직한 이슈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삶에 계속해 엄습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조금 더 따뜻한 손길이, 서로에게 다정한 안부를 묻는 말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이 갈라지고 매마르는 일상에 두 손은 움츠러들어 주머니에 감추기 바빴고, 귀는 에어팟으로 매웠고, 건네야 했던 많은 말을 삼키기 바빴다. 저마다 달랐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었다. 《우리는 미화되었다》 속 시에는 내가 지나치고 삼켰던, 하지만 세상에 존재해야 했던 말이 글로 남겨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정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그 정보 대다수는 금방 잊힌다. 난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보다 쉽게 잊어버린 절망이 머물고 간 일을 쉬이 잊어버리고 무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억울한 죽음, 참담한 삶을 쉬이 지나친 내가 시를 읽는데 보였다. 

2020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잊힌 시간에 휩쓸린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 아닐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뉴스에 남아있던 댓글 시에서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사연에 멈추고, 삼키지 않고 무어라 말해야 하는 감정을 돌아보면 어떨까?


유독 힘들었던 올해, 나만큼 힘들었을 누군가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 제페토 시인의 《우리는 미화되었다》가 그 시간을 만들어주리라 확신한다. 그 시간이 지금을 미화하지 않을, 아름다운 시간이 아닐까 싶다. 

 

2020년 11월에 난 이 시를 읽다가 울컥했다.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초병이 되어 

마음이 여린 신의 명을 

받들 수 있다면.


허술한 담장을 넘나들며

번개탄을 치우고

밧줄을 숨기고

옥상 문을 잠그고

낯빛이 불안한 이들을 

내쫓을 수 있다면.


세상은 언제나 해가 붉은 오후 여섯 시.

눈뜨면 다시 감고픈 이곳에서

내 머무는 동안 누구라도 함께

불안한 밤을 지켜낼 수 있다면.


늦은 아침에 아무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할 수 있다면>


​※ 본 서평은 수오서재 마케터가 진심을 담아 쓴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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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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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을 읽었지만, 무엇으로 어떤 부분에 위로가 되는지 확 와닿지 않는다. 부제는 그의 일대기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미지근하게 좋아하던 작가를 정확하게 올바른 순간에 발견할 때의 현상을 알고 계시지요. 체념과 물러남의 대가이며 스승인 작가를 말입니다."라는 원서 편집자 후기로 궁금증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위로하는 정신'이란 제목은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 자신의 '본질'을 혼탁하고 독성이 짙은 시대의 거품에 뒤섞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운 사람은 세상이 드물고, 내적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 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_ 34쪽

《수상록》을 읽지 않았지만, 에세이란 장르에서 몽테뉴의 문학적 의의는 매우 높다. 그가 중요한 사람임은 알지만, 왜 중요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책을 읽으며 개인주의자로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인생을 짧게 보았다. 그의 글과 그 안에 수없이 반복되는 자신에 대한 물음표와 그 대답을 슈테판 츠바이크가 간추린 책을 읽으며 《수상록》이 궁금해졌다.

라틴어를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던 교육환경, 학교에 대한 그의 관점, 책을 읽는 자세, 갑작스러운 유럽 여행과 공직 생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아만 들여다보도록 세상은 그를 두지 않았다. 종교전쟁, 페스트, 국가의 부름 등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는 점점 체념과 달관의 모습을 보인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가닿기 위한 분투는 일생에 거쳐 지속하나 미완으로 끝난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완전하게 닿을 수 없는 목표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 소시민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한 시장의 모습, 왕의 부름이 싫어서 자살을 고민하는 실망스러운 과정 등. 그는 정당할지 몰라도 난 그의 얼룩진 모습인 것만 같아 놀라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시하는 태도가 이따금 나에겐 이기심으로 보였다.

그는 "국가나 가족, 시대, 상황, 돈, 소유 등에 속하지 않는 자신의 참된 자아"를 탐구했다. 그 자아에 대해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아"임을 선을 긋고 생각에 잠겼다. 내적인 자아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제대로 모를지도 모른다. 내가 이따금 보았듯, 결점이 많고 혼란스러운 흔적으로만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정직하고 단호했고, 결점의 순간에도 그는 그런 자신에게마저 정직하고 단호했을 것만 같다.

몽테뉴의 삶을 보면 스스로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아에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물음표에 때론 답을 때론 물러나고 체념하곤 했다. 돌파하겠다며 나아가기보다 멈추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멈추는 순간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을 고찰하며 나로 살아간 몽테뉴의 삶이 있음을 말한다. 그의 일생 곳곳에 나로 나아가는 발돋움은 슬금슬금 도망치기도 하며, 때론 홀로 존재하는 고독으로 단단히 발밑을 다졌다.

그럼 일생이 우리에게 '위로하는 정신'이 되는 것일까. 난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고, 물음표 뒤에 대답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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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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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영화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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