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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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을 읽었지만, 무엇으로 어떤 부분에 위로가 되는지 확 와닿지 않는다. 부제는 그의 일대기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미지근하게 좋아하던 작가를 정확하게 올바른 순간에 발견할 때의 현상을 알고 계시지요. 체념과 물러남의 대가이며 스승인 작가를 말입니다."라는 원서 편집자 후기로 궁금증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위로하는 정신'이란 제목은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 자신의 '본질'을 혼탁하고 독성이 짙은 시대의 거품에 뒤섞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운 사람은 세상이 드물고, 내적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 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_ 34쪽

《수상록》을 읽지 않았지만, 에세이란 장르에서 몽테뉴의 문학적 의의는 매우 높다. 그가 중요한 사람임은 알지만, 왜 중요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책을 읽으며 개인주의자로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인생을 짧게 보았다. 그의 글과 그 안에 수없이 반복되는 자신에 대한 물음표와 그 대답을 슈테판 츠바이크가 간추린 책을 읽으며 《수상록》이 궁금해졌다.

라틴어를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던 교육환경, 학교에 대한 그의 관점, 책을 읽는 자세, 갑작스러운 유럽 여행과 공직 생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아만 들여다보도록 세상은 그를 두지 않았다. 종교전쟁, 페스트, 국가의 부름 등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는 점점 체념과 달관의 모습을 보인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가닿기 위한 분투는 일생에 거쳐 지속하나 미완으로 끝난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완전하게 닿을 수 없는 목표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 소시민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한 시장의 모습, 왕의 부름이 싫어서 자살을 고민하는 실망스러운 과정 등. 그는 정당할지 몰라도 난 그의 얼룩진 모습인 것만 같아 놀라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시하는 태도가 이따금 나에겐 이기심으로 보였다.

그는 "국가나 가족, 시대, 상황, 돈, 소유 등에 속하지 않는 자신의 참된 자아"를 탐구했다. 그 자아에 대해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아"임을 선을 긋고 생각에 잠겼다. 내적인 자아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제대로 모를지도 모른다. 내가 이따금 보았듯, 결점이 많고 혼란스러운 흔적으로만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정직하고 단호했고, 결점의 순간에도 그는 그런 자신에게마저 정직하고 단호했을 것만 같다.

몽테뉴의 삶을 보면 스스로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아에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물음표에 때론 답을 때론 물러나고 체념하곤 했다. 돌파하겠다며 나아가기보다 멈추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멈추는 순간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을 고찰하며 나로 살아간 몽테뉴의 삶이 있음을 말한다. 그의 일생 곳곳에 나로 나아가는 발돋움은 슬금슬금 도망치기도 하며, 때론 홀로 존재하는 고독으로 단단히 발밑을 다졌다.

그럼 일생이 우리에게 '위로하는 정신'이 되는 것일까. 난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고, 물음표 뒤에 대답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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