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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평점 :
우리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까?
백범 김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과 글을 읽으며 가슴 벅차올랐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 이 문장이 담긴 글을 읽으며 감동받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 같은 문장을 보면서 든 생각은 다르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더 말이나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씁쓸한 느낌만 머릿속을 맴돈다. 왜 그럴까. 내가 신문과 방송에서 이따금씩 마주한 우리나라는 이런 모습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어떻게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당연한 사회,
'돈(재력)', '학벌(학력)', '권력' 앞에 인간이 라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사라진 사회,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도, 타인에 대한 공감도 상실한 사회.
그럼,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2016년 11월 나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섰었다. 우리나라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지켜지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마 그 자리에 섰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나라가 더 좋은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권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하지만 국가나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좋아졌을까. 아니, 앞으로 좋아질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렇게 말한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세상이 좋아지겠느냐고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쉬운 방법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틀릴 확률도 없다.
쉽기는 하지만 비겁한 선택이다.
침묵하지 않고 말하기로 결심한 그는 세상에 대해, 국가에 대해, 사회에 대해 현실에 대해 철저하게 고발한다. '괴짜'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우석훈의 시각이 녹아진 《국가의 사기》 속 이야기는 언론에서도 방송에서도 좀처럼 다루기 힘든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고민한 흔적이 담겨있다. 국가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았을 때 개인이 겪게 되는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국가 권력의 문제, 교육 문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사교육과 대학 문제, 그리고 각종 공기업과 전문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클랜 현상에 대해 낱낱이 분석한다. 주제 하나하나가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다루기 충분한 내용이지만 이를 간결한 문장으로, 문제의 핵심을 추려 정리했다. 여러 문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촘촘히 논리적으로 엮어낸 주제들은 《국가의 사기》라는 큰 주제로 엮어진다.
밀실에서 논의하는 것을 광장으로 가지고 나오는 일은 좋은 일이다.
《국가의 사기》는 보통 대한민국 국민이면 좀처럼 알 수 없는 국가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석훈 교수가 분석한 국가 운영 실태는 알면 알수록 충격적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난제 그 자체다. 클랜이 행정 각 분야에서 어떻게 형성되어왔으며, 정권의 정책적 결정 혹은 사법부의 판례가 공고화하게 된 과정까지 남김없이 말한다. 그리고 이를 알아 이 문제가 더는 나아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장치로 그는 '책'을 통한 공론화 방법을 택했다. 깊이 있고, 다각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수 있는 책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고, 활용할 줄 알기에 가능한 방법이었고, 좋은 전략이었다.
책을 읽으며 어느 한 부분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나의 무지에 놀랐고, 이성적 판단과 논리가 부재한 결정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만든 결과에 놀랐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더 불행할 수밖에 없으며, 더 큰 불행의 늪으로 걸어가고 있는데도 '합법' '자유'라는 이름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클랜 현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유착관계, 관행, 제도, 사회 메커니즘들은 충격적이었다. 클랜은 "'집단'을 뜻하지만, 그 어원인 프랑스어 형용사 클랑데스탱에는 '숨어서 하는' 혹은 '비밀스러운'이라는 의미"로 은밀한 곳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힘들고, 실제로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혹은 알게 되더라도, "어차피 사람 사는 데서 늘 생겨나는 현상"으로 생각해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점 역시 문제다.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놓여 있다.
국가는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왜 실패하게 되는가?
만약에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저자는 정말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은 문제인지, 그저 사람 사는 데서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니 넘겨도 되는 모습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한다. 수자원 공사, 원자력 발전과 같은 공기업 문제가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틀에서 유착이 발생하기 쉬운지 행정부처 내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실패하는 국가는 있지만, 공무원과 정부가 실패하는 일은 없게 만드는 행태에 대해 말한다. 직접적으로 '?'를 붙인 질문도 있지만 현실을 고발하는 그의 이야기 뒤에 자연스레 스스로 '?'를 떠올리게끔 한다.
《국가의 사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토건족'(건축)과 '교육'문제에 대한 부분이었다.
1. 건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토건족에 대한 건축과 집 소유 문제와 얽힌 문제에 놓인 위험한 사고방식을 경고한다. 건축이 투기와 발전의 대상이 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을 다양한 부문에서 들여다본다. 안전하지 않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기뻐하고, 낡은 아파트의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30년만 지나면 재건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물이 박수받는 이상한 모습을 비판한다. 왜, 튼튼한 건물이 아니라, 개발할 수 있는 건물을 원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한다. 또 건축과 건물에 대한 이해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리나라에서 더 극렬하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개발 메커니즘에서 함께 설명한다. 그는 "건물은 고쳐가면서 쓰고, 지역은 정비하면서 보존하는 것이다. 그게 성숙한 도시이고, 선진국의 도시다. 꼭 왕궁과 박물관만 보존하는 게 아니다. 잘 사는 동네든, 못 사는 동네든, 귀족의 건물이든 하녀들이 거주하던 방이든, 그 자체로 박물관처럼 구조화되는 것, 그게 현대 지리학에서 말하는 '도심의 박물관화'라는 개념이다.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 도시들이 이 길을 걸어간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걸어갈 길이 위험천만한 건물에서 다가올 미래 이익을 고대하며 사는 것인지 지금도 앞으로도 튼튼할 건물에서 사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대한민국의 상징이 묻어난 도시에 사는 나에게 생각과 고민을 주었다.
2.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사교육비는 1인당 25만 6,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렇게 많은 사교육비를 사용하지만 이 선택이 학생의 미래는커녕 가정의 행복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을 말한다. 우리도 모두 알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치킨게임 상황을 그도 알고 있다. 그는 국가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교육은 국가가 시민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이고, 거래는 국가와 학교 사이에서 벌어진다. 학교를 정부 안에 내부화하면 그게 국립학교 혹은 국립대학 시스템이고, 외부화시키면 사립 고등학교와 사립대학이 된다.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교육에서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공공 서비스를 사적 서비스처럼 생각하며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왜 오해일 수밖에 없는지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시장보다 더 큰 사교육 시장은 면밀히 살펴보며, 부가가치가 무엇이며 산업적으로 육성해나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묻는다.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각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우리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
그가 좀처럼 들여다보기 쉽지 않은 국가의 민낯을 거침없이 공개하는 이유는 "국가가 집단적으로 벌이는 사기극이나 사기적 구조는 개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지금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 안정성, 문화적 다양성, 개인의 행복 등 다양한 부문도 더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국가의 사기》는 현실을 고발한다. 보통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많은 책은 비판은 날카롭게 하지만, 대안은 흐지부지한 경우가 많다. 《국가의 사기》는 다르다. 굵직굵직한 문제에 대해 말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판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답답함을 주지 않는다. 그의 방법은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작은 방법들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방안들이었다. 그런데, 이 점이 난 불편했다. 논리적이지 않아서, 현실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어서 말이다. 또 《국가의 사기》 속 문제들이 좀처럼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며, 국가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사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은 적절하며, 그 메시지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토대는 우리가 좀처럼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는 국가라는 보이지만 정확한 실체를 잡을 수 없는 것의 생태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물론 《국가의 사기》에서 말하는 것이 음모론이나, 사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 주장 역시 공론의 장에 나와 점검할 수 있다면, 이 역시 매우 의미 있다. 《국가의 사기》의 역할은, 예비 타당성 검토와 비슷하다. 시기를 고려한다면, 국가 타당성 검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이에 대해 시민 차원에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있다. 국가에서 추진하는 사안들에 대한 질문과 답, 문제 제기와 반박이 이루어지는 것만큼 건강한 시민사회는 없다.
그리고 그 시민사회의 중심에는 김구 선생님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희망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실제 우리 사회를, 국가를 바꿀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