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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평점 :
겨울 바다 한복판에서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차라리 생각이란 걸 하지 않으면, 더 편하고 즐거울 거예요.
하지만 내 맘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더군요.」
이제는 절대로 닿을 수도, 갈 수도 없는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투가 펼쳐진다.
하지만 《얼어붙은 바다》를 읽는 순간, 그 치열한 싸움은 내 생각 속에서 '현재'가 된다.
낯선 소설이었다. 그리고 친근한 소설이었다. 말도 안되는 두 가지 느낌이 교차하는 소설, 그런 소설이었다. 《얼어붙은 바다》는.
낯설다는 표현은,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욕설과 비속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불쾌했다. 이뿐만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의 배경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삼았던 시대, 고래기름에서 등유로 연료가 교체되던 때로 추론컨대 아마도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 일 때였다. 이것만으로도 낯선데, 영국 중북부 지방에서 배 한 척이 북쪽 바다로 고래를 사냥하러 떠나는 배에서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이 모든 것이 낯선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근했다. 소설 속 텍스트를 읽다 보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얼어붙은 바다》는 멀리 떨어져서 지나간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마치 내 눈앞에 펼쳐진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소설 속 문장에 담겨있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 진행되는 일인 양 서술한 이야기 구조, 과거 회상조차 현재성을 띠는 듯한 문장들은 지금 나와 가장 동떨어진 소설 속 상황을 내 앞에서 펼쳐진 문제로 끌어 놓는다.
바깥은 영하 18도, 남실바람이 불었고,
바다는 진창으로 변한 런던의 눈과 같은 색깔, 같은 점도였다.
영국 해안가 러윅에 정박한 볼런티어(Volunteer) 호가 북쪽 바다로 출항한다. 고래를 잡아, 그 기름을 채취하는 것이 주목적인 포경선답게 이 일에 필요한 선원들을 배에 태운다. 작살꾼, 난파를 대비한 목수, 선장 그리고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북극해를 향한다. 인도에서 돌아온 전직 군의관 패트릭 섬너, 작살꾼으로 고래를 사냥하는 헨리 드랙스, 선장 브라운리, 일등 항해서 캐번디시 등 이들은 추위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바다 위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다. 이 극한 상황을 모두가 함께 극복하는 모습을 그려도 좋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언 맥과이어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마치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처럼 갑작스러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라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듯이 이언 맥과이어의 《얼어붙은 바다》는 북극해 위에 포경선 위에서 동일한 질문을 한다.
섬너는 가끔 궁금하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주변의 세상이 거짓인가?
걱정과 비통, 지루함과 걱정의 세상 말이다.
섬너가 다른 것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이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그 둘 다 진실일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거친 바다 위 배 위에서 자신의 작은 손길에도 기쁨을 느끼지만 항해 중간중간 잔인하고 추잡한 행동을 일삼는 선원들은 섬너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다리, 팔, 몸통, 머리. 그가 관심을 갖고 걱정한 것은 그들의 육체뿐이었다. 선원들의 나머지 다른 부분 - 그들의 도덕적 성격과 영혼 -에 섬너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선원들을 교화해 유덕한 존재로 끌어올리는 것은 자신의 임무나 과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을 판단하고, 달래고 위무하며, 친구가 되는 것 역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번 항해는 그저 남다른 겨울 바다 항해일 뿐이다. 북극곰, 고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동물원을 가대했지만, 겨울 바다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감도는 공간이 아닌 고래의 피와 사람의 피가 뒤엉킨 바다 그 자체였다.
분노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해석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격렬한 분노가 위세를 더하며 그를 집어삼켰다.
회색의 기다란 파도가 에너지를 응축해,
마침내 해안을 덮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야생 동물원을 기대한 군의관 섬너는 인간의 야생성을 목도한다. 섬너를 찾아온 열세 살 남짓의 한 소년 사환 조지프가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누구라도 저질러서는 안되는 폭력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범인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바꿀 수 없는 명백한 사실도 함께 알게 된다.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이때도 그의 관심 대상은 도덕적 성격과 영혼이 아니다. 그는 폭행과 살인이라는 명백한 범죄 행위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자신이 조금 더 조지프에게 관심을 보였다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책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때 살인범이 자신을 노리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도 그에겐 없다. 그는 오로지 사실과 범죄 그리고 진범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공허한 자유가 그를 휘몰아쳤고,
분명 그는 이를 즐겼다. 사실 그것은 부랑자나 짐승의 자유였다.
《얼어붙은 바다》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그 범인이 누군지 알 것이다. 작살수로 승선한 드랙스가 그 범인이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인간으로 저질러서는 안되는 잔혹함을 거침없이 드러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승선하기 전, 바닷가 부두에서 한 소년을 성폭행한 그가 이 배 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속 범인이다. 하지만, 배 안에 있던 게이인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받는다. 자신이 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그 마수에서 벗어난 듯 그는 당당하게 행동한다.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그의 행동과 심리를 읽을 때면, 인간이 이렇게나 잔인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집요한 섬너의 추리로 인해 드랙스는 자신의 팔뚝에 남은 조지프의 이가 결정적 증거로 돌아와 그는 잡힌다. 그는 선장을 죽이는 잔인무도함을 보인다. 만약 이렇게 소설이 끝났다면,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 이야기로. 선의 경계에 선 선과 완전한 악의 대비가 드러난 소설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바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지 않는다. 갑자기 배는 난파하게 되고 드랙스는 제한적 자유를 얻게 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드랙스는 거친 언사와 인간의 추잡함이 난무했던 배이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과 이성이 존재했던 배와 낯선 야만의 땅에 공포와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분노는 신속하고 예리하지만,
갈증은 시간을 길게 끌며 오래 지속된다.
분노에는 항상 끝이 있다. 피범벅의 피날레 말이다.
하지만, 갈등이 바닥을 알 수 없고, 무한하다.
날씨가 맹렬하고 험악했는데도
은밀한 안온함을 느꼈다는 것이 확실히 이상했다.
마치 저승 같았다.
실제 세계는 잊어버리고, 그와 관련 없는 별개의 세계인 것 같았다.
뱅글뱅글 휘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섬너 자신뿐이었다.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범인보다 더 두려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언젠가 자신들이 구조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들은 점차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선원들은 《15소년 표류기》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다. 생존을 위해 떠나는 사람과 생존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리고 섬너는 이 모든을 의사인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이성을 따라 곰을 사냥하기 위해 떠난다. 그는 걸으며 이 모든 상황의 예측하고 꿈으로 꾼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으로 생각한다.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화되자, 그는 혼란을 느낀다. 자신을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과 자신의 감정 앞에 섬너는 조지프의 죽음 때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과 마주한다.
내게 화난 모양이라고, 섬너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섬너가 연민과 부끄러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헝클어진 수염 가장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섬너는 자신이 약화돼, 형체를 잃고,
슬픔과 후회가 뒤범벅된 죽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섬너가 극한의 상황에 본 소년은 누구였을까. 조지프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을까. 혹은 다른 사람이었을까. 그가 흘린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그는 부끄러워했을까. 이 대목을 읽을 때 난 섬너의 눈물이 철저히 자신만을 생각한 자신, 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본 것일까. 혹은 스스로가 억울했던 순간 그 이후 세상을 원망했던 것이었을까.
이 생각은 《얼어붙은 바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 반전처럼 머리를 쨍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론이었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가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과정은 정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정말 얼어붙은 바다에 혼자 서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 소설이었다.
글을 쓰며 든 생각인데, 《얼어붙은 바다》는 한번 읽어서 알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 속에 담긴 것들이 많아, 생각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다. 지금 한 번 읽고 난 뒤, 생각이 얼어붙은 듯,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인물에 주목해서 보느냐에 따라 바다에서 잔인함을 발견할 수 있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신비로움을 발견할 수 있고, 고독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면이라고, 이언 맥과이어는 《얼어붙은 바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다음에 읽을 땐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