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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헤르만 헤세가 쓴 산문,
그의 사랑이 녹아진 글들.
삶의 한가운데, 길을 잃고 멈춰 선 우리에게,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그만의 작고 소중한 비밀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
"이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의 배경은 언뜻 보기에는 성과 산, 골짜기와 정원, 가까운 해변이지만, 실제로는 시인의 영혼이다. 그의 영혼 안에서 이 세계의 온갖 현상들은 아름다운 하늘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부드럽고 말갛기도 하다."
독일이 자랑스러워하고, 전 세계가 사랑한 작가 헤르만 헤세.
그는 많은 소설을 남겼고, 시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으로 시공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채우고 있다. 그가 쓴 수많은 문학작품은 그가 할 수 있는 글과 언어로 만든 하나의 세계였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 그는 작품으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고백한 작품이 자신의 작품으로 밝혀질 때 한 글을 통해 한 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를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작품이라는 베일에 싸인 그를 본 건 아닐까.
평론이 캐내지 못하는 비밀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도 혼자서만 아는 작고 소중한 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베일이 찢겨나간 다음 나는 《데미안》에 주어진 폰타네 상을 반납하고, 출판사에 앞으로 이 책의 새로운 판본에는 내 이름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은 헤르만 헤세가 책을 읽고 쓴 서평들을 엮은 책이다.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책에 대한 이야기이자, 누군가도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긴 글이다.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로,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그의 편지다. '책'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의 책들은 그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길들이고, 책을 읽고 쓴 서평은 그 길에서 찾아낸 것이다. 여느 소설 평론집이나, 서평집을 떠올렸다면, 그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작가가 생산한 1차 도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 엮어진 2차 도서임에도 책들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만든 세계가 책 속에 가득 담겨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글들은 평론가들과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하지만 그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 자신에 대한 글들이다. 작가이자 독자였던 그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았고, 어디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는지, 어디에서 행복에 젖어들어갔는지, 어디에서 사랑을 배웠는지, 신비로운 세계의 체험을 한 곳이 어딘지를 그의 글로 들려준다. 오로지 인간 헤르만 헤세의 글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는,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는 작은 틈 사이를 우리의 생각으로 빼곡히 채워나가게 만들어준다.
그에게 도스토옙스키란?
도스토옙스키는 그냥 천재적인 작가, 러시아 낱말을 완전히 장악한 사람, 러시아 영혼에 대한 속 깊은 해석자만이 아니다. 그는 고독한 모험가이며, 운명에 의해 기이하고도 눈에 띄게 선택된 사람, 총살 직전 마지막 순간에 은사를 입은 죄수, 고독하고 가여운 안내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는 헤세의 절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편집자였던 폴커 미헬스가 펴낸 헤세 전집 20건 중에 5권의 책을 원전으로 삼았으며, 이중 73편을 안인희 씨가 추린 것이다. 서평이기 때문에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평은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에겐 도스토옙스키 부분들이 특별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작품(까라마조프가 형제들)은 결코 다함이 없다. 나는 며칠이라도 여기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보고 또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 하나가 더 생각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했고, 그의 소설에 담긴 것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연구하기로 마음먹으면 평생을 다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던 대학 스승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읽을 때마다, 도스토옙스키라는 문호의 이야기와 세계 속에 빠져들었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올 때면 새로운 것을 가지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도스토옙스키'다. 무려 3편의 서평과 작가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단지 3편의 서평을 써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백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을 두고 쓴 글의 길이는 다른 산문보다 훨씬 길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글 중간중간에 담긴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을 언급할 때면 그가 얼마나 도스토옙스키를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막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임함을 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그의 표현에 적극 공감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없을 때, 끊임없는 죽음이 자신의 주변을 감돌 때를 도스토옙스키만큼 이해할 수 있는 작가는 없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었고, 그 경험이 그의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헤르만 헤세는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다. 20세기 초반 인류의 잔악함이 끝이었던,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피부로 느꼈고, 눈앞에서 목도했던 그에게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한 건 당연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비참함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영혼을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이기에. 난 헤르만 헤세의 생에서 가장 큰 위로를 준 작가가 도스토옙스키란 생각이 든다.
그는 수많은 책들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73편의 글은 그가 걸었던 길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잃어 주저앉아 있는 우리에게
그는 자신의 삶이 툭툭 묻은 지도를 건넨다.
그 지도가 바로,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