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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 왕자가 내 안에 들어올 때
"마음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소행성 B 612에서 찾아온 소년이 있다. 1943년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7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소년'일, 그의 이름은 '어린 왕자'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그리고 때때로 존경을 받는다. 점차 마음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1943년에 발표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여전히 명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영향력은 전 세계 수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판본으로 제작된 걸로 증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생텍쥐페리의 삽화와 같은 분위기가 녹아진 만화책도 있고, 오리지널 판본도 있고, 다양한 번역자의 손에서 세상에 나왔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시공간을 넘어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을 비롯한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인간적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짧은 이야기에 이별을, 절망을, 사랑을, 희망을 모두 담은 이야기로 유명하다.
한 철학자가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만났다. 그는 왜 자신과 어린 왕자의 만남을 글로 썼을까?
바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처음 『어린 왕자(Le petit prince)』가 나왔을 때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어린 왕자가 하는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좀처럼 생각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것들을 잃은 줄도 모르고 우리는 살아간다. 어린 왕자가 소행성을 떠나 마주한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마주할 때면, 우린 인생과 닿아있는 지점과도 마주 설 수 있기에 그는 글을 썼다. 『어린 왕자의 눈』의 저자는 어린 왕자 속 가르침은 힘겨운 삶의 고비를 버티거나 넘기거나 혹은 피해 갈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들이 적힌 책이 『어린 왕자의 눈』이다. 어린 왕자가 만났던 수많은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왕자 내면에 쌓인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 요즘에 『어린 왕자(Le petit prince)』가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5000송이의 장미 중
내가 지금 길들이고픈 장미
길들여짐. 사랑. 우정. 책임. 관심. 행복. 선택. 신분. 상품화. 소원해짐. 소유. 충성. 죽음...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속에 담긴 철학적 질문, 주제임과 동시에 현대 사회의 주요한 철학적 문제이기도 한 것들에 대해 저자는 15개의 짧은 글을 통해 말한다. 많은 주제 중에 내가 마음으로 길들이고 싶은 "장미"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더 나아가 길들여짐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태도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계산적이지 않고 거짓되지 않으며 왜곡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전혀 '어른스럽지' 않고, 사물 본연으로 돌아가 사랑과 우정을 주고받으며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사막에서도 생명을 이어갈 우물을 찾을 수 있다.
어린 왕자의 마음이 아니라 왜 "어린 왕자의 눈"이란 제목을 지었을까. 마음이 어린 왕자를 생각했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인데 말이다. 난 이 제목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개인의 몫이다. 어린 왕자의 마음은 개인이 어떻게 마음을 품느냐에 달린 문제이지, 책이 그 마음을 보여줄 순 없다. 책은 시각을 보여주고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건 우선 우리의 눈으로 글을 읽고 그다음에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특히 바쁘고 마음이 무덤덤해진 현대인에게 마음의 단계보다 눈으로 먼저 시각을 가지는 게 더 필요하다고 저자는 느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생텍쥐페리에게서 얻었다. 부담 없이 읽어도 된다. 이 책은 잘 안 보이는 마음이 아니라, 우선 우리 눈에 잘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다음에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면 된다. 그리고 그 정도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게 고르면 된다.
"기억하세요. 동심을 되찾으라는 것은 당신 몸이나 지능을 어린 시절로 돌려놓으라는 뜻이 아니에요. 마음을 다해 당신이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꿈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듯이죠. 꿈과 가치는 나이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죠."
동심이 주는 순수함 그리고 깨끗함은 언제든 파괴될 수 있을 정도로 여리다. "동심을 유지하고 있다"라는 말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고, "동심이 파괴되었다"에는 안타까움과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지 모른다는 체념이 담겨있는 듯하다. 동심이란 단어를 보는데 왠지 씁쓸함이 스쳤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 동심이란 단어는 없었다. 굳이 동심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동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에게 동심이란 단어는 낯설 뿐이니까. 수많은 동화, 어린이 소설 등에 "얘들아, 동심을 지키렴"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언제 잃었을지 모르는 동심을 잃었다는 걸 이 책과 함께 확인한 느낌이었다. 팩트를 확인했을 때 받는 충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상하게 난 동심이란 그 아름다운 마음을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눈과 마음을 기울였다. 어린 왕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현실 속 우리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이 세상은 분명 달라진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것일지라도."라는 똑 부러진 결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 하나를 가지게 된다.
첫사랑에 서툰 이유는 멋진 사랑을 바라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상처받고 넘어지고 좌절하는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물론 사람에겐 사랑하지 않을 권리도 있지. 하지만 사랑이 없는 인생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 너랑 영원히 헤어진다면 난 상처받을 거야.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겠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았다면 상처를 받을 일도 없을 거야. 상처가 없는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 아니야. 진짜 사랑이 아닌 거지."
맺음말에 저자가 가장 공들인 부분 중 하나라고 말한 부분이다. '사랑' 그중에 '첫사랑'이라는 그 아련하고 미숙했던 그 과정에 대한 부분. 첫사랑에 대한 부분은 참 공감이 많이 갔다. 첫사랑하면 행복하기보다 이불킥하고 싶은 미숙한 부분 한가득인 기억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젠 기억조차 흐릿한 그때의 감정을 '우리가 첫사랑에 서툰 이유'를 읽으며 그리고 '그럼에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읽으며 상기했다. 좋아했던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시간이 지나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에 남은 감정이 남긴 숙제를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사랑 영역에서 미달 성적을 받았던 내 첫사랑에 대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며 인정하고, 그다음을 도모해가는 거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첫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에겐 먼 이야기 같은 "첫사랑은 사랑이라는 여정의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란 말이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힘들다면, 어린 왕자의 방황의 자취를 따라 치유 여정을 떠나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대상과 마음을 대해 관계를 만들어가야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이 자연스레 생겨나고, 또 책임이 주는 구속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책임이 하나하나 늘어나면서 한 사람의 자아가 형성되고,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하며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어린 왕자와 독자들의 예상과 달리, 장미는 인생 최대의 위기 순간에 어린 왕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에 쓰던 고깔마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장미는 여기에서 전에 없던 독립심을 보여주었다."
사랑 뒤에 우린 책임이란 말이 있단 걸 좀처럼 생각하지 못한다. 자유와 책임은 칼과 방패처럼 단짝인 듯 보이는 것과 달리. 저자는 책임감과 사랑이란 감정을 떨어트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책임감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만약 사랑하지만, 책임지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말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책임감과 함게 이야기하는 또 다른 감정이 독립심이라는 점이다.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에선 책임감을,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독립심을 말하지만,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고 다른 뜻을 말하는 두 단어가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점은 의미심장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 단 하나의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 여러 감정들과 생각이 여러 개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들이 우리의 지금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사랑과 함께 오는 책임감 그리고 독립심 등 다양한 감정의 실타래를 차근차근 순서대로 풀어낸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란 우리의 생각이 나 신념을 단순히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이나 가치 등 삶 전반이 어떠한지 헤아리는 것을 의미한다.
글의 말미에 저자는 살짝 『어린 왕자(Le petit prince)』가 시공간을 넘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처음 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읽었을 때를 떠올렸다. 필독도서로, 국어 시험 서술형 10점을 더 맞기 위해서 읽었던 어린 왕자와 20대에 우연히 읽은 어린 왕자 두 번의 읽기 사이에 난 달라졌단 걸 느낄 수 있었다. 맨 처음 내 마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텍스트만을 들여다보기 급급했지만, 지금은 글이 주는 마음의 파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난 얼마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을 밝힐 수 있었던 걸까. 책을 읽으며, 우리의 시력은 좀처럼 더 좋아지기 쉽지 않은데, 마음의 시력은 나빠질 가능성도 있지만, 좋아질 가능성 역시 있다는 게 참 위로가 된다.
다음에 더 깊이 더 넓게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며, 2018년 2월에 두 권의 책을 덮었다.
'독서의 기쁨 |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로 책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우리가 읽은 책이 알게 모르게 삶 가운데 녹아들어 우리의 내면을 이루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삶을 채우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우리의 삶을 앞으로 이끌고 나아갈 것이다.
독서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왕자의 눈』과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읽는 동안, 어린 왕자와 장미 그리고 여우의 마음과 생각에 나도 모르는 새 젖어들어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