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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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보임





나와 다름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본 것들이 결국 나이기 때문입니다.


시각 장애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내 동생이 시각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말이 익숙하지만 한없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삶에서 종종 마주했다. 그렇기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는 마냥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을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평범한 이야기 일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 대해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된 건 '다르게 보기(Another way of seeing)'을 추진했던 저자의 이력 때문이었다. 저자가 추진했던,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을 동생이 다녔던 학교에서도 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다른 부 활동을 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동생의 절친한 친구가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동생에게 그 부분을 읽어주자, 가명이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하며 기억력 좋은 동생 답게 그 때 친구들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피식 웃다가 제목을 다시 봤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본질의 빛을 따라서'를 읽으며 과연 질문의 본질이 무엇일지 알고 싶어졌다.


"제가 전맹이라서 예전에는 이미지가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자유가 떠올라요."


저자는 청주에서 살았고, 청주에는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특수 학교가 있는 지역이다. 의사였던 아버지께 은연중 느꼈던 것이 오랜 시간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순간에 미술 대학교수를 하던 저자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사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고, 좀처럼 시도할 생각조차 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쉽지 않고, 어렵고, 특별한 도전"이라는 생각 말이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마음 먹기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저자를 따라다녔다. 시각 장애 학생들을 만나 들었던 질문 수많은 질문들이었다.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던 질문들이었다. 그 중에 맨 처음이자 이 책 속 프로젝트를 시작하도록 이끈 질문이 "선생님은 어떻게 보이세요?"였다. 이 질문은 저자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아마 이와 같은 질문은 그녀에게만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철렁 내려앉는 생각에서 다른 철렁이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는 시각 장애를 겪는 친구들에게 조금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을 주었다.


예술 가운데 미술을 시각장애인이 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치료의 차원의 미술이 아니라 배움으로, 예술로 느끼는 미술 말이다. 지금은 많이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각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술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술보단 공부, 미술보단 안마가 우선시되는 시각 장애 학생들의 교육 현장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 지금은 상상을 할 수도 없었던 그 어려움과 마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게 힘든 건 이런 상황만이 아니었다. 코끼리 프로젝트를 추진했을 때 코끼리를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동물원과 사육사가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각 장애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며 거리를 두는 사람들과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한마디로 "편견"이 가장 힘들게 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코끼리를 만지는 프로젝트는 시작했으며, 성공했다. 편견이 힘들게 했지만, 그 편견을 딛을 만큼 힘이 되는 만남들이 있었다. 힘든 상황을 훌훌 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마음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이 촉각으로 후각으로 청각으로 코끼리와 소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통은 단지 코끼리와의 소통만은 아니었다. 코끼리를 만진 뒤 이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아이들은 자신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미술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각과 말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시각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른 감각으로 시각을 느낄 수 있도록 소통을 열어 주었다. 그 소통들을 읽으며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익숙했던 감각을 다르게 느껴볼 수 있었다. 마치 "보지 못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법"을 말이다. 이처럼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를 읽다 보면 세상이 더 다채롭게 보인다. 상상이라는 세계가 펼쳐지는 방식과 그 상상이 우리의 세계와 어떻게 부딪치는지 그 모든 걸 볼 수 있다.


시각 장애 아이들과 해나갔던 미술 프로젝트 결과물을 사진으로 바라보며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느끼고 표현하고 살고 있는지. 누군가에겐 간절한 감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싶은 감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알 수 없는 미지의 감각을 느끼는 난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잘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문득, 동생과 산책했을 때 기억이 난다. 동생과 산책을 하며 길거리의 풍경을 열심히 설명하며 혼자 걸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나는 시각장애의 세계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아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안 보인다는 것은 단지 결핍이나 무능력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는 본다는 시각적 감각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난 저자가 찾은 빛이라고 생각한다. 시각 장애라는 낯선 세계에서 발견한 빛 말이다. 한편 한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저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에세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안경이다. 세상을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안경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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