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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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무더위는 심해지고, 심각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 잦은 태풍. 지난 계절만 돌아봐도 지금까지 겪어온 계절과 달랐다. 달라진 날씨를 직접 체감하며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지만 막상 실천 앞에서는 망설이는 애매한 사람. 이 책의 타깃은 바로 나였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다른 책과 확실히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가 타깃을 나와 같은 독자로 정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이다. 우리가 개인으로 맞는 위기이다. 여태 해 오던 식사를 할 수 없고, 여태 알던 행성에서 살 수도 없다. 식습관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지구를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단순하고도 어렵다.

결정을 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책에 타협 불가능한 논리와 수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정확한 수치를 믿을 수 없어서 기후변화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의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알지만 믿지 못하고,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분석한다. 빈틈없는 논리가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던 감정의 영역을 건드리며 공략한다. 소설가의 논픽션, 조너선 사프란 포어란 작가의 논픽션이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다. 그는 기후변화란 "지금으로서는 추상적이고, 다방면에 걸쳐 일어나며, 느리고, 눈에 확 띄는 특징이나 순간들이 부족한 전 지구적 위기"이며, 이 위기를 믿지 못하는 우리에겐 '믿음의 위기'로 재앙이 엄습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걱정이야.

내가 바뀌지 않을까 봐?

그들이 너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까 봐 걱정돼."


왜 믿지 못하는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인지. 기후변화 앞에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낸다. 적당한 타협 없이 그 모순을 다룬다. 흥미로운 건 그 모순을 타인에게서 찾지 않고 바로 저자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완전한 채식을 실천하지 못하는 솔직함,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을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의 고백은 내가 읽어온 기후변화 책과 다른 '인간미'가 있었다. 그 진솔한 글엔 미적거리는 내 마음이 자주 보였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도 이제 정말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을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지구를 파괴할 존재는 우리뿐이다. 지구를 구할 존재도 우리뿐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희망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지만 반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의 모든 생명을 완전히 쓸어버릴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완전한 파멸이 닥치면 지구상의 생명을 다시 살려낼 방법도 찾은 것이다. 우리가 홍수이고 방주이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과 같은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저자는 책에서 누차 강조한다.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왜냐하면 기후변화에서 이 행성을 구할 수 없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삶을 완전히 바꾸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 한끼라도 채식을, 한 번이라도 비닐을 덜 쓰며 조금씩 길들이면 된다. 버터와 크림이 잔뜩 들어간 빵을 덜 먹고, 맛있는 고기를 조금씩이라도 참아야겠다. 하루에 한 끼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오늘은 빵도 고기도 먹지 않았다. 매일은 어려워도 자주 실천해야겠다. 내가 다시 나태해지지 않았으면, 나도 우리도 모두 날씨니까.


※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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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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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잘 가지 않았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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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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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아낀다’를 연필 쓰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면 ‘연필을 즐겁게 자주 쓴다’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이 세상에서의 소멸을 돕는 방식으로의 아낌이다. 연필들은 천천히 사라진다.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의 손에서. "

이 책의 에피소드는 내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저자만의 경험이 단단한 흑연처럼 뭉쳐져 있었다. 그 속으로 닿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깎듯 이야기를 읽었지만, 나는 충분하게 그 이야기에 닿지 못한 것만 같다. 어쩌면 난 2B 정도를 기대하고 읽은 이야기에 4B 정도의 이야기 아니 그 이상의 진하기를 가진 이야기를 만나 그럴지도.

"사람이 잘 부서지는 존재이고, 의아할 만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안다’고 말하기보다 ‘모를 수가 없다’고 해야 한다. 삶이 환기시키는 건 그런 거다. 우리는 그냥 알기보다 대체로 모를 수가 없는 경험으로 자란다. 상담가가 내려놓은 연필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 흑연은 잘 부서졌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흑연도 강하지 않았다. 나는 다행히 흑연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더 약해질 수 있는 존재가 나이기도 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어서 모른 척하고 산 것일지도."

이야기 중간중간에 어떤 문장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해 작가의 이야기를 연필과 엮어낸 글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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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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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산 《태고의 시간들》을 펼쳐보지도 않았는데,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실존적 스릴러!"라는 카피 때문이었다.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스릴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찬바람이 스산해지는 계절만큼 스릴러 읽기 좋은 때는 없기 때문이다.

《죽은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는 폴란드의 어느 고원에 있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다. 왕발의 기묘한 죽음이 일어난 이후로, 마을 경찰 서장이 살해된다. 흥미로운 건, 살해 현장에 남은 흔적은 사슴들의 발자국뿐이라는 점이다.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수사하지만 두셰이코는 다른 각도로 사건을 관찰한다. 밤하늘에 떠오른 별을 통해 미래를 가늠하고, 이웃인 괴짜와 기쁜 소식 그리고 자신의 제자 디오니시오스와 대화를 나누며 이 사건에 얽힌 비밀을 하나둘 알아낸다.

외딴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올가 토카르추크는 고원에서 일어난 스릴러에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다. 《죽은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여느 스릴러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보다, 범인과 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할 수 없지만) 결말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단순한 스릴러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선 점성술과 두셰이코의 인간과 동물, 식물이 동등하단 관점이 중요하다. 비거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거니즘을 비롯한 내가 가진 통념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린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옳음이나 선의 방향을 조금 비튼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 대신, 스릴러를 이용한 잔혹한 디스토피아로. 고요했던 고원을 사냥이란 죽음 대신 살인이란 죽음으로 전복하며.

이 소설에선 죽음이 꽤 중요하다. 선과 악을 뒤로하고, 죽임에 대한 정확한 갚음으로 죽음을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그 이유는 인간과 동물, 식물이 모두 공정한 순간이 죽음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삶의 기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소설에서 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존재가 선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는다. 또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모든 생명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다. 범인은 "만약 악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선은 그 세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생각과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은 꽤 여운이 남았다.

시와 두셰이코의 점성술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낯설다는 느낌이 확 드는 스릴러 소설을 읽어 좋았다. 스산한 계절에 읽기 좋은 기묘한 이야기였다.

1년 정도 묵혀둔 올가 토카르추크의 또 다른 소설을 꺼내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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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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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그려지는 글이 있다. 글을 따라가면 머릿속에 인물이 그려지고 배경이 나타나고 바뀌는 글. 그르니에 글이 그렇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미지가 떠올랐고, 이내 바뀌었다. 그르니에 선집 시리즈는 1980년에 출간되었고, 새로이 번역해 새 커버로 재출간한 것으로 《섬》은 그 첫 번째 책이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내 어린 시절, 반듯이 누워서 그리고 오래도록 나뭇가지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하늘, 그리고 어느 날 싹 지워져 버리던 그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_29-30쪽

이 책은 읽으면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이내 다음 이미지로 또 바뀐다. 잔상조차 남길 수 없는 희미한 이미지만을 남긴 채 이어지는 다음 이미지는 여전히 희미하다. 어떤 글은 힘을 강하게 주어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듯한 글이었다. 희미한 이미지만 남는 글이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_ 73쪽

하지만 읽다 보면, 어려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 이웃과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며(소소한 이웃갈등) 동물과 함께하며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을 충분히 즐기며 사는 삶에 대한 글이었다. 무엇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주어진 것을 부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사는 인생에 대한 글이었다. 밍밍하고 심심한 하지만 매력적인. 마치 떡볶이 덕후인 내가 오리지널 평양냉면을 맛보았을 때 느낌이랄까.

어떤 열렬한 사랑은 그 주위에 군건한 요새의 성벽들을 쌓아 두려 한다. 그 순간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_80쪽

여백이 많고 흐릿하기에 이런저런 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오묘함이 있다. 마치 존 버거의 글을 읽었을 때 느낌과 아주 비슷했다. 별것 아닌 일상을 나열한 글에 나의 삶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 그르니에 글이 나에게 그랬다. 아마 그래서 카뮈가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글이라서?

내가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언제 읽고 싶을까 생각해보았다.
읽고 싶은 책을 한 가득 가지고 고요한 곳에 들어가 책만 읽으며 한 달 정도 살고 싶다. 글을 쓰겠다는 목적이나, 득도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채가 아닌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글을 읽고 또 읽는 것만을 즐기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잡생각에 시간을 내어주며. 한참 딴청도 좀 부리며. 그러다가 다시 '이러면 안 되지' 싶은 마음에 다시 읽으며. 그러다 좀 졸기도 하며. 그렇게 뒹굴뒹굴하며.
그런 순간이 온다면, 머리맡에 두고서 낮잠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좀 일찍 오면 좋겠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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