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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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산 《태고의 시간들》을 펼쳐보지도 않았는데,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실존적 스릴러!"라는 카피 때문이었다.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스릴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찬바람이 스산해지는 계절만큼 스릴러 읽기 좋은 때는 없기 때문이다.

《죽은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는 폴란드의 어느 고원에 있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다. 왕발의 기묘한 죽음이 일어난 이후로, 마을 경찰 서장이 살해된다. 흥미로운 건, 살해 현장에 남은 흔적은 사슴들의 발자국뿐이라는 점이다.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수사하지만 두셰이코는 다른 각도로 사건을 관찰한다. 밤하늘에 떠오른 별을 통해 미래를 가늠하고, 이웃인 괴짜와 기쁜 소식 그리고 자신의 제자 디오니시오스와 대화를 나누며 이 사건에 얽힌 비밀을 하나둘 알아낸다.

외딴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올가 토카르추크는 고원에서 일어난 스릴러에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다. 《죽은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여느 스릴러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보다, 범인과 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할 수 없지만) 결말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단순한 스릴러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선 점성술과 두셰이코의 인간과 동물, 식물이 동등하단 관점이 중요하다. 비거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거니즘을 비롯한 내가 가진 통념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린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옳음이나 선의 방향을 조금 비튼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 대신, 스릴러를 이용한 잔혹한 디스토피아로. 고요했던 고원을 사냥이란 죽음 대신 살인이란 죽음으로 전복하며.

이 소설에선 죽음이 꽤 중요하다. 선과 악을 뒤로하고, 죽임에 대한 정확한 갚음으로 죽음을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그 이유는 인간과 동물, 식물이 모두 공정한 순간이 죽음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삶의 기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소설에서 선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존재가 선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는다. 또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모든 생명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다. 범인은 "만약 악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선은 그 세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생각과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은 꽤 여운이 남았다.

시와 두셰이코의 점성술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낯설다는 느낌이 확 드는 스릴러 소설을 읽어 좋았다. 스산한 계절에 읽기 좋은 기묘한 이야기였다.

1년 정도 묵혀둔 올가 토카르추크의 또 다른 소설을 꺼내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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