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엔딩 보게 해주세요 - 하이퍼리얼리즘 게임소설 단편선
김보영 외 지음 / 요다 / 2020년 5월
평점 :
회사에는 나와 다른 책 취향을 가진 분이 계신다. 공통점은 모두 책을 좋아한다는 점. 다른 점은 그분은 소설을 좋아한다는 점. 한국 소설을 주의 깊게 관찰하신다는 점. 덕분에 좋은 책 출간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그분을 통해 알게 된 소설이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커피만으로 잠이 달아나지 않던 어느 봄날 그분과 나는 열심히 굿즈 포장을 하고 있었고, 그때 나왔던 책 이야기였다.
⠀
엔딩 보게 해주세요.
⠀
아니, 이렇게나 매력적인 제목을 보았나. 심지어 표지는 더 귀여웠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제목을 가진 소설을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자 출신 소설가들이 체험, 지식, 애정을 녹여 만든 다섯 편의 흥미진진한 현실 게임소설"을 말이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가 게임을 모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 순간, 내 플레이어에게 관심을 느꼈다.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를 떠나서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_ 성전사 마리드의 슬픔, 125쪽
⠀
내가 했던 게임의 시작은 학습 게임이었다. 움파룸파라는 CD 게임이었다.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 카트라이더를했었다. 3개월도 즐기지 못했다. 대학생 때 크아를 했다. 꽤 재미있었는데, 게임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왜냐하면 시험 기간에도 틈틈이 하던 게임을 방학 때는 쳐다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집에 내가 했던 게임 비슷한 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내가 관심 있는 건 우리의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즐거워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감사하는 건 아직도 게임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 그것뿐이다. _ 즉위식, 250쪽
⠀
내가 모르는 게임 이야기에, 무슨 게임인지 상상하며 소설을 읽었다.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읽으며 '무슨 이야기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을 다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 읽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게임이라는 공감대 없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는 대목들이 내 눈을 붙잡았다. 더 읽어보라고.
⠀
"그러냐. 아무튼 사람은 찾아봐. 세상은 넓고 마이너도 누군가에겐 메이저야." _ 당신이 나의 히어로, 72쪽
⠀
그렇게 다 읽었다. 게임을 모르는 유저에게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클리어하기 힘든 퀘스트의 연속이었지만. 공감이나 이해라는 완벽한 엔딩 대신, 모든 이야기의 끝을 보았기에. 마음에 드는 이야기 한 편은 발견하였으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