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통은 어떤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25개의 이야기, 25번 살아있다는 증거
삶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 고통을 피하는 일은 곧 삶을 포기하는 일이다
"삶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에, 오늘을 견딘 당신은 이미 쾌 근사한 하루를 산것이다."
우리는 늘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또 하루를 살아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역시말이다.
정답을 먼저 외우고, 경쟁에서는 지면 탈락하는 구조 속에서 '질문'은 지체이고,'의문'은 비효율이 되었다.
정답을 먼저 외우고, 경쟁에서는 지면 탈락하는 구조 속에서 '질문'은 지체이고,
'의문'은 비효율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쟁에서 살아와서그런가 이런 경쟁이 오히려 익숙해지고 그런결과는
누군가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사고방식이 익숙해진 요즘이다.
뉴스를 보고 살고 그 정책을 따라 살고있지만 오히려 그 뉴스에 대해 묻지 않게 되지 않았는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른채말이다.
'너는 이 안에서만 움직이면 된다.' 라는 무엇의 선이 그어져 있다.이런 구조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선택을 '나의선택'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너는 이 안에서만 움직이면 된다.' 라는 무엇의 선이 그어져 있다.이런 구조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선택을 '나의선택'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맞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질문조차하지않고말이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표상은 세계를 왜곡하고, 그 왜곡은 우리의 선택을 통제한다
우리는 선택지가 있다고 착각하고 그 선택을 자신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지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의심한적이 없다.
총 25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근거로 고통이 삶을 견디는것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것을 그 고통을 피하는것은 곧 삶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견디는 말들의 끝에서 쇼펜하우어가 건네는 위로의 문장으로 이책을 챕터가 마무리되어
다시금 지금을 살고있는 이 시간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