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리브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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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카렐 차페크가 1933년과 34년 삼부작으로 출간한 책 호르두발, 별똥별/유성, 평범한 인생 중 시리즈 마지막 책입니다. 인식론이니, 존재론이니, 철학적 논쟁으로 책을 흐리지 않아도, 알고 보면 더 좋겠지만 대단히 평범하지 않은 책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세가지 색 영화 시리즈가 각기 다른 영화였듯이 이들은 제각각 무게를 지녀ㅡ사실 백오십 페이지 조금 넘는 이 소설들은 따로 떼어 놓아도 솔제니친의 붉은 수레바퀴 일곱권 전권보다 무겁습니다.  


이렇게 추켜세우는 이유는, 출판계의 대표 조루, 지만지에서 앞의 두 권만 내고 대체 왜 마지막 한권을 안 내느냐 그 이유를 먼저 따져 묻고싶어서입니다. 묻는다고 대답은 않겠지만. 


사실, 김규* 역의 별똥별은 첫번째 주머니 번역이 가히 정겹지가 않아서 영역본으로 건너뛰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세 책 다 인식에 따른 접근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취한 구성의 묘는 출중합니다. 그중 별똥별은 타자, 그것도 완벽한 타자의 시선들로 풀어내기 때문에 늘 사실이라고 가정된 책 공간 속으로 독자를 끌지도 않으면서 외줄 탄 광대마냥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끝에는 그 줄마저 끊어놓고 말아버리지요. 첫번째, 세번째 소설은 마음이 단순한 사람의 독백을 따라 가고, 단순하기를 바라는 은퇴자의 이야기를 좁은 오솔길 마냥 따라가기 때문에 글귀들이 쉬운데, 두번째 글은 전달자가 다들 나름 사회의 식자들인데다 자신을 오롯이 투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려한 문구들로 윤색을 할 수 밖에 없어서 꽤나 어려웠습니다. 


제가 볼  때 세 책은 호르두발 앞머리 서평처럼 정, 반, 합의 딱딱한 각이라기 보다 점차, 점차 소용돌이 곡선을 그리면서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 넓어진 범위가 세번째 책 말미의 작가 자신의 말로 하늘을 덮지요.  


다시, 세가지 색 블랑, 블러, 루주는 다른 영화들이 맞기는 하지만, 셋 다 감독의 오래된 시선에서 변주를 하고 사각의 필름 속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세트를 벗어나면 관객들은 영화관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머쓱해지는 관계로 최악의 영화로 돌변합니다만 소설은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되는 장치라서 

평범한 인생은 왜 전환점이 될만한 일이라 여겨도 될 일은 어물쩍 넘기나 반쯤 와서 슬슬 의아해하면 책이 다른 궤도를 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랬나 용케, 4호선에서 서울역으로 갈아타서 그렇게 비낀 이야기를 듣다가, 반쯤 숨은 지역선으로 갈아타고, 전체를 조망하게 되었다 싶죠, 모월 모처에 나들이 가다 사진을 박고 돌아서려는데, 이제 제대로 벗어납니다. 


갑자기 무한 궤도처럼 같은 이야기를 세번쯤 들어요. 매번 시선이 조금씩 바뀌지만, 왜 이러나 당황하고 있으면, 죽어가면서 필사적으로 의미를 덧붙이고자 하는 화해하고자 하는, 잇고자 하는, 확장하고자 하는 억지가 뒤따라요. 그때부터는 이제 작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사람은 사라지고 작가가 거기에 깜박깜박거리며 나타납니다.그리고 덜컥, 소설은 끝나고. 


작가의 말이 따릅니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줄거리까지 요약을 해가면서 자신의 작심을 이야기하는데, 왜 저는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끝으로 여겨지는 걸까요? 그 절묘한 배치와 오묘한 굽이에 경탄이 절로 나옵니다. 꾸며놓아도, 버려져도 아름다운 정원처럼요. 끝내 첫번째 내면 속 자아의 파편이 원글을 쓰게 된 이유로 꼽은 사연은 끝끝내 듣지 못했다는 건 나중에야 생각이 나죠. 


다재다능한 작가에게, 이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저 웃기는 중산모 그림은, 알고보니 

웃기려고 그런 게 아니고 나는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에 작가의 책에 작가가 그린 그림의 일부였습니다. 이해는 가지만 아주 훌륭한 선택은 아니라 안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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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eltering Sky (Paperback)
Paul Bowles / Penguin Classic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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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느릿하게, 느긋하게 오래 읽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와 광경은 영화와 여행으로 흐름을 잇고 분위기를 쫓기에는 어렵지 않았지만, 반짝거리는 말들은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렸습니다. 아쉬웠던 영화의 빈 공간들이 책속에서 꽉 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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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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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laughterhouse Five로 읽다가, 뒤에는---


살다 보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메뚜기 뛰듯 깡충거리다 보면 잭슨 폴락의 그림이 될지, 칸딘스키 칸막이 찹쌀떡 그림으로 딱딱 떨어질지, 

그래도 네 귀퉁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제 그림자만 자꾸 밟고 있고, 



제 느낌에 한올씩 짜들어가는 양탄자 같았습니다. 올이 널을 뛰고, 이미지는 만드는 사람의 머리/스케치에만 있다가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양탄자, 그렇게 하나의 추상적인 그림을 이루는데, 그게 뭐라고 그래도 눈물을 쏙 뺍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자꾸 꾹꾹꾹 세 개씩 들어가는 중간점이 칸과 칸을 굵은 선으로 길게 질러놓는 몬드리안 그림처럼, 조각보처럼, 양탄자처럼 이어지는 실끈을 싹뚝싹뚝 잘라버립니다. 글렌 굴드의 OST가 아름답다는 영화는 못 보고 대신 So it goes 라는 다큐에 보니 시간을 오가는 SF적인 혹은, 정신병동적인 요소는 작가가 책 내용과의 거리감을 위해서 넣었다고 하던데, 거기다가 저렇게 점까지 질러놓고 동화되지 않고 지켜보기를 권하는군요.


SF 소설인 타이탄의 미녀들보다 짜임새는 돋보입니다. 살을 줄이고 뼈를 깎은 간결한 언어로, 육덕지게 해대는 욕도(번역판보다 원어가 더 얌전하지만요) 폐부를 찌르고요. 지금 읽고 있는 '고양이 요람 혹은 손뜨기 놀이'보다 종횡무진 더 포스트모던한 점도 좋고, 괜히 이분의 대표작은 아닌 모양입니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점, 

저 표지, 세상을 지켜보는 저 눈은 사실 타이탄의 미녀들에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아마 다른 행성에 살고 있으면서 어쩌다 이름만 같은 외계인 트라마도어인의 눈은 손같이 생긴 몸체 끝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멋모르고 십자포화를 맞은 작중의 '나'는 4열 종대 맨앞, 맨끝에 있었던 걸로 슬며시 추정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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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You Don't Get Lost in the Neighbourhood (Paperback)
파트릭 모디아노 / Quercus Publishing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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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인데, 















조금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감칠맛이 없어서, 영역본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일 불편 했던 건----


(스포일러---) 


첫번째 떡밥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가 끝나고, 두번째 떡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밑밥은 넉넉하니까, 이걸로도 배부르죠.  


제목부터 길잃지 말라고 당부하니, 길 잃을 각오는 하고 파리와 그 근교를 헤매다니다 보면, 


리옹 어딘가 쯤에서 잠을 깰 겁니다. 혹시 글자 사이에서 헤매지 않도록 더블 스페이스로 낙낙히 놓고, 


그러니까, 모르쇠를 일관하던 기억이 가물한 할아버지가 총기를 반짝거리는 20살의 청년으로 회귀해서는, 앞의 이야기


최근의 실마리는 일부러 놓고 총기로만은 메울 수 없는 어릴 적 과거로만 계속 채우는 건, 먕령이 들었나, 


요즘 말로 이야기가 치매인가 그래서 옛 기억은 프레임 하나까지 다 기억하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파도에 씻기듯 하나씩 쓸러가는 모래알같은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없던 기억을 새로 꾸며내듯, 


소설가인 버릇 남 못주고 아예 책 하나를 써버렸나 봅니다. 


그래서, 이게 우연 남발의, 친절 남발의 소설인지, 망상인지, 망령인지, (믿기지 않지만) 정말 기억인지, 


잘못된 기록인지, 거짓말인지 도통 모르게 끝나버려요. 기억 갖고 별장난을 다치더니 (세편을 미뤄 짐작은 무리겠으나) 


잃어버린 열쇠 대신에 아예 문짝을 하나 새로 짜만들어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 문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시선은 늘 세상이 보이나 단절이 된 창문으로 향하니까요. 


신기하지요, 이런 책은 꼭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무슨 작정으로 이랬나 더 덤비게 되는 모양입니다. 


(스포일러----끝) 


뭐니, 뭐니 해도,   일부러 끊어버린 고리와 억지로 연결한 사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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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Wolf & Herman (Hardcover)
L?zl? Szirtes Krasznahorkai, George / New Directions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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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네번째 크라스나호르카이 책. 난 책을 거꾸로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모든 마지막이 처음인데. 마지막이 셋이라도 상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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