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eum of Unconditional Surrender (Paperback)
Dubravka Ugresic / New Directions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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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미로슬로프 크리에차, 크로아티아 작가는 1925년 러시아로 가던 길에 잠깐 베를린에 멈췄다. 그달 베를린 사람들이 많이 찾은 구경거리는 고래 시체 전시였다.

‘베를린은 로저반더바이덴(화가) 공단과 헤에르트겐(네덜란드 화가) 마지팬 만 사랑하는 도시가 아니다. 고상한 족속들, 이집트 청동, 뒤러의 판화의 도시만이 아니라 고래의 도시기이기도 하다. 24미터 길이의 고래가 상퀼로트(sans-cullotte, 프랑스 혁명시 과격 하층민들)과 상놈들을 위한 기적처럼, 황제의 궁전 앞에 슈프레 강 위, 나무 뗏목에 전시되어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항의 멜랑콜리' 고래가 아주 없던 전시물은 아니었던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저항의 멜랑콜리'는 나로서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을,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 떠올린다고 하던 책이다.

 '저항의 멜랑콜리(1989)'가 헝가리가 공산체계를 벗기 전, 56년 러시아제 탱크가 밀고 들어와 89년이후 이제는 없는 나라 소련군이 러시아로 물러나기 전, 60년대 말-70년대 언저리를 그리고 있었다면, 

이 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동유럽의 국가들이 내란을 겪으며, 이후 몇 년 동안에 서유럽으로 흩어진 사람들, 혹은 포화소리를 라디오 방송처럼 직접 들으며 고향에 붙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앞의 고래가 시작도 되지 않은 종말을 사시사철 구름 낀 어느 소도시, 갈피 못 잡고 후달리는 주민들 사이에 우뚝 서서 주름철판 트로이 목마에 숨어 있다면 뒤의 책에서는 버젓이 나와 종말의 시작을 드러내고 직접적으로 그러나 단편적으로 전하고 있다. 


내용은 베를린에서 망명객/피난민 같은 작가의 일상 속 소품(item)들, 고향에서 멀어진 동시대 예술가들(단지 동유럽인들만이 아니라)의 작품들  사이 사이로, 사진, 어머니, 자신의 처지, 혈연의 가족들, 친구들의 이야기로 과거에서 현재로 전쟁의 일상들을 번개보다는 멀리 울리는 천둥소리로 끼어 넣으며 진행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심금을 울리지는 않지만 '잘 쓴 글이라면 늘 등장하는 구절'들을 잔잔하게 전해준다. 낡은 19년대 세기 전환 시대의 노랗게 바랜 욕객의 사진이야기를 발단으로, 흔들면 눈이 내리는 둥근 기념품 구슬이 사건들을 이어주고, 어디서 난지 모를 날짐승의 깃털이 이야기를 맺는다. 그 사이 현재의 베를린에서는 

기껏 챙겨 나온 가족 앨범이 피난민을 이어주는 벼룩시장에서 헐값으로 무더기로 쌓이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가 부활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멀어진 지금에 더욱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우리 사이에 이미 부서진 고리들을 잇는데 하나(Hana)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page 202


하고 있는 셈인데

내가 읽은 유일한 작품인 '고통 담당부서(2007)'나 성긴 리뷰글들을 참조하면 

물론 유명한 다른 작품들을, 이제 꽤나 흐른 시점인 근자의 작품들을 읽어보고서 판단을 내려야하는 일이겠지만, 

작가는 반복적으로 자서전적인 에세이와, 포스트모던 소설에 모더니즘으로 접근을 하는 소설을 반복을 하고 있다. 



처음 읽은 책, 일년간 이제는 없어진 유고슬라비아어과를 위해 (우울증 깊은) 강사의 이야기인 고통 담당부서도 덜 복잡한 구성에 글솜씨도 이에 못지 않은 책이지만 급격하게 뒤틀리는 뒷부분에 당황스러웠다면, 이 책은 그런 불편은 겪지 않아도 되어서 

고마웠다. 


이제 너무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는지, 너무 변방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역시 이 작가 역시 

책이 한 권도 소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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