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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언제 들어도 얼굴 가득 따뜻한 미소를 띄우게 만드는 말들이 있는데 ‘행복’도 바로 그런 단어중 하나인 것 같다. 행복의 정의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행복을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보면 행복은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마 거부할 수 없는 마술같은 힘을 가진 말인가 보다.
그래서 일까. 일생을 ‘행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고 자칭, 투덜이에 불평꾼이라는 기자출신의 에릭 와이너가 계획한 행복한 나라 찾기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단순한 재미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의 계획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다소 엉뚱하고 무모한 계획일지라도.
만약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래서 그 행복의 이유와 조건을 명백하게 밝히수만 있다면 행복과 불행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을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더이상 불행에 허덕이는 사람도, 행복을 독점하는 듯 보이는 사람때문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사라지게 될테니까.
내 생각과 동일한 의도는 물론 아니겠지만 에릭의 여행은 시작되었고, 그의 뒤를 좇는 내 마음은 도대체 이 시니컬한 불평꾼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첫 장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으로 가득 부풀어올랐다. 게다가 전세계 저널리스트, 세계 여행가, 심리학자, 명상가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작품이라는 글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 나도 이 불평꾼을 따라가다 보면, 책 마지막 장을 덮을때쯤엔 뭔가 해답을, 아니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겠지.
에릭 마음대로 선정한 열곳의 나라를 둘러본다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하진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마음대로 생각에너지'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여타의 여행서나 행복에 관한 책들과는 다른 에릭만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했다. <행복의 지도>는 그저 이런 나라는 이렇더라 라는 식의 기행문도 아니고, 이런 현상을 보니 이들이 이 정도 행복한 것 같다는 행복분석서도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읽기 시작할때 예상했던 "이렇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대요"를 가르쳐 주는 명상서도 아니고...(이 대목에서는 약간 당황,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여러 상황속에서 행복에 목말라있던 나였기 때문에 행복해 질 방법을 좀 가르쳐주길 바랐던것 같다.)
뭐라고 한마디로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읽을수록 <행복의 지도>는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같은 곳을 여러번 읽게 되고, 그렇게 읽은 한 장이 끝날때마다 잠시 책을 내려놓고 깊이 곱씹게 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루할만하면 터지는 그만의 유머에 책에 머리를 박고 낄낄거리게 된 적도 여러번이다. 곳곳에 묻어나는 방대한 지식의 장도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온전히 그의 것으로 소화해 다시 그만의 글로 풀어내는 그 솜씨란....
가장 멋들어진 부분은 바로 이거였다. 그의 발걸음을 좇아 나도 함께 열곳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맛본 그 수많은 경험들이 책장을 덮고 나서 공중에 흩어져 버리고 만게 아니라 이상하게도 내 뇌속에, 가슴 어딘가에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쩍 들러붙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되고 자꾸만 되뇌이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상황속에 다시 나의 언어로, 나의 느낌으로,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로 마술처럼 바뀌어진다는 것.
한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 적이 드문것 같다.
그것은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가볍게 위로받고 싶어 부러 심각한 것들을 피하려는 알량한 내 마음때문이었겠지.
<행복의 지도>는 읽는 내내 나의 그런 비겁함을 쿡쿡 꼬집고 들었다.
결국 행복이란 건
마리화나를 멋대로 피울 수 있다거나 합법적으로 성이 개방되는 등의 자유로부터 오는 것도
국왕이 직접 국민들의 행복을 챙기며 정책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교육시킨다고 만들어 지는 것도,
쿠데타같은 나라의 변고에도 끄덕하지 않는 굉장한 낙천주의로부터 비롯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그저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될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충족된다 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닌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가장 먼저 빈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읽는 내내, 다 마치고 나면 꼭 해야될것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빈 종이를 펼쳐들고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필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써내려갔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신것, 하고싶은 일 맘껏할 수 있는 직장, 귀여운 우리 아들, 맘좋은 착한 우리 신랑, 지난주에 새로산 진짜 맘에 드는 컨버스운동화, 커피 한잔의 즐거움, 집 냉장고에 내가 젤로 좋아하는 냉동만두가 가득한 것....
처음 몇줄은 쓰다가 자꾸 머뭇거리게 되었지만,
서너줄 넘고나자 별 이상하나 이유들까지 생각나면서 점점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래, 행복이란 결국 내 안에 있는 거였다.
내가 행복의 씨앗을 품을수만 있다면 행복의 지도도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사는 그곳이 행복의 지도의 한 점 한 점이 될테지.
한참 들고 다녀 손때 묻은 책을 책장에 꽂으며 새삼 고맙다고 말해본다.
잊고 있었던, 가볍게 여기고 있었던 행복의 가치를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에릭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의 스타일에 중독되고 만것 같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