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어떻게 국민을 지키는가 헌법의 자리 2
박한철.신상준 지음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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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내란 이후, 우리 사회에는 법에 대해(그것도 헌법)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헌법 관련 책들의 소비되고 검색 순위도 상승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회에서, 그것도 어렵고 어려운 법에 관한 책들이 팔려 나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파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헌법의 자리를 집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의 두 번째 이야기는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판사는 무색무취여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어쩌면 AI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좌우에 선입견과 빚이 없어야 한다. 마치 수도승 같은 무상무념의 경지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법원의 기습과도 같았던 '파기 환송'을 보면 더더욱 판사의 자질에 대해 더욱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재판의 본질은 질문이라고 했다. 훌륭한 헌법재판이 되려면 다양한 의견과 가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했다. 저자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탄핵 인용을 한 문형배 전 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토론하고 모두가 이해하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책은 시대 정신과 근대 국가의 생성과 헌법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헌법 판례를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지난 12.3 내란에 대한 탄핵 인용이었다. 상식적으로 너무 당연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법에 맞추어 하나하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법의 기본 원칙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하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판례를 들여다봐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저렇게까지 생각해줘야 하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헌법재판은 그냥 재판처럼 유죄/무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합헌/위헌뿐 아니라 그 중간 단계들이 많이 있었다. 법 개정을 국회에 넘기는 것 같은 것들이었다.

  이번 책에는 판례를 넘어 민주주의 그 자체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국가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얘기한다. 민주주의는 늘 시끄러운 것이고 그 시끄러운 소리는 토론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제도는 아니다. 단지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채용하고 있다. 아니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주의라서 그럴 수도 있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나왔으니 민주주의에 약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늘 진화를 해야 한다. 너무나도 명백한 위험을 얘기하는 검은 백조(블랙스완)와 다르게 회색코뿔소라는 것이 있다.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위험해서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듯한 것이다. 

  정치를 하기 쉬우려면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면 된다는 건 박기춘의 업무 지시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와, 라면의 상식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갈라 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들을 지지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다. 잘못된 정치를 하는 이들을 적어도 투표를 통해서 응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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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론 -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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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속히 변하하는 세계에서 어쩌면 우리에게는 모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린 건지도 모른다. 합리적, 효율적이라는 단어를 내세우고 최적화를 말한다. 산업에서만 쓰이던 이런 말들이 인간 자체로 스며들어 버린다. 아이들의 틀에 박힌 생활들은 그중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우치다 타츠루 님의 책은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용기'라는 단어는 꽤나 정의롭고 멋스럽다. '용기를 내봐'라고 자주 쓰이지만 지금의 세상에서 용기를 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괴짜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 우리 사회는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용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맹자나 공자가 얘기하듯 천만 대군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훗날을 도모하며 퇴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수 있다. 다르게 얘기하면 신념일 수도 있다. 스스로 고민하고 가지게 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용기는 개인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정답도 없다. 

  우리 사회는 왜 용기가 사라지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모두가 같은 흐름에 몸을 실은 채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하다는 농담마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기류에 휩쓸리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불안감. 그것은 튀는 것을, 괴짜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괴짜가 사라진 세상에 변화는 없다. 돌연변이 없이 진화가 없듯이 말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독'이다. 인간에게 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알고 있지만 인간은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믿는 것을 해나갈 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줄 때까지 견뎌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그 호흡이 너무 짧아 고독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내가 미친 건지 무리가 미친 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지 말고 스스로 믿는 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것이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더듬더듬 대며 숨이 넘어갈 듯 한 목소리로 자기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힘, 그것이 인정되는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억압과 독재 등의 사회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연대'를 강조해 왔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에게 연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시에는 목숨을 걸어서도 당당히 맞서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듯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사자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것과 가젤이 무리 지어 도망가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위험이 사라진 시대에도 왜 초식동물처럼 다들 무리의 중심으로 피하려는 행동을 하게 될까? 그것이 지금의 사회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가장 기본적은 문제이며 아이들의 교육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용기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이의 생각을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옮고 그름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것으로 자신만의 용기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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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31호 : 2025.05.05 - #종료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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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이 있으면 언제나 끝이 있다. 무한한 해 보이는 우주의 종말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발생하고 또 소멸한다. 그것은 산업이라고 별 다르지 않다. 출판업은 계속해서 축소되고 그마저도 대형 유통사로 집중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적인 연결은 지금의 시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간 유통업의 파산을 가져오고 있다. 변화는 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종료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을 말하는 이번 호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텍스트힙이라며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도 텍스트가 가지는 힘에 비해 상업적인 결과는 좋지 못하다. 출판의 불황은 결국 도서 도매상들의 파산을 넘어 웹 플랫폼의 서비스 종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통 단계가 줄면 어쩌면 소비자와 생산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생산자는 후려치기를 당할 일이 없고 소비자는 유통마진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대형 마켓이 문을 닫는 이유도 그런 면이 있다. 작은 규모가 얽혀 있는 생태계는 큰 규모가 이길 수 없을 만큼 거대해져 있다. 그리고 출판업도 인터넷 서점 3 대장을 제외하면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출판 도매업은 파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소비가 줄어서 일 거다. 잔에 술이 넘치면 어디론가 흘러가지만 그럴 만큼의 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원재료비는 늘어나는데 소비가 많지 않으니 자연스레 가격이 오르고 그 가격으로 또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악순환은 영화계에도 존재한다. OTT로 넘어간 고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일이 줄었다. 많은 콘텐츠는 영화관이 아니라 OTT 속에 있고 자금도 모두 그쪽으로 몰려든다. 영화로 개봉한 작품들은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만날 수 있다. 집에서 즐길 수 없는 화면과 사운드가 있다고 해도 영화관으로 가는 일은 많지 않다. 그건 정말 OTT만의 문제일까?

  비싸고 귀찮아도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결국 좋은 영화의 생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영화의 소멸은 결국 영화 잡지와 같은 파생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 남은 잡지라고는 <씨네 21>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1950 ~ 60년대 한국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상계>가 복간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박정희 정권 때 폐간 당한 지 55년 만이다. 볼거리가 많아지고 깊은 생각을 많이 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지만 언제까지 버틸지가 시작부터 걱정인 것도 사실이다. 언젠간 끝날 줄 알면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용기이기도 한 것 같다.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며 그런 용기가 성공하는 시대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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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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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코 받아 든 책. <잠비나이>라는 밴드?라는 생소한 그룹명에 국악과 밴드 사운드가 믹싱 되어 있다는 말에 <이날치> 정도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읽을 때마다 이상했던 것이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상상으로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튜브를 켰다. 이 사람들 도대체 무슨 음악을 하는 걸까. 그들의 이미지는 마치 하나의 헤비메탈 밴드 같았다. 거문고와 해금이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수 있구나. 해금의 강렬한 사운드는 마치 지옥의 모습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비나이>의 해금 연주자 김보미 님의 에세이는 북하우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제목은 다르지만 그냥 사카모토 류이치가 떠올랐다. 그 사람이 쓸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원래 책도 종종 내기도 하니까). 음악을 하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제목이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글쓴이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역시 누구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에세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지만 물 흘러가듯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아주 마음에 들었거나 잘못 써여졌거나 원하지 않는 스토리 거나여서 일 것이다. 아주 흔하지 않게 마음에 든 글이 있고 대개는 물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이 에세이도 물 흐르듯 읽을 수 있다. <잠비나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 하지만 나는 그들이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등장한 사실도 모를 정도로 처음 보는 밴드이기 때문에 그저 차분히 읽을 수 있었다(사실 평창 올림픽 폐막식을 보지도 않았다). 

  국악 연주인이면서 대중 음악가이면서 때론 일반 일반인으로 쓰인 글은 그저 공감하며 읽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서태지에 푹 빠져 산 글쓴이를 보니 나와 연배가 비슷할 것 같다(한 두 살 정도 내가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녀의 삶이 어쨌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에 대한 사유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 연습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때론 풍경으로 때론 색으로 보인다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전통을 지키면서 트렌디함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퓨전이라는 이름하에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그들의 음악은 강렬한 메탈 사운드와 국악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쌓여 올라가는 느낌이 있었다(취향은 아니지만). 내 것을 버리지 않고도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멋있긴 했다.

  어쩌면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더 많은 이 그룹의 이야기를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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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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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핫했던 기업은 바로 엔비디아가 아닐까 싶다. AI와 딥러닝의 중심에 병렬연산처리라는 GPU가 각광받을 거라는 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지만 AI의 수요가 이렇게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할지는 몰랐다. 중국의 딥시크가 공개되기 전까지 엔비디아는 거침없었다. 그 중심에는 젠슨 황 CEO가 있었다.

  젠슨 황의 자서전이자 엔비디아의 기업 연혁 같은 이 책은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게임을 사랑하던 사람에게 엔비디아는 익숙한 이름이다. 둠과 퀘이크의 흥행은 3D 랜더링 회사의 경쟁을 부추겼고 3D는 게임을 넘어 콘텐츠나 설계까지 두루 쓰이게 되었다. 당시에 엔비디아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래픽 가속기는 3 dfx의 부두 시리즈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엔비디아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경쟁사였던 ATI의 소멸은 이제 다른 대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그래픽 기능은 메인보드에서 지원하는 온-보드 형식을 취했고(원가 절감상으로도 좋음), 그래픽 카드 기업은 3D 처리만이 남은 길이 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GPU의 병렬 처리 방식은 대세가 되었지만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크거나 비싸거나 확장성이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엔비디아는 해냈다. 그리고 대가들은 엔비디아가 그래픽 처리를 위해 만들어놓은 파이브라인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기 컴퓨터는 CPU나 메모리가 모자라서 하드웨어의 캐시 메모리 같은 것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래픽 카드의 메모리까지 침범하게 되었고 엔비디아의 병렬처리 방식은 그들에게 좋은 방법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인간의 신경을 흉내낸 신경망 회로. 그중에서도 퍼셉트론은 1950년대쯤에 발표되었으나 그 가능성을 부정당했고 AI는 긴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것이 신경망 회로는 인간의 뇌 속의 신경처럼 복잡해야 하는데 당시 컴퓨터로는 그 연산을 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해 알렉스넷이라는 놀라운 알고리즘이 세상에 등장하고야 만다.

  머신러닝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가 바로 영상처리 분야다. 많은 영상처리는 이미지를 전처리하고 그곳으로부터 특징점을 찾아 각자의 알고리즘을 돌려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같은 것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 산업용, 특히 어느 하나의 목적을 넘어서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 지금의 AI도 특정 목적을 넘어서는 AGI의 길을 가기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알렉스는 신경망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매칭률을 기록한다. 그것은 AI의 새로운 봄의 시작이었고 알고리즘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단순 3D 랜더링을 목표로 하던 회사는 과학자들을 위한 회사로 변하고 있었다. 젠슨 황은 그래픽 카드가 연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의 그래픽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설루션을 만드려 노력했다. 이사진들은 그가 회사 이익에 도움 되지 않는 일에 몰두한다고 몰아세웠지만 그는 어떻게든 CEO자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CUDA를 세상에 내놓았다.

  CUDA는 엔비디아의 GPGPU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스택이며 CUDA 코어가 장착된 엔비디아 GPU에서 작동하게 된다. 덕분에 일반 엔지니어도 병렬 연산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엔비디아의 알고리즘을 산업 표준화된 코딩 언어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의 얘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과 같다. 엔비디아의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게 되고 AI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엔비디아의 칩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게임 덕후에게나 인정받던 회사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회사가 되었다.

  이 책은 젠슨 황의 자서전이기도 하지만 엔비디아의 기업 연혁 같은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그래픽 카드, 그리고 회사, 게임까지 모두 익숙한 것들이어서 반갑기는 했지만 뭔가 파고드는 진한 감동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분명 다이내믹한 시점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뭔가 아쉽다.

  엔비디아의 역사가 젠슨 황의 역사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젠슨 황 자체가 가지는 대중적 매력의 부족함 때문일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 편하게 즐겁게 읽으면서도 뭔가 빠진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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