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쫌 아는 10대 - 일상 어디에나 있는 아주 작고 이상한 양자의 세계 과학 쫌 아는 십대 16
고재현 지음, 이혜원 그림 / 풀빛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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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학이 나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양자역학은 기술에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양자 컴퓨팅이나 통신 등에서 실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SF소설에서는 다중우주가 유행처럼 번졌고 경영에서는 <퀀텀 점프>가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말한 퀀텀닷 디스플레이 때문에 조금 더 유명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에게도 어렵고 과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양자역학을 10대들을 위한 용어로 설명하는 이 책은 풀빛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문제를 풀어내고 인간을 복제하고 순간이동하는 모습은 SF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이다. 다중우주 또한 그렇다. 작은 큐브 속에서 시공간을 이동하는 상상은 이제 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양자역학하면 하이젠베르크나 슈뢰딩거가 생각나지만 시작은 막스 플랑크와 닐스 보어로부터 시작되었다.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했고 이제는 양자역학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상대성 이론과는 달리 양자역학은 여전히 어려운 학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조차도 양자역학을 이용해 광전 효과를 설명했지만 확률로 설명되는 양자역학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에게는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아름다운 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양자역학은 점차 많은 부분을 채워갔다. 


SF에서나 볼 법만 먼 미래의 이야기를 차치하면 양자 역학은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저가 가장 인상 깊지만 반도체나  LED들 비롯한 수많은 최신 기술에는 양자역학이 사용되고 있다. 측정하는 순간 깨어진다는 특성 때문일까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특징 때문일까. 뭔지 알 것 같은데 확인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맛이라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어려운 학문이라고 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아직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까지 얘기했으니까. 그럼에도 계속해서 발달해 가고 있다. 중국은 양자의 이동을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수많은 나라에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인류는 새로운 정보전쟁 중인 것이다. 


책에는 어렵지만 고전역학부터 천천히 설명해 준다. 운동 방정식과 그것으로 설명하지 못한 여러 현상들. 그리고 발견된 원자와 전자를 지나면 빛의 파동과 입자에 대해 설명하고 전자들의 점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양자역학 자체가 쉬운 학문은 아니니 그 개념만 이해해도 꽤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성인이 읽어도 좋을만한 내용이었고 중고등학생 정도된 10대를 위한 내용인 듯했다. 


그래도 과학이라면 눈이 희번덕하는 아들은 재밌겠군이라고 얘기한다. 초3 남자의 허세와 기세겠지만 뭐 다 이해할 필욘 없으니까 광자와 양자가 뭔지만 알아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발전 진행 중인 양자역학이다. 우리 아이들은 양자 컴퓨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자와 친해져 있는 것이 도움은 분명 될 것 같다.


그래도 '빛 쫌 아는 10대'를 읽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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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의 도시 - 4가지 키워드로 읽는 유럽의 36개 도시
이주희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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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유럽의 여러 도시에 대해 적혀 있는 여행 에세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의 이야기를 풀어주는 책이었다. 36개 도시를 키워드로 풀어냈는데 그 내용이 심플해서 가볍게 읽어내기 좋았다. 몇몇 도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궁금했고 몇몇 도시는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있었다. 책이라는 키워드가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더욱 좋았다.


  파스텔 톤의 은은하고 예쁜 사진과 함께 담겨 있는 유럽 도시의 이야기는 믹스커피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그곳의 문화와 동화되는 작업이라고 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도시는 어떨까. 그저 아름답다고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지점에 몇 가지 에피소드를 함께 풀어낸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신선하다.


  도시 전체를 얘기하는 것 또한 너무 방대할 수 있어서 저자가 그 도시를 들른 이유에 대해 집중한다.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집중하기도 하고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기도 한다. 가장 쉽게는 하나의 건물에 집중한다. 그것은 두 장 남지한 페이지에 부족하지 않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양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지하 도서관이었다.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책장을 놓고 유리로 덮었다. 책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은 괴벨스가 행한 '책의 화형식'을 상징한다고 한다. 독일은 유독 과거에 대한 반성에 진심인 국가다. 독일은 매 총리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금서가 되었고 네오나치즘을 경계한다. 그들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바이마르에는 괴테의 도서관이 빈에는 수도사들이 필사해 놓은 책들이 아름다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도서관은 한국인이 지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에 관심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도서관 챕터가 가장 인상에 깊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웨덴의 오슬로.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오페라 하우스와 입센, 뭉크를 기념하는 카페는 인상적이다.


  작품은 코로나가 풀리면서 쏟아지는 여행 기행문이 아닌 가볍게 읽는 유럽사라고 해야 할까. 아는 지식을 얘기할 때에는 조금 더 깊은 얘기가 아쉬웠고 생소한 이야기에서는 가볍게 얘기해 줘서 좋았다. 하나만을 위한 여행. 조금 여유롭지만 깊이 있는 여행을 위해 좋은 제안이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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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 속의 섬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동훈 옮김 / 고유명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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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폈을 때, 뭔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편집 때문일까 작가의 필력 때문일까. 원어로 보았을 때에도 이런 느낌일까. 문단의 구성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에서 훌륭한 작가는 문단의 모양까지도 살핀다고 하는데, 헤밍웨이가 그런 편인가 싶었다. 그런 느낌은 1부에서만 느껴졌다는 것도 조금 신기했다. 그리고 나도 1부가 가장 좋았다.


  헤밍웨이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책은 고유명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는 대단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유작부터 만나게 되었다. 꽤나 무직한 두께이면서 내용마저 묵직할 듯한 띠지를 바라보며 책장을 넘겼다. 1부에서 만나게 되는 토머스 허드슨의 모습은 외로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사실과 그것을 위해 기꺼이 루틴을 깰 준비도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는 너무나 좋았다. 바다낚시 속에 인생이 담겨 있었다. 그런 믿음이 가득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렵지만 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을 펴기 전에 만난 <하드보일드>라는 단어 때문에 상어 씬에서 아들이 죽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하며 읽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는 너무 완벽히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등장한 아내와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짧은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인간실격>을 언급한 출판사의 카피가 갸우뚱해지는 그 시점에서 심연으로 끌려들어 가는 문장들을 만난다. '쿠바'는 그야말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끝나버린다. 상실감에 취해 방황하는 인간을 보는 듯하다. 100페이지가 넘는 2부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나 남은 작은 톰과 지냈던 허드슨은 전쟁으로 남은 아들마저 잃는다. 그 슬픔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들과 살아가며 슬픔을 느낀다. 아무리 흥을 내려고 해도 나질 않는 모습에 깊은 아픔이 있다. 티끌만큼의 슬픔도 나눠주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이 슬플 뿐이다.


허드슨은 갑자기 독일인을 찾아다니는 선장이 된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동료들과 함께 게릴라들을 찾고 생포하는 작업을 3부에서 한다. 아들 톰 또한 그런 독일인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증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들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 그저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죽은 자는 나쁘지 않다는 농담 섞인 행동인 것이었을까. 


일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죽음을 보아온 인류는 인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상실감과 허무는 분명 그 시대를 살았을 작가에게는 영향이 없을 수 없다. 공군으로 출격한 아들의 사망. 그리고 상륙을 시도하는 독일인을 찾아다니는 아버지.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전쟁 그 자체의 잔인성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상실한 마음을 벗어던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까. 자신의 슬픔에만 도취되어 있는 토머스 허드슨에게 던진 윌리의 말이 이 책의 메시지가 아닐까.


"자네는 자네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가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고 나를 아끼는 사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질문함과 동시에 우리는 모두 그런 틈에 끼여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인간 실격>이 유명하지만 굳이 헤밍웨이를 그 프레임에 끼워 넣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둘은 결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1부가 있었기에 2, 3 부다 유독 더 어두워 보이는 작품이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전쟁 속으로 들어간 토머스 허드슨을 보면 '우리가 설사 지금은 어떤 좋은 입장에서 서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양면을 다 가진 인간이니까'라고 얘기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양면성 그리고 누구나 잘못이 있으면서 또 없다는 걸 얘기한다. 그의 단어 '사랑하는 개자식'이 가지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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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울리히 베어 엮음, 최성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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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과 망치가 너무 잘 어울리는 니체는 그 격정적인 감각만큼 사랑에 대해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니체의 사랑에 대한 글을 모아둔 잠언집이 바로 이 책이다. 모든 것은 개인의 해석이며 그것 또한 개인의 책임이라며 주장하는 니체는 사회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하나가 되길 강조하는 사회에 맞서 '책임감 있는 개인'을 사회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덩어리는 깨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그것이 삶을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실로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했다. 그런 니체의 사랑은 어떨까?


  빨간 망치만큼 강렬한 그의 사랑 얘기는 세창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루 살로메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져 버린 니체. 그녀는 비범했고 관습에 저항하는 지성이었다. 둘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한동안은 친구로 지냈다. 오빠를 철저하게 이용한 여동생 엘리자베트는 둘의 사랑도 방해했다. 적어도 두 명의 여성에게 청혼을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책은 강렬한 빨강으로 시작해서 글귀가 있는 오른편은 하얀색이었지만 왼쪽은 약간 붉은빛이 도는 빨강이었다. 아주 세심한 편집. 빨강에 물든 하양은 다시는 하양이 될 수 없는..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그만큼 니체가 말하는 사랑은 강렬하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사랑은 자신을 기만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경지니까. 사랑은 좋은 것만 바라보게 되는 오판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랑은 갈망이다.


  사랑. 그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 미묘한 것에 대해 니체는 단순히 정의하지 말라는 듯 이렇게 많은 글귀를 내보였을까? 사랑과 관련된 많은 단어로부터 사랑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모은 울리히 베어는 한 문장씩 음미할 것을 권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 도덕적으로 통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그럴 것이다. 사랑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은 것이니까. 격정적인 사랑으로부터 차가운 애증까지 모든 것이 사랑이다. 소유와 존중의 사이를 채우는 것 또한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니체는 친구 같은 동반자가 좋았던 것 같다. 좋은 결혼 생활이란 우정을 쌓을 줄 아는 재능에 달려 있다고 얘기했으니까. 그 시절도 지금의 시절도 꽤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이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은 마치 훌륭한 양각화를 맨손으로 자꾸 만지는 것과 같다 했다. 자꾸 만지게 되면 훌륭한 작품은 닳아 형편없고 더러운 종이가 되어 버리게 된다. 그렇게 사랑했던 작품은 혐오의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줄도 모르게 된다. 너무 친밀한 교제는 항상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인간 사이에는 산들바람이 불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할 때보다 두려워할 때 상대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문장을 아내에게 읽어주며 웃었다. 잘못 파악하게 되면 위험과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때문이다. '뭐어~?'라고 반응하길래 등에 누워 있던 아들에게 '중요한 거야'라고 얘기해 줬다. 


  굉장히 빠르게 읽어나갔지만 나중에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장에 고이 꼽아 두었다. 한 문장으로 니체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사랑만큼 끝나지 않는 이야기도 드물고 그 인기 또한 식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사랑을 니체의 글로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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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연사 - 생물법칙은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롭 던 지음, 장혜인 옮김 / 까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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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치며 각자의 방식대로 진화해 왔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인간은 진화의 시계를 빠르게 만들었다.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한다. 인간이 만든 환경은 생물들이 충격에 적응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변화는 생물 생존에 중요하다. 긴 시간은 자연선택이 가능하게 하지만 빠른 변화는 모든 생물을 멸종시키게 만든다. 이런 충격에 필요한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창의적인 상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계를 높여 왔다. 인간은 빠르게 멸종해 갈 것인지 적응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인간은 지구를 제멋대로 바꾸었고 그 칼날은 다시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구멍을 기술로 채워 넣으려고 하지만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생태계는 빠르게 진화하며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인간이 다시 자연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 책은 까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많은 과학 지식은 여전히 인간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다. 다윈은 진화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과 더불어 포유류에 한정된 시선인지 모른다. 개체가 많을수록 세대가 짧을수록 진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이것이 인간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많은 환경적 대응도 그렇다. 인간은 늘 근시안적이고 인간 중심의 대처만을 해왔다. 예전에는 무지에 의해서 지금도 여전히 무지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곤충의 8종 중에 7종은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은 어떨까? 결국 인간은 지구 생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얘기하는 게 맞을 거다.


  매일 새로운 종이 태어나고 또 사라진다. 종의 탄생과 소멸은 자연사의 불변의 법칙이다. 수억 년을 살았을 생물들에 비해 인간은 어린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400년을 넘게 사는 조개가 있고 1천 년은 족히 넘겼을 바닷가재도 있다. 게다가 1억 년은 살았을 미생물도 존재한다. 어린애의 투정이 지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고립된 생태계에 커다란 통로를 만들었다. 식물과 곤충뿐 아니라 수많은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세계로 흩어지고 또 정착했다.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한 토종 생물들이 사라져 갔고 위세를 떨치던 외래종은 생태계의 조화 속에 녹아들어 갔다. 세상 시끄럽게 했던 황소개구리도 이제는 가물치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어 버렸으니까. 생태계는 새로운 종을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훌륭하게 적응하고 밸런스를 맞춘다.


  '섬 생태학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고립된 생물계는 그 규모가 작을수록 외부 충격에 약하고 빠르게 멸종되어 간다는 것이다. 큰 섬의 장점은 다양한 생물과 많은 개체 수다. 작을수록 한 번의 변화에 멸종되어 버리기 때문에 최근과 같이 변화가 잦은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시대 인간은 편협한 지식으로 생물을 대한다. 정원을 만들고 작은 숲을 만든다. 물론 그것의 좋은 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것은 분명 인공적인 섬이다.


  데이브 굴슨은 <침묵의 지구>에서 이점을 언급했다. 대규모 이동이 필요한 동물들에게 국립공원, 작은 농장등의 고립된 형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는 새로운 섬을 만든다. 낮은 온도에서 사는 식물들은 온난화 점점 고산지대로 이동한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산꼭대기는 새로운 섬이다.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는 이렇게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변화하는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하나의 일에 전문화된 생물들은 빠르게 멸종한다. 그리고 서로 공생 관계에 있던 생물들은 공멸의 길을 걷는다. 까마귀는 환경에 따라 행동과 먹이를 바꾼다. 비둘기도 시궁창의 쥐도 모기도 그렇다. 인간이 만든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수천 종의 조류, 식물, 포유류, 곤충 등을 포기하고 고작 몇 종의 새로운 모기와 쥐를 얻었다. 인간은 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인간이 가속화시킨 온난화는 열대지방을 급속히 늘려 나가고 있다. 우리는 더 북쪽으로 이사를 해야 할 채비를 해야 한다. 기온이 오를수록 바이러스와 미생물은 급속히 증가한다. 인류는 이를 피해 서늘한 곳으로 이동했다. 잘 사는 대부분의 나라들의 기온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지구의 기온이 오를수록 인간이 이들과 접촉할 기회는 더욱 많아진다. 인간이 없애버린 생태계의 구멍을 과학으로 메꾸려고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자연은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균은 고작 10일 만에 취사율의 3000배에 달하는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대장균에게 10일은 인간에게는 2만 년의 시간과 비슷하다.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수록 치명적인 것은 인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벌써 몇 종은 백신에 내성이 생겼다. 우리 몸의 많은 미생물들은 우리가 먹는 약품에 내성을 가지고 있고 가지게 될 것이다. 화학적 백신보다 박테리오파지에 더 많은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 또한 그렇다.


  인류는 천적을 없애고 그 자리를 지속적으로 과학과 기술로 채우려 한다.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자연은 엄청나게 복잡하게 엮여 있고 지구의 생물 중에 인간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할지라도 창의성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변화가 닥친다면 분명 인간 또한 멸종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 존재했고 어린 종은 언제나 위험에 취약했다. 개체 수를 따지더라도 거대한 나무에 존재하는 새순 같은 수준의 개체 수밖에 되질 않는다. 


  인류는 자신의 위험을 지구의 위험이라고 호도하며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인간이 견디는 방사능의 20배에서도 살아가는 생물도 있고 섭씨 55도가 가장 살기 좋은 개미도 있다. 물이 펄펄 끓는 온천 속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빛이 들지 않는 심해 바닥에는 지상보다 많은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꿈도 못 꾸는 일들을 이들은 이미 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에서 살아가는 세균들도 있다. 인간이 미래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게 오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인간은 자연이 하는 일 중에 얼마나 많은 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란 말이 있다. 꽤 유명한 말이지만 인간은 기꺼이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자만심 넘치는 인간은 여전히 지구 생물로 부터 배우고 백신을 만들고 기술을 모방하고 있다. 인간의 위기를 편협한 시각으로 덤비지 말고 미생물에게서 개미에게서 배우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인간은 여전히 무지하며 지구 생물체의 하나일 뿐임을 인식하고 다른 종들의 생존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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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09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인류가 이 지구촌의 주인은 아니죠. 본디 자연환경이 주인인데, 오만한 생각을 빨리 버려야겠지요.

stormpy 2023-05-09 09: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동시에 그 속도계를 늦추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