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모든 것
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 한지원 감수 / 심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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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면서 그리고 나이가 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은 소위 치매라고 불리는 질병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 병은 환자 스스로에게는 자멸감을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에게는 힘겨움을 가져다주는 병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가까이에 치매를 겪는 이가 없어 이들의 깊은 고통을 느껴 보진 못했다. 간병인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나지만 이 책은 궁금했고 그리고 이 책은 객관적이면서도 온기가 있는 책이었다. 늙어가면 망각의 능력이 강해진다.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늙어감과 잊어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부정하고 싶은 질병이면서도 가까이 있는 질병인 치매. 적어도 그 질병에 대해서 객관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책은 푸른 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병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편견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저 피하고 싶은 심리만 가득하다. 치매는 그런 면에서 환자 본인에게는 스스로가 무너지는 모습을 버텨내야 하는 것이기에 쉬운 질병이 아니다. 그리고 간병인에게는 더없이 힘든 질병이다. 24시간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은 저자의 의도가 곳곳에 묻어 있다. 저자의 가족들도 모두 치매를 겪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물론 동반자까지 이 질병을 앓았다. 치매는 분명 고된 질병이 맞지만 환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치매 환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모멸감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중에서도 '관심'의 영역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의 질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우리의 뇌는 시스템 1과 2가 존재한다. 시스템 1은 만들어진 패턴대로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에 반해 시스템 2는 사고하게 만든다. 치매는 바로 시스템 2가 망가지는 병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인간의 기억 중에 경험 기억보다 사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지기 때문에 어린 시절 배웠던 언어와 행동은 기억한다. 그리고 태초부터 본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즉각적 행동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성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인용은 소설 <에바>의 문장은 이 책에 전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병이 아니라 병을 대하는 방식이야."


  치매로 불리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부분의 질병이 알츠하이머다. 그리고 각 병명에 따라 정확한 치료제를 사용해야 한다. 잘못된 치료제 사용은 오히려 부작용만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흔한 질병에는 크게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매는 치료보다 질병과 함께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 더 중요한 것이다.


  치매 환자들의 대부분의 행동 패턴은 본능에 가깝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안정감을 느끼기 위함이고 의미 없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병을 들키지 않으려 함이다. 화를 내거나 오히려 조용한 행동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며, 기억이 사라짐으로써 예전에 겪었던 나쁜 기억 속에 갇히기도 한다. 치매는 삶을 거꾸로 살아가야 하는 질병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릴 때 많은 공부를 해 놓을수록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학설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결국은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만 기억의 조각이 많을수록 그 시간은 더 길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부하자라는 의지가 불타기도 한다.


  책은 치매 환자를 대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꼭 치매 환자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다. 멀쩡한 나도 이렇게 대해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너무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공감대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볼테르의 말도 다시 생각해 본다.


"거짓은 고통을 줄 때에만 죄가 된다. 유익하면 큰 미덕이다."


  '진리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1리터의 눈물'의 주인공 킷토 아야의 병명은 척수소뇌변성증(SCD)이다. 이 병은 치매와 달리 사고는 그대로인데 몸을 움직이는 기능이 점점 저하되어가는 병이다. 말이 어눌해지고 움직임은 둔하다. 병원에서 인턴들이 주인공을 어린애 다루듯 하며 지나가자. 주인공 남자 친구가 "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를 하려고 하냐"라고 따지듯 묻는 장면이 있다.


  치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고가 정지되고 있지만 반대로 감정은 점점 더 섬세해진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상처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랜 시간을 두고 싸워야 하는 병들은 환자와 간병인 모두가 지치고 상처받기 쉽다. 막상 닥치게 되면 눈앞에 깜깜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리 읽어두면 조금은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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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 오늘의 세계를 빚어낸 발명의 연금술
아이니사 라미레즈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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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과학서가 있지만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다. 기술의 인간미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과학윤리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동안 과학서가 인간보다 기술에 집중한 나머지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보다 위대한 면을 부각하기 바빴고 그로 인해 위대함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그동안의 패턴과 조금 달라서 읽다가 내용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생겼지만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사뭇 흥미진진해진다.


  스탠퍼드 재료공학부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공부를 마치고 예일 대학교 부교수로 재직했지만 학계보다는 과학을 알리고 싶었던 저자는 과학 커뮤니터가 되었다. 재료과학자가 들려주는 또 다른 시각의 과학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의 챕터는 8개의 동사로 표현된다. 이 제목은 과학이 이뤄낸 인간 사회의 변화며 키워드다. 시계는 세계를 교류하게 만들었고 강철은 미국의 철도 산업을 이끌며 세계를 연결했다. 통신은 정보를 전달했고 사진은 포착했다. 빛은 밤에도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줬고 축음기는 서로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줬다. 유리는 많은 발견을 도왔고 인터넷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기술이 가져다준 사회 변화의 절묘함을 알아가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과학은 기술 그 자체로는 위대한 발견 혹은 발명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발명은 오랜 시간 숙성되어 완성되지만 우리는 최후 발명자만 기억하고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은 그런 면을 채워주는 책이다.


  시계의 발명은 인간에 분할 수면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깨어나고 활동하고 다시 잠들기도 했다. 생태계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분할 수면을 한다. 낮잠이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시계의 발명은 잠드는 것을 해악으로 여기게 되었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게 병이 아닌데 우리는 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더불어 여유를 가지고 행동하던 행동은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올더 헉슬리는 이를 '속도의 해악'이라 했다.


  모스 신호로 알고 있는 인간의 최초의 전신은 초기에 매우 비싼 이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노동자의 주급의 10%에 달하는 이 비용 덕분에 사람들은 최대한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내려고 노력했다. 문장은 간결해졌다. 우리는 속도를 얻는 대가로 정서와 감정이라는 것을 제거하고 말았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진행한 얼굴 인식이 흑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기술을 만든 사람도 백인이었고 샘플링의 대상도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차별을 가져온다. 그런데 이런 일이 더 오래전에도 있었다. 초기 필름은 노출의 양이 적당하지 않았기에 흑인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에 흑인들은 차별에 대한 불매운동과 사회적 운동을 하였고 필름 제조사는 이를 해결한 필름을 만들어냈다. 


  전구는 우리의 낮을 더욱 길게 해 줬지만 생태계에는 재앙과 같았다. 곤충의 70%는 야행성이며 한밤에 뿜어져 나오는 빛은 많은 곤충을 죽이고 있다. 반딧불이는 빛을 내어 암컷을 유혹하는데 빛이 넘쳐나는 세상에 수컷의 빛은 더 이상 매혹적이지 않다. 빛은 인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특히 푸른빛은 잠에서 깨는 영향을 준다. 푸른빛이 줄어들면 우리 몸은 회복의 시간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푸른빛으로 채워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푸른빛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는 눈부심으로 나타난다. LED로 교체되는 가로등과 라이트가 노인 운전자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자다 깨었을 때 푸른빛에 20분 정도 노출되면 더 이상 잠들 수 없다. 우리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빛 공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암막 커튼과 안대를 착용하고 잠든다.


  축음기나 디스크는 서로 어울리지 못한 백인과 흑인의 문화를 교류시켜줬다. 사람은 어울리지 못했지만 음악은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믹싱 장르가 생겨났다. 유리는 투명하기에 많은 분야에서 사용된다. 광학계는 물론 그릇이나 전등의 보호 용구로도 사용된다. 배합률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유리는 실험 도구에도 필수품인데 그런 것에 걸맞은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은 발견의 초석이 되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게르마늄 단결정의 생산으로 인해 시작된 트랜지스터와 컴퓨터의 발전은 지금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많은 정보는 이제 머릿속이 아니라 네트워크 상에 존재한다. 무엇이라는 기억보다는 어디에라는 위치 정보가 더 중요해졌다. 정보를 외우는 대신에 찾을 수 있는 위치만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몸 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도킨스는 이를 두고 '밈'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우리의 뇌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 많은 데이터를 연결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하이테크의 아버지쯤 되는 스티븐 잡스나 빌 게이츠도 아이들 교육에는 누구보다 로우테크를 지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과학 전반에 이뤄진 역사적 사건의 단편이 아닌 스펙트럼처럼 펼쳐서 보여주고 있다. 기술이 가져온 인간 사회의 빛과 어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기술은 소수의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논의는 소수이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술이 가져오는 어둠에 대해서 누구나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 또한 모든 사람의 몫인 것이다. 그것을 위한 하나의 초석 같은 책이다. 


  엄청난 양의 레퍼런스를 보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정리해서 이야기를 이어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 또한 담아 두었다. 기술을 만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 기술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 의도하지 않았지만 분명했던 차별에 대한 이야기.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균형감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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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의 단상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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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그대로 300개의 짧은 글의 모음이다. 무언가 글을 쓰기 위해 평소의 생각을 끄적이듯 메모해둔 느낌이랄까. 뭔가 날것의 느낌이면서도 때때로 좋은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모를 에세이랄까. 작가로서 대하는 일상이라고 하면 너무 일반화하는 것 같고 조금은 삐딱하고 조금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끔은 웃긴 그런 글들이다.


  "나는 요약이 불가능한 글을 좋아한다. 핵심이 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압축할 수 없는, 쓰인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글을."


  나도 그런 글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 요약이 가능할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축약된 문장들은 필로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긴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저자는 그래서 이렇게 단문의 책이 많나 싶기도 하지만 실상 국내에 번역된 책이 두 권에 불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쇠락의 두 가지 유형>을 읽어보면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 느낄 수 있을까. 이 짧은 글은 작가를 드러내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뭔가 대단하고 위대한 말 같은 문장을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좋았다. 특히 자조적인 얘기, 어떻게 보면 솔직함이랄까.


교수 회의에서 200만 부나 팔린 책을 쓴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다. 성공이 내게서 너무도 가까운 곳에,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패혈증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을 때, 그가 걸린 병에 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교만하거나 자신하는 면이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나쁘지 않지만 부정적 요소를 아예 배제해버리는 태도는 인간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편집해 버리는 것. 그리고 망상이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나 자신을 알자. 빛과 어둠은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진심은 그때의 내 삶에는 들여놓을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그건 마치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같은 일이었다.


  너무 예쁜 문장이라 갈무리해 두었다.


효율성을 오랫동안 사랑한 끝에 나는 구두쇠가 되어버렸다.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는 어렵다.


  이런 뼈 때리는 말도 곧잘 한다.


내게는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 일이 아주 많다. 내 또래이면서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은 불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행복한지도 모르지만, 행복이 이런 느낌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세상에 물들어 버린 자신을 돌아보고 일탈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너무 행복한 삶 같은데 행복하지 않은 느낌. 당장 뛰쳐나가고 싶지만 용기도 에너지도 부족한 느낌.. 내 속에 갇힌 느낌.


덜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도둑질을 하는 기분이다. 많이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자선을 베푸는 기분이다.


  지금의 세상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위선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나보다 나아보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티를 내지 않는 게 미덕이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를 숨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속임수 같기도 하다. 반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같아 보이려고 애쓰는 허영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밑 보이기 싫은 우리의 마음의 반대편에는 당신의 속임수에 기꺼이 넘어가 주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한 것 같다.


  글의 초입에 썼듯, 작가는 압축하기 힘든 글을 좋아하며 또 그런 문장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인용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 무언가 바꾸면 말의 맛이 바뀌어 버린다고 할까. 번역하는데도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후다닥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여러 생각을 깊게 담아 놓은 글이라 시집처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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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오방 히어로즈, 문화유산에 숨은 색 보물을 찾아라!
하리라 지음, 정진희 그림, 문은배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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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4 원소 설과 비교되는 동양의 음양오행의 오행은 나무, 불, 흙, 쇠, 물의 다섯 가지 기운을 설명하는 사상이며 이는 화, 수, 목, 금, 토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색에 맞춰 다섯의 수호신이 있는데 이를 청룡, 백호, 현무, 주작 그리고 황룡이다. 수호신들의 색을 따서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을 우리는 오방색이라고 한다. 오방색은 색동저고리부터 오방 색떡까지 함께 어울려 사용하기도 하고 하나하나 따로 쓰기도 했다. 


  수호신의 색의 의미와 그를 이용한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즐거운 시간은 북멘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청색은 아주 가깝게는 아이가 태어날 때 엉덩이에 나타나는 몽고반점부터 혼례를 올릴 때 들었던 청사초롱이 있다. 그리고 고려의 비취색의 청자는 가장 유명한 청색이다. 심청색의 의복은 높은 지위를 뜻했다. 황후 또한 청색 옷을 입었는데 어울리지 않게 '적의'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는 붉을 '적'이 아니라 꿩 '적'라고 해서 꿩이 새겨진 옷이라는 뜻이다. 꿩은 금실이 좋은 동물로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위에 따라 옷에 수 놓인 꿩의 수가 달랐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백의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흰색'을 좋아한다. 돌 때 나눠먹는 '백설기' 뿐만 아니라 빨래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옷은 흰색을 입었다.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라는 '소색'은 아무것도 염색하지 않은 그대로의 색이라는 뜻이다. 이는 어쩌면 '공수래공수거'의 말처럼 태어난 아이의 배냇저고리도 상을 치를 때 입던 상복도 모두 흰색이었다. 흰색은 순수함. 이 세상에 온 이도 이 세상을 떠나는 이도 모두 순수함을 뜻한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라는 조상들의 의미가 담겨 있다. 최근에 입는 검은 옷보다는 좋은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흰색 하면 '백자'를 빼놓을 수 없다.


  적색은 귀신이나 잡귀를 쫓을 때 많이 사용되었다. 처용무의 옷이 붉은색이며 동지에 먹는 팥죽도 붉다. 그리고 네 식구가 한 달 치 먹을 곡식을 기를 만큼의 넓은 밭에 심은 홍화로 물들인 한 벌의 귀한 옷이 바로 임금이 입는 곤룡포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높은 지위일수록 붉은색에 가까운 옷을 입었다. 그리고 궁궐이나 여러 절의 색이 붉은색으로 입혀진 것 또한 잡귀를 쫓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현무의 흑색은 꽤 다양하면서도 찾기 힘든 색이기도 하다. 흑색은 기본이 되는 색이라 현무의 색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숯의 색도 그것에 아교를 더해 만든 먹도 그것이 현무의 색이라서 쓴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중에 흑색을 찾는다면 역시 나전칠기를 들 수 있다.


  황룡은 평소에 잘 언급되지 않는다. 4방위의 중심에 있는 황룡은 임금 그 자체를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에 유독 금이 많이 치장된 이유도 왕권을 내보이고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왕의 의자도 곤룡포의 용무늬도 모두 금색으로 되어 있다. 궁궐의 지붕에도 황룡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오방색은 전통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 우리나라의 음식들은 많은 부분 색의 조화를 많이 살핀다. 흔히 먹게 되는 떡국이나 비빔밥에서 조차 고명으로 색을 골라 올리기도 한다. 색깔로 호기심을 자극하여 우리 문화유산으로 확장하는 이 책은 몇 컷의 만화와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더해서 아이들의 재미를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적의'의 원래가 뜻이나 '소색'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놀이하듯 즐겁게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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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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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작성하기 위한 글인데, 망각 일기라니 제목이 조금 독특하다. 저자는 25년 동안 일기를 써왔다. 사라지는 기억 때문에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으로 강박적으로 써왔던 것 같다. 느낌보다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애를 쓴다. 일기는 기억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기록일까, 잊으려는 것에 대한 철저한 배제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원제는 <일기의 끝>이다. 육아를 하며 방금의 기억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잊히기도 하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일부는 너무 또렷하게 기억남을 느끼며 잊히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식해간다. 기억에 대한 작가의 회고를 담은 이 책은 필로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쓰는 일기. 하지만 정작 일기에 적힌 글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의 조각에 불가하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는가, 잊을 것을 골라내기 위해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이 글의 초입부터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를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일기를 쭈욱 읽어가다 1996년도 일기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누군가 볼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만 기억하고, 그 일이 전부였다는 확신을 품고 싶다.


  저자는 일기를 '망각'의 작업이라고 했을까. 기억은 회상할수록 희미해진다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에서 일기에 또렷한 기억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을 비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기에 적혀 있지 않는 얘기들은 나 스스로가 선택한 또 다른 망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일기는 작가가 유일하게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쓰는 글이다. 이런 글들 속에서 엄청난 문장이 있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그럴 리 만무하다는 저자의 독백에 잠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많은 기억을 남기고 싶지만 어느 대상에 향수에 젖어들면 그 향수에 관한 기억 속에서 길을 잃는다고 말한 어느 노 작가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여러 기억을 해내고 싶지만 결국 그 기억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잊고 싶은 것을 잊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어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되질 않는다. 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기억을 더 선명하게 해 줄 내용이, 혹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 망각의 경험이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또 나만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책을 따라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지만 메시지는 머릿속을 둥둥 떠 다닐 뿐 또렷이 잡아내질 못하고 있다. 경험은 경험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경험이 아닌 걸까. 키스는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것의 표현인 것 같다.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여 고백적 글을 써 내려가는 이들에게 해답을 알려주려 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그런 작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답을 찾은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저 망각된 기억이 일기를 만났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은 글의 새로운 원천이 된다는 것일까. 이런 의미 저런 의미를 다 따져도 일기는 꽤 괜찮은 작업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저자는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잊히는 기억은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을 낚아채 글을 적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일까. 여러모로 헷갈리는 마무리다. 


  조금 더 느리게 음미해야 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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