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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의 단상 ㅣ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평점 :
제목 그대로 300개의 짧은 글의 모음이다. 무언가 글을 쓰기 위해 평소의 생각을 끄적이듯 메모해둔 느낌이랄까. 뭔가 날것의 느낌이면서도 때때로 좋은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모를 에세이랄까. 작가로서 대하는 일상이라고 하면 너무 일반화하는 것 같고 조금은 삐딱하고 조금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끔은 웃긴 그런 글들이다.
"나는 요약이 불가능한 글을 좋아한다. 핵심이 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압축할 수 없는, 쓰인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는 글을."
나도 그런 글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 요약이 가능할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축약된 문장들은 필로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긴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저자는 그래서 이렇게 단문의 책이 많나 싶기도 하지만 실상 국내에 번역된 책이 두 권에 불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쇠락의 두 가지 유형>을 읽어보면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 느낄 수 있을까. 이 짧은 글은 작가를 드러내기보다는 문장 그 자체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뭔가 대단하고 위대한 말 같은 문장을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좋았다. 특히 자조적인 얘기, 어떻게 보면 솔직함이랄까.
교수 회의에서 200만 부나 팔린 책을 쓴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다. 성공이 내게서 너무도 가까운 곳에,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패혈증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을 때, 그가 걸린 병에 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교만하거나 자신하는 면이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나쁘지 않지만 부정적 요소를 아예 배제해버리는 태도는 인간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편집해 버리는 것. 그리고 망상이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나 자신을 알자. 빛과 어둠은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진심은 그때의 내 삶에는 들여놓을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그건 마치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같은 일이었다.
너무 예쁜 문장이라 갈무리해 두었다.
효율성을 오랫동안 사랑한 끝에 나는 구두쇠가 되어버렸다.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는 어렵다.
이런 뼈 때리는 말도 곧잘 한다.
내게는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 일이 아주 많다. 내 또래이면서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은 불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행복한지도 모르지만, 행복이 이런 느낌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세상에 물들어 버린 자신을 돌아보고 일탈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너무 행복한 삶 같은데 행복하지 않은 느낌. 당장 뛰쳐나가고 싶지만 용기도 에너지도 부족한 느낌.. 내 속에 갇힌 느낌.
덜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도둑질을 하는 기분이다. 많이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자선을 베푸는 기분이다.
지금의 세상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위선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나보다 나아보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티를 내지 않는 게 미덕이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를 숨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속임수 같기도 하다. 반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같아 보이려고 애쓰는 허영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밑 보이기 싫은 우리의 마음의 반대편에는 당신의 속임수에 기꺼이 넘어가 주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한 것 같다.
글의 초입에 썼듯, 작가는 압축하기 힘든 글을 좋아하며 또 그런 문장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인용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 무언가 바꾸면 말의 맛이 바뀌어 버린다고 할까. 번역하는데도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후다닥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여러 생각을 깊게 담아 놓은 글이라 시집처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