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레리뇽 고원 -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매기 팩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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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전쟁의 역사'다. 야만의 역사는 기록하기 쉽다. 생명은 숫자로 치환되고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 들이 많아. '선'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연구는 눈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변함없는 선을 얘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작가는 인간에게서 순수한 선의 덩어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연구가 필요함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의 악함은 그만 얘기해도 될 정도로 많으니까.

  2차 대전, 홀로코스트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집단적 선행'이라는 낯선 행위로부터 선의 결정을 찾으려 했던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인간의 본색을 드러낸다라고 한다. 생존의 문제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음을 우리는 고고한 사람 혹은 성인이라고 얘기한다. 작가는 그 모든 것에 사랑이 있음을 얘기한다.

  2차 대전 나치를 피해온 수천 난민을 품은 마을 비바레리뇽 르 상봉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이를 지킨 귀족 청년 다니엘 트로트메. 전쟁의 역사를 더 이상 연구하고 싶지 않았던 인류학자가 좇았던 '선의 역사'. 아무리 종교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해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에겐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모든 것을 바꾼다. 어린 왕자가 행성에 두고 온 장미처럼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움은 세상을 눈부시게 한다. 작은 것은 무한의 힘을 가진다.

  집단은 함께 기억한다. 오늘을 위해 함께 기억한다. 내가 그러고 싶거나 다른 사람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종종 전체주의에 악용되는 것처럼 타락되기도 하지만 사회의 기억은 중요하다. 신경 쓰이는 것이 많을수록 과학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집단적 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우린 너무 싶게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선을 행한 사람들은 상대를 인간이라는 사실 이외에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했다. 사회는 똑똑한 어른들이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편견 없는,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없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까?

  종족이나 인종. 그리고 국가. 그리고 문화.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테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AI가 순식간에 번역을 해내는 시대가 되더라도. 한 문화의 언어는 다른 문화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짧은 단어로 번역을 하면 오해가 생긴다. 말이 많아진다는 건 서로가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는 거다. 자기의 것을 완벽하게 설명해 내기 위함이다. 열린 마음이다.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다. 

  모두가 합리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동안 비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그건 꽤나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많은 이야기는 가까이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들이다. 작가가 찾아 떠나는 다니엘의 이야기도 그런 이해할 수 없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행동은 그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표현했기에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해할 수 없을 행동에는 그를 만든 언어가 존재했을 것이다.

  비바레리뇽 고원은 현재도 유럽 전역의 난민들을 품고 있다. 고원은 지금도 많은 아이들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지워내고 있다. 전쟁을 숫자놀음으로 바꾸는 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을 신뢰하더라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어느 순간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이 주는 진실을 믿어야 한다.

  인류학자인지 인문학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서정적인 문체와 어느 소중한 것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간절함이 묻어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새로운 생각이 덮치고 보통의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길 기대하는 동물이니까.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장면전환과 생각이 파고드는 문장이 많아 쉽게 잃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에 그리움이 녹아 있는 느낌이다. 뭐라고 딱 정리할 수 없지만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있다. 이 또한 비합리적인 경험일까. 책 속의 메시지가 뚜렷하게 남지 않지만 어떤 아름다움을 만났었던 희미한 추억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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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1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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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 - 7- 5의 총 17개 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하이쿠와 비슷하나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다. 하이쿠가 진지한 분위기를 낸다면 센류는 일상 풍자, 신세 한탄 등의 풍속적인 느낌이다. 일본의 전국유료실버타운협의는 2001년부터 매년 센류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의 입상작과 응모작을 엮은 것이다. 제목으로 엮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정말 탁월한데 입상작이 아니다. 믿을 수 없다!!

  노년에만 할 수 있는 유머랄까. 슬픔을 해악으로 승화시킨 위트 있는 문장은 포레스트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싶었다. 제목은 슬픔도 웃음도 아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서점에 서서 10분만 투자해도 다 읽을 수 있는 것을 책으로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이건 소장각이다.

  아내는 제목을 보자마자 너무 웃긴데 슬프다고 한다. 하긴 대부분의 문장이 그렇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싶구나. 천국에'라는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아, 이런 건 정말 행복한 노년을 지내야만 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역시 '인정'의 자세일까. 늙어감을 인정하는 분들이라 가능한 것일까. 신세 한탄을 이렇게 위트 있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기를 길게 쓸 수 없다.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책을 펴 보는 그 순간에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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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생경영론
데일 카네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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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 카네가 책은 거의 다 있지만, 처음으로 펴보는 책이다. 이제껏 나는 '데일 카네기'를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돈도 잘 벌고 경영도 잘하고 강연도 잘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약간 부끄러워하며 (그만큼 관심이 없었는지도..) 읽어 본다. 워낙에 유명해서 (유명하면 잘 안 봐서) 기본 이상은 하겠지 싶었고 기대가 높았는지, '그래, 이 정도는 써야지?' 느낌이랄까. 그런 감각만 남아 있다.

  데일 카네기가 정리한 대단한 사람들의 빛과 어둠을 보며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지 알게 되는 이 책은 현대지성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은 매 챕터 한 가지 화두를 가지고 얘기한다. 그것에 걸맞은 인물의 삶을 얘기하며 역자의 설명과 같은 깨알 같은 해설도 곁들인다. (사실 이게 참맛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60가지 지침일 수도 있고 60명의 짤막한 평전일 수도 있겠다. 책이 다루는 인물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모두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고 어떻게 해서 좌절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게 사람 수만큼 공식이 있는 것이라 나에게 맞는 사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읽다 보면 꽤나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전혀 이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라이트 형제, 루스벨트, 메이오 형제, 아이젠하워 챕터가 좋았던 것 같다. 파란만장했던 삶은 지나고 보면 멋져 보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도박과 같은 일이고 그것은 신념과 노력에 운이라는 게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서 이기도 하다. 너무 멋진 삶이지만 '글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안정된 삶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장난감에서부터 흥미를 느꼈든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가 전체에게 가장 좋았다. 자신의 좋아하는 것에 끊임없이 매진하고 아는 것은 적었지만 자신이 믿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낸 그 삶의 궤적이 좋았다. 고난은 되려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었고 실패로부터 구해주었다. 결핍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딱 맞는 경우다. 배고픈 놈이 밥을 짓고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해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젠하워의 경우는 어떠한가. 모든 문장을 떠나서 리더의 덕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두어 좋았다.

'리더는 아랫사람이 처벌의 두려움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조직의 일을 하도록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의가 좋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숙제지만 이런 리더가 되려면 상대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좋은 리더는 관심을 가지는 리더라는 것을 아이젠하워를 통해 할 수 있다. 그의 평전을 따로 읽고 싶을 정도다.

  메이오 형제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 감동이었고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의미로 쓸 수 있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갖추도록 하라"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숲 한가운데 살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길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는 그 문장이 좋았다. 무언가를 좇지 말고 다가오게 만들라. 그러려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기회의 원어는 break라고 한다. 브레이크는 멈춤의 의미도 깨트리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길에서 벗어남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가끔은 잘못된 길에서 기회를 얻기도 한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상황과 같이. 익숙한 일만 하면 기회를 얻지 못할지 모른다. 자신의 알 깨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도 가장 멋진 말은 '라이어널 배리모어'라는 할리우드 배우의 말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배우 인생은 끝났다고 했지.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럴 시간이 없이 항상 너무 바빴거든'

  주위에서 뭐라고 하던 자신을 믿고 몰입하고 나아가는 모습이야 말로 지금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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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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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우리들>, <1984> 그리고 이 책이 있다. 세 작품이지만 이 책과 <1984>는 자주 비교가 된다. 비슷한 메시지를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4가 억압과 기만을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이 작품은 쾌락을 사용한다. 전체주의라는 정의라는 것이 꼭 빅브라더 아래서 강제되는 삶만을 얘기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유토피아 또한 디스토피아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독재와 사회주의는 모두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만 존재하는 세상은 지옥이 아닐까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은 소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작품 속 영국은 소마라는 약물로 안정을 최우선하는 사회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으며 계급별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모두의 소유여야 한다. 인간 그 자체마저도 말이다. 인간은 최대한 비슷해야 하기에 많은 쌍둥이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한다. 생명 과학은 계급 별로 그 모습을 다르게 만들 수 있고 정신 교육은 그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변화가 업는 사람. 결핍과 분노가 지워진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마치 유전자 재배열이 가능할 머지않은 세상을 덮칠 사상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는 기분이 들 정도다. 거대한 시스템의 한 축이 되어 조금도 벗어나지 않도록 삶을 유지하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등장인물이다. 문명화된 세계에 야만인 존을 데리고 오는 자의 이름은 사회주의 철학자 '마르크스' , 이 세계를 조율하는 관리자는 이슬람의 선지자인 무스타파,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파고드는 이는 감각 생리학의 창시자 헬름홀츠, 가장 육감적인 여성으로 등장하는 레니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생각나게 한다. 야만인의 이름으로 존, 문명에서 내쳐진 여성의 이름이 린다 인 것은 오래된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게 행복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무스타파와 존의 대화를 살펴보면 그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식량 걱정도 일에 대한 걱정도 완벽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일을 줄인다는 것은 여가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일에 빠져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행복은 콩국수에 들어가는 작은 스푼의 소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어느 한쪽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행복은 어느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변화량이다. 오르막이 있어야 내리막이 있는 것이다. 끝없이 넓은 평지를 걷는 것만큼 지겨운 것도 없다. 유토피아라는 것은 어쩌면 예쁜 지옥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에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읽고 비슷한 이야기를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읽는 동안 내가 써보고 싶은 글을 펼쳐놓아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라고 많이 배웠다. 작품 자체는 잔잔하지만 그 속에 위트가 있고 묵직한 메시지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재밌다.

  그리고 군중심리의 무서움과 혁명의 어려움 또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수의 횡포일 수도 있고 정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꽤나 고전이지만 SF소설 같았고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닌 듯 한 디스토피아.

  무수히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는 변화를 변화로 인식하며 그 속에서 쾌락을 좇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투영해 볼 수도 있다. 쾌락적이지 않은 것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끼는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왠지 몇 번이고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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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이충녕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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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는 마틴 스콜세이지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스콜세이지 감독이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평론가들은 그의 철학을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예술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면서 가장 오래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랑에 대한 고민을 책은 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생각은 바뀐다. 그렇다고 사랑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인스턴스 사랑, 환승 연애.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잊어버린 것일까. 새롭게 정의를 내리는 것일까. 그런 사소하면서도 다정한 이야기는 클레이하우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랑이 뭐냐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시큰해지기도 하는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다가 얼어붙기도 하는 뭐 그런 거? 노래 가사로 표현하자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거? 뱃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거? 한눈에 홀린 듯 빠져 버린 거? 

  그래 사랑은 복잡한 것이고 AI로 학습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껏 사랑을 해온 인류의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할 정도니까 말이다. 똑같은 사랑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사랑이라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이 사랑의 공식을 얘기하지만 어쩌다 맞을 뿐이거나 어쩌다 틀린다. 

  인간의 행위 중에 간단한 것은 없다. 모든 행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른 답을 원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부딪혀 얻는 답보다 남들의 내어준 답을 더 신뢰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니 예전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을 거다. 우리가 세상이 빠르게 바뀐다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도깨비방망이를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이라는 건 공학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만든 것들에는 정확한 쓰임새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확한 목적과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철학적인 인문학적인 것들에도 기술이 붙는다. 그들은 정말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내어 놓는다고 생각하면 오만이다. 수많은 경우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주는 것이다. 응용은 본인의 몫이다.

  '사랑의 기술', '연애의 정석'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 하는 법'은 이제 너무 많아서 평범할 정도다. 

  자본주의 시대, 사람과 사람이기 이전에 손익을 따지는 사랑이 당연해지고 있는 시대.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시대. 계산적이고 약간은 삭막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한 사랑의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의 모습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 가성비를 따지지 않으면 호구라고 놀림받는 시대. 얼리어답터에 열광하는 시대. 정을 주고 오래 쓰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시대에 긴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환승 연애처럼 속도에 밀려하는 사랑이 '유사 사랑 행위'인지 사랑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사랑이 쾌락과 동등해져 버린 세상에서 사랑의 본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가장 사소한, 아니 가장 소중한 우리 한가운데를 들여다보는 철학의 시간을 가져 보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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