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이충녕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는 마틴 스콜세이지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스콜세이지 감독이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평론가들은 그의 철학을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예술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면서 가장 오래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랑에 대한 고민을 책은 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생각은 바뀐다. 그렇다고 사랑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인스턴스 사랑, 환승 연애.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잊어버린 것일까. 새롭게 정의를 내리는 것일까. 그런 사소하면서도 다정한 이야기는 클레이하우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랑이 뭐냐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시큰해지기도 하는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다가 얼어붙기도 하는 뭐 그런 거? 노래 가사로 표현하자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거? 뱃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거? 한눈에 홀린 듯 빠져 버린 거? 

  그래 사랑은 복잡한 것이고 AI로 학습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껏 사랑을 해온 인류의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할 정도니까 말이다. 똑같은 사랑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사랑이라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이 사랑의 공식을 얘기하지만 어쩌다 맞을 뿐이거나 어쩌다 틀린다. 

  인간의 행위 중에 간단한 것은 없다. 모든 행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른 답을 원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부딪혀 얻는 답보다 남들의 내어준 답을 더 신뢰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니 예전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을 거다. 우리가 세상이 빠르게 바뀐다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도깨비방망이를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이라는 건 공학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만든 것들에는 정확한 쓰임새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확한 목적과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철학적인 인문학적인 것들에도 기술이 붙는다. 그들은 정말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내어 놓는다고 생각하면 오만이다. 수많은 경우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주는 것이다. 응용은 본인의 몫이다.

  '사랑의 기술', '연애의 정석'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 하는 법'은 이제 너무 많아서 평범할 정도다. 

  자본주의 시대, 사람과 사람이기 이전에 손익을 따지는 사랑이 당연해지고 있는 시대.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시대. 계산적이고 약간은 삭막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한 사랑의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의 모습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 가성비를 따지지 않으면 호구라고 놀림받는 시대. 얼리어답터에 열광하는 시대. 정을 주고 오래 쓰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시대에 긴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환승 연애처럼 속도에 밀려하는 사랑이 '유사 사랑 행위'인지 사랑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사랑이 쾌락과 동등해져 버린 세상에서 사랑의 본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가장 사소한, 아니 가장 소중한 우리 한가운데를 들여다보는 철학의 시간을 가져 보는 시간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