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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 시간에 관한 사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이승현 외 옮김 / 이비 / 2026년 5월
평점 :
이것이 정통 철학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비전공자인 나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다. 까마득한 사유의 끝점에서 노닐고 있는 신선들의 얘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을 살아내기도 빠듯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의 삶이 기계의 발전과 동조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인간은 편해지기 위해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 기계를 더 잘 다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계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계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인간에게 인간적이지 않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것에 대해 리오타르는 얘기한다(하지만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원초적인 것인가 아니면 어른스러운 것인가. 때로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인간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로 학습된 인간의 행동을 보고 인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진짜 인간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인 사실이다.
모든 교육은 제재와 두려움 없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다. 아이는 성인 공동체의 볼모이면서도 인간성이 부족한 성인 공동체에 더 인간적임을 촉구할 수 있다. 어른은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다. 철학자들의 깊은 문답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의 사유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묻고 답하면서 철학과 사유는 지속된다. 하지만 절멸이라는 단어 앞에서 지켜낼 수 있는 사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지만 태양의 죽음과 함께 다가올 혹은 그보다 훨씬 일찍 마주하게 될 인류의 절멸.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생길 수 있을까? 존재할 이유가 없는 질문 아니 질문할 존재조차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죽음에 대한 사유는 존재하지만 종말에 대한 사유는 불가능하다. 유한한 것을 유한하다고 말하고자 하려면 영원히 지속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인간 없음의 사유가 진행되어야 한다. 바위가 사유할 수 있다면 인간 절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계속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AI라면 가능할까?
철학적 사유를 천천히 살펴보면 마치 과학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어떤 학문이든 꼭대기에 이르러면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 걸까. 찰나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물질에 대한 것도 비슷하다. 일어나는 것은 '지금'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남은 그대로 포착할 수 없다. 인지의 순간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고 그전이라 하면 예측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된 현재는 과거다. 뇌수용체가 정보를 파악한 지금도 이미 과거다. 사건을 구성하기 위한 지금 역시 과거의 조각들의 모음이다.
책은 굉장히 심오해서 활자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내가 여러 철학서를 조금 더 잘고 있었더라면 꽤나 재밌는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수박 겉핥기 수준의 지식으로는 충분히 즐기기 어려웠다. 모든 이야기는 결론이 있을 때 이야기가 성립된다. 비밀은 비밀이 아닐 때 비로소 비밀임이 성립되고 결국엔 비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무엇에게 인지될 때 그것은 성립된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것들은 결국 인간에게 인지됨으로써 밖에 존재할 수 밖에지만 그러면 더 이상 비인간적인 게 아니게 된다. 결국 비인간적인 것에 의해 인지되고 사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그저 사유가 멈춰지지 않을 것만 알게 되는 게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더 공부해 보는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