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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5월
평점 :
매년 독서량이 줄고 있다. 독서의 편중을 생각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다. 읽는 사람만 더 읽는 독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다. 독서가 외면 당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둘 정도다. 하나는 숏폼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먹고살기 바쁜 일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전자는 오래전부터 있던 이유로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독서 인구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숏폼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면 끝날까. 그러면 너무 허무하겠다 싶기도 하다. 사회적 현상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가 변했으니 사람도 변했다. 반대로 사람이 변했으니 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바로 현대 사회에서 텍스트가 가지는 위치다. 텍스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높다. 그리고 저장 가능하다는 점과 검색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지적 갈증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가지는 장점들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텍스는 한때 독보적인 위치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화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일에 많이 노출된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전단지부터 관공서의 문서까지 우리는 끝없는 텍스트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변화가 읽기와 쓰기의 의미 변화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변화시켰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읽기와 쓰기에 기대하는 역할이 더 이상 서사나 정보 전달이 아니게 된 것이다. SNS와 톡을 주로 이용하게 된 현대의 인류에게 읽기와 쓰기는 사람들과의 '관계 수행'을 돕는 역할로 쓰이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더 고고한 것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많은 노력을 들여 읽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텍스트 역시 '책'이다.
바로 소통이 되는 지금의 텍스트와 달리 독서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수년이 될지도 수십 년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해석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책에서 얻는 것을 개인화 않아도 된다고 느낀다. 랜선으로 이어진 우리의 소통 능력은 절대 소수가 발신하는 것을 절대다수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에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행위를 위임해도 괜찮을 정도로 좋은 발신자를 만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구술의 언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한다는 아이들의 행태가 이해 가는 대목이다.
이제 구술자와는 랜선과 연결되어 있다. 자기 고립으로 쓰였던 이어폰, 헤드셋 같은 도구는 이제 새로운 연결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옆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목소리와의 연결이다. '말하기 도구'는 매우 중요해졌다. 구술자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지식에 대한 갈망과 지적 호기심은 특정 소수에게만 남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자가 되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텍스트를 접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지적 호기심에 대한 노력을 특정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얘기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했을 때 신뢰하고 지지를 보낸다. 발신자는 더욱더 텍스트를 깊게 연구할 수밖에 없다. 독서의 편중 현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텍스트의 과잉은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방대한 양의 책과 텍스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길을 헤매기에 딱 좋다. 책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 존재가 발신자가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댓글이나 좋아요로 그들을 지지하게 된다.
텍스트와 독서는 이중의 위기에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인 AI와 유튜브와 같은 매력적인 플랫폼과 겨뤄야 한다. 게다가 사람과의 소통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의견을 형성하고 비판 능력을 키우기 위해 거대한 텍스트 덩어리와 시름하는 행위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독서는 결국 이 노력을 기꺼이 해낼 생각이 있는 사람만 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가 된다.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청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더 많은 독서를 하게 되고 '청자'는 모든 독서를 위임한다. 그렇게 지금의 시대의 독서 편중 현상은 완성된다.
그저 책 읽으면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렇다고 그들이 설득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왜 책을 읽지 않을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 되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이유와 그럴싸한 안도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