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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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 살았던 나는 곤충과는 꽤 친숙한 편이다. 그래도 어떤 녀석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곤충을 덥석덥석 손으로 잡았던 그 시절의 경험이 많은 벌레들을 보고 기겁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주 오랜 시간 그들과 마주 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그때처럼 거리낌 없이 뭔가를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교육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생태교육이었다. 지구를 구성하는 개체량으로 따지면 인류는 정말 미미한 존재다. 우쭐대며 살아가곤 있지만 진화를 개체량으로 판단한다면 인간의 진화는 성공적이었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인류의 슬로건이 오만하다면 오만하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문장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는 그저 인류를 위해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대장균의 3 ~ 4일은 인류에게는 1만 년이 넘는 역사라고 한다. 그들에게 항생제를 끊임없이 주입해도 3 ~ 4일이면 그것에 적응하는 돌연변이가 발현된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급변하는 자연환경 (인간이 만든)에 적응을 가장 못하는 생명체 중 하나일 인간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조금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곤충에 대해 소홀이 할 수 없다. 나 또한 곤충이라면 일상에서 만났고 파브르 곤충기 정도에서나 읽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몇 해 전 만난 데이비드 굴손의 <침묵하는 지구>를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인류가 인류를 대하는 태도 역시 오만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만드는 많은 약품과 식품들에는 늘 이런 코멘트가 붙는다.

  '인간에서 해롭지 않은 극소량만 첨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까? 인간은 인간의 세포보다 많은 미생물로 이뤄져 있다. 근래에 들어서 조명받고 있는 장내 건강 또한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침묵하는 지구>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벌들이 전염병에 걸려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사람들은 전염병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벌에게는 치명적이지 않다고 말했던 농약이 벌의 내부의 미생물에게는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그 미생물이 사라진 벌은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그런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런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곤충은 중요하다. 왜냐면 생태계에 정말 많은 개체수를 가지고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곤충 몇 종류의 멸종은 먹이 사슬을 타고 그 상위 포식자까지 멸종하게 만든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은 포식자만이 살아남는 게 될 것이다.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인간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지구에 인간만이 쓸쓸하게 남겨져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생태계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냥이라는 것을 해 본 인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채집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사냥, 채집한 것을 원래의 형태를 잃은 모양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살아 있었다는 생물로 인지하는 것보다 그저 요리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가 자연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독일의 생태 교육이 부럽다. (랍스터나 새우도 어떻게 보면 곤충이지만 메뚜기나 번데기와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곤충들을 보면 기겁을 하지만 많은 곤충들은 그렇게 해롭지 않다. 모기마저도 피를 빨고 전염병을 옮기는 개체는 많지 않다. 파리가 없다면 세상은 시체 더미가 널브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쇠똥구리, 송장벌레 등은 생명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구더기라는 벌레는 항생제가 생기 이전에 꽤나 중요한 의료 수단이었다. 상처 부위에 그들을 올려주면 기가 막히게 죽은 살을 제거해 주었다.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의 경우에는 피의 응고를 막는 약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곤충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많은 질병에 대한 의약품은 많은 식물과 동물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곤충의 다양성을 잃는 것은 이런 다양성도 함께 잃는 것이다. AI가 약품을 설계하는 시대라지만 수억 년을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안정적일 수 있을까는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상에 누우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하늘에 달려 있었다. 그런 별들이 안 보이게 된 만큼 곤충 수도 줄어가고 있다. 도로를 조금만 달려도 엉망이 되었던 차의 앞 유리는 이제 그다지 많은 벌레들이 붙질 않는다. 알게 모르게 곤충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곤충의 40%가 넘게 멸종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얼마나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탄소에만 바짝 긴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작고 소중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 책도 좋고 <침묵하는 지구>도 좋다. 읽어보면 조금 더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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