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 1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1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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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팬데믹 상황. 2년 전 낯설지 않은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신천지가 대구를 휩쓸고 지나간 후 대전에는 JMS 내 집단 감염과 함께 신도들에게 '약수' 장사를 한다는 기사였다. 교주 정명석이 출소하자마자 또 성범죄 폭로가 나와서 세상을 시끄럽게도 했다. 이단교 들은 신흥종교를 인정해달라고 하면서도 교묘하고 은밀하게 숨어서 활동하며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 책은 김도형 교수가 10여 년을 JMS와 싸운 기록이다. 그날의 기록 뒤에 이렇게 처절한 싸움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 생각되면서도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단 종교 집단과 싸운 역사적인 기록은 도서출판 에이에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글로벌사랑실천연합,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같은 기독교적인 이름은 이 단교들의 새로운 이름들이다. 그들의 포교활동은 치밀하다. 아주 친밀하게 접근해서 성향과 약점을 파악한 후 최적의 상대를 선택해서 인간관계를 쌓아간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모습으로 가까워지다 보면 자신이 종교집단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게 된다. 죄책감은 곧 자기 합리화가 된다.

  지난 신천지 사태로 이단교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던 것 같다. 그들은 심리학 전공자까지 동원하였고 금전적인 공세가 대단했다. 그만큼 필요 이상의 헌금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CBS 방송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기를 지금의 교회가 노트와 펜을 선물로 준비했다면 그들은 태블릿을 준비할 정도라며, 정교와 이단의 차이는 소총과 탱크와의 싸움이라고 묘사했다.

  JMS의 사건은 어린 나에게도 어렴풋이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기독교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지금 또한 교회의 문턱을 넘는 것은 금기와도 가까운 행동이었고 성당에 관대한 편인데도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울 수가 없다. 그저 '당신의 종교는 인정할게요' 정도가 최선이었다. 과학이 나의 종교라고 얘기하는 나는 여전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JMS라는 거대한 집단과의 싸움이 사법기관이 아니라 한 개인의 싸움이었다니 놀랄 일이다. 김도형 교수의 담대함에 놀랐고 자신의 것이 아니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검찰과 경찰에 다시 한번 놀랐다. (최근에 검찰의 행동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거대한 싸움 속에서도 학업을 유지하고 논문을 내고 교수가 되었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은 보통 사람이 싸워 온 역사는 기록되었고 다시 한번 알려지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문장은 경쾌하고 신나게 적혀 있었지만 힘들었던 싸움의 결말이 승리였기에 할 수 있는 기쁨의 표현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이 견디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고 싸움이었다. 즐기는 자는 미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지 않았던가. 그는 정명석 교주를 잡기 위해 미쳐있었던 것 같다. 경기고-카이스트로 이어지는 그의 커리어는 잠시 눈감으면 앞날의 훤한 성공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쉬쉬하는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멈추기 위해 미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지난 신천지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신흥 종교들은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권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행사를 암암리에 개최하여 재계 각종 인사들을 초청하고 인맥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들은 이제 유력 정치가나 고위 공무원에게까지 뻗치고 있다. JMS가 1990년대에 이미 국정원과 검사 포교에 성공했다는 것은 지금은 얼마나 많은 권력가들이 포교되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교수들이 지금 JMS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을 후기에서 읽는 순간 계속해서 일어나는 교수들의 성추행, 성폭행도 그들의 행위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약점을 파고드는 포교가 가능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약자들을 보듬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많은 신도들이 위로받지 못한 삶을 살다가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이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이들에게 착취한 대가는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의 권력에 사용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의 신앙심보다는 이권을 위해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은 지난 신천지에서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곳이 먼진는 길바닥이든 푸줏간 한 구석이든 무슨 상관이랴. 

  비이성적인 것을 넘어 범죄 집단으로 보이는 종교 세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있다. 그들의 신심은 어디서 나올까. 결국 구원받지 못한 어린양들이 늑대들에게 몰려 간 건 아닐까. 늑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르치지 않고 풀 뜯는 것만 가르친 우리 교육의 문제는 아닐까. 배고픈 이에게 풀을 나눠주지 않고 내쫓은 이기심에 있진 않을까. 사회가 더 따뜻했다면 더 정의로웠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지 않았을까.

  문득 비과학, 유사과학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칼 세이건의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신은 순전히 인간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도킨스의 말도 생각난다. 속이는 자는 당연 나쁜 사람이다. 두 번 이상 속는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는 속이는 자를 엄벌하고 속는 자를 살펴줘야 할 것이다. 

  힘든 전투를 해낸 그리고 회고해준 김도형 교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전투가 일어나질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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