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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잔류 인구라면 지구가 멸망하여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잔류 인구는 단 한 명의 노인을 얘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인물로 설정된 <오필리아>는 인생을 달관한 태도, 죽음 앞에서도 무덤덤할 수 있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어느 별에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누가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를 하는 것보다 이해를 받는 것이 먼저라는 설정이 돋보이는 이 책은 푸른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미래의 어느 쯤이 될지 모를 시대에 인간은 행성을 하나의 공장으로 보는 것 같다. 이주민을 싣고 떠나는 개척 하여 물건을 생산해 내는 컴퍼니는 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일까? 처음 내려앉은 땅.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터전을 일구기를 40년 <오필리아>는 그렇게 콜로니 3245.12에 지냈다. 하지만 이 행성은 바다 태풍이라는 것이 불어와 홍수가 나기가 일쑤라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콤퍼니는 그렇게 이주민들을 태우고 다른 행성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70이 넘은 노인에게는 오히려 돈을 지불하라 한다. <오필리아>는 숲 속에 숨어 결국 떠나지 않았고 콤파니도 노인 한 명쯤은 이동 중 사망이라는 보고서로 마무리한다. 콤파니의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산력이라는 것은 지금의 지구가 가고 있는 아주 비인간적인 방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혼자 남은 <오필리아>는 자유를 얻는다. 혼자 있을 자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자유. 그곳에는 여전기 발전기가 동작했고 많은 음식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유지 보수하는 법을 알았다. 그러는 어느 날 행성의 다른 위치에 또 다른 콤퍼니가 착륙하는 통신을 엿듣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토착종에게 몰살당했다. 4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의 확인에 <오필리아>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바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우연히 나타난 그것들에게 비를 피하도록 도와주었다. 피곤은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지 그렇게 외계 생명과 한집에서 잠을 자고 보니 점점 두려움은 이판사판의 마음이 되도록 해 주었다.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가르침을 주다 보니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고 그들의 중요한 <수호자>가 되었다. 그때 즈음하여 일전의 착륙을 시도하다 죽은 사건을 계기로 외계 생명 연구팀이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그들 사이의 소통의 창구가 되어 주고 자칫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태를 잘 마무리해 준다. 인간 새로운 지적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어느 한 노인의 무료한 듯 한 삶을 조명하며 서서히 글 속으로 안내하는 이 소설은 <오필리아>가 그들을 처음 만난 시점 그리고 외계 생명체 조사팀이 내려왔을 시점에 각각 긴장감과 재미를 준다. 사실 처음 150여 페이지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밋밋한 글이 좋았다. 그리고 그 많은 페이지에 할애한 <오필리아>의 성격은 나머지 250페이지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생명체와 맞닥뜨렸을 때에도 초연할 수 있는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묻고 이해하는 동안에 생긴 마음의 넓이는 새로운 생명체를 맞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히려 소외되어 보이는 인물이었기에 그들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내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그녀에게 <전달자>를 보낸 것이고 그들은 하나의 문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쓸모가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작품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70세 노인의 행성 생존기를 통해서 그 답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ps. 역자님의 대단함은 책 후반부에 여실히 드러난다. 분명 외계어 같은 문장이었을 텐데, 어떻게 찰떡같이 한글식 외계어로 바꾸셨는지 그 노고에 박수 쳐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