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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이 책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책의 제목인 <그래도 우리의 나날>과 단편 <록탈관 이야기>.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은 <그래도 우리의 나날> 이라 <록탈관 이야기>는 분량을 맞추려는 부록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엔 그 제목도 또 그 단어자체도 처음 듣는 <록탈관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로 걸어 들어가 왼쪽 주머니의 진공관을 향한 한없는 동경과 금이 간 그것을 내퍙개쳐 산산히 파괴하고픈 절망감이 손에 잡힐듯 명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따금 생각하는 일인데, 과연 그랬을까? 그 여름 노을진 간다에 있었던 것이 그렇게 들떠서 자기기만에 몸을 맡긴 나였을까. 그것은 게으름 부리며 살고 있는 지금의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거품이거나, 자기기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금 나의 거짓된 심상으로, 실은 십 년 전 옛날의 더운 여름 해질녘에, 달아오른 열기를 도로 내뿜는 콘크리트 위를 땀도 닦지 않고, 주위도보지 않고 그저 벅찬 감정을 꾹 참으면서 아마도 딱 앞만 노려보며 바른 걸음으로 걸어간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주머니에서 비참한 잔해가 돼버린 록탈관을 꽉 쥔 내 왼손은 누구에겐지 모를분노로 바들바들 떨다가 결국 도로에 그것을 내동댕이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록탈관의 파편, 산산이 흩어지는 그 소리와 함께무언가가 그 시절 내 속에서 죽어가고, 그리고 무언가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한 가지 사건을, 그것을 짊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고, 무엇 하나 배우지도 않고 잊지도 않고, 그저 빈둥거리며 지냈을 리는, 그럴 리는 절대 없다. 있었을 리 없지 않은가. 정말로 지금에와서는 어느 쪽이 그때의 진실인지 확인할 도리도 없지만, 해마다 그 더운 계절이 찾아오면 반짝거리는 해변, 먼지와 굉음이 가득한 도시의 대로, 꼼짝도 할 수 없는 만원 전철 등에서 느닷없이그때의 분노가 내 몸에 되살아나, 나른함과 자기기만으로 무너지려 하는 온몸을 뚫고 모든 것을 파괴할 듯이 타오른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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