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의 연인 1 - 春
베트 바오 로드 지음, 이동민 옮김 / 푸르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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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흐르는 물처럼 조직과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중국 혁명의 한 자락을 일군 등중하. 등중하의 일대기를 다룬 <내 영혼 대륙에 묻어>(백산서당)는 처음으로 ‘중국’과 ‘중국혁명’을 염두에 두고 읽은 중국 문학(?)이었다.
물론 <삼국지>라든지 <수호지> 따위의 중국고전은 어렸을 적부터 누구나 접할테지만 루쉰의 <아Q정전>, <조화석습>같은 훌륭한 책들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나.
책을 접하거나 읽을 때 어떤 대단한 생각을 품거나 염두에 둬야 함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계발서나 경제경영서같은 것을 읽을 때도 매 한가지 아닐까. 심지어 전세계 통털어 이천만 명이나 애용한다는 프랭클린 플래너같은 것도 심사숙고하여 한 자, 한 자 적고 새기는 마당이니 이 고집은, 혹은 사유는 그리 심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언제나 치우침이 있었던 것 같다.
<아Q정전>, <조화석습>따위를 읽을 때엔 그 문체와 글 자체에 집착했던 것 같고 예의 <내 영혼 대륙에 묻어>, 펄 벅의 <혁명가 왕룽>을 읽을 적엔 중국 혁명의 그 스펙타클함과 배경에 감추인 사람들의 미시적 관계와 소망, 중얼거림에 집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접한 <쑤저우의 연인>에서는 그 균형감각을 누릴 수 있었다. 텍스트 자체가 갖는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세월이 나와 세상을 그렇게 만든 듯 싶다.

1권 앞부분을 읽으며 왜 중국혁명의 ‘혁’ 자도 나오지 않을까. 다소 섭섭하고 조바심나기도 했지만 나로선 요령부득한 일.
머릿속을 헤집어보니 춘월의 어린 시절이 어디선가 본 듯해 잠깐 책을 덮고 기억을 되살렸다. 데자뷰일까. 물론 겪을 순 없는 일이었으니 나의 경험은 아니겠으나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아련함은 대체 무엇일까.
웨인 왕 감독의 <조이럭클럽>, 장예모의 <홍등>과 <귀주이야기>……. 혹은 제 멋대로 만들어놓은 중국 근세의 이미지.

책이 읽기 전까지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전형적인 중국 근대여성으로 주인공 춘월을 예상했다. 그럼 너무 뻔한가. 1권을 마칠 즈음 전형적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알았고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큰삼촌 용재와 춘월의 ‘쿨한’ 관계가 다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2권의 1/3이 남아 있기는 한데 용재와 춘월이 다시 한 번 그렇게 만날 일은 아마 없겠지. 이제 운명 개척자로서의 ‘여성(그러니까 또 다른 spring moon)’은 이제 ‘채옥’이니까!

아무리 봐도 얼치기 혁명가로밖에 안 보이는 작은 삼촌 귀재. 아버지 진재는 완전 샌님. 허풍쟁이 부르주아 하풍. 짧고 굵게 산 춘월의 남편. 표독스럽지만 장렬한 반전을 이룩한 춘월의 시어머니.… 인물 하나하나 버릴 것 없는 소중하고 위대하고 그리고 애틋할 뿐이다.

아직 읽을 분량이 남아 있긴 하지만 속도가 더 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기대치를 미리 읽은 부분에서 얻은 까닭이 아닐까 위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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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특별판 9 Chapter 17, 18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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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밤마다 잠들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파 고전했다. 그런데 또 아침이면 말끔해져서 나이롱환자 티를 톡톡히 냈다.

그 때 무언가 할 일이 없을까, 병원 주변을 헤매다가 만화가게에 가서 몬스터를 통채로 빌려와 읽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 가까워서 그런지 밖에선 연신 폭죽터지고 시끄럽고 난리블루스를 떠는데 조용히 병실에 누워 몬스터를 읽었던 그 소름끼치는 기억.

며칠 전 특별판을 질렀다. 소장하고픈 욕심에. 그리고 또 몇 번이고 읽고픈 맘뽀가 도져서.

그 때 놓친 부분도 새록새록 알게 됐고 보게 됐고 연신 소름이 돋아 미치는 줄 알았다.

마지막 장면.

그 때 엄마는 나와 동생은 혼동할 걸까, 아님 나를 보내려던 걸까.

어렸을 적 일을 돌이켜보면 요한의 고민과 같은 생각을 나도 가끔 한다.

엄마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언니와 나를 헷갈린걸까.

그나저나 우라사와 나오키님아. 플루토 3권은 은제 내실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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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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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야근 뒤 교보문고에서 2권을 샀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즐겁고 흥겹고 하지만 초조한 감정을 차라리 즐기자며 가방에 넣어 두었다.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 놓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방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까지 <남쪽으로 튀어> 2권이 가방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운 주말 저녁이란 느낌에 머리가 주뼛주뼛 서기까지 했다.

이것은_아무래도 1권 말미에 암시를 하긴 했으되_성장소설로 시작해 전공투의 추억을 되뇌이는 일본판 <고등어>(공지영 저)를 범벅한 데다가 로드무비적 요소를 조금 가한 뒤 일상의 혁명을 추구하는 21세기적 운동권 불온서적임에 틀임없다. 마치 의학드라마로 시작했지만 법정드라마 보스턴리갈로 변신한 뒤 심금을 울리는 "과장님없는 하늘아래"로 마감한 <하얀 거탑>처럼.

지로의 아버지 이치로는 요즘 한국 판으로 치면 청산천하유아독존 스타일이다. 정파간 대립으로 치달은 과거 운동의 경험으로 집단(주의)의 실천 내지 연합(연대)를 거부하는 '지존'말이다.

매스미디어를 비웃고 한 때는 열정적으로 함께 한 (과거의) 동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185센티의 거구로 직접 비난하고(매다 꽂고) 경찰권력과 공무원 집단 및 무언가 덩어리(집단)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이 낙천적이되 고집불통인 아나키스트. 실로 지로에게 고백하는 장면_아버지의 배 속엔 벌레가 들어있어~_에서 그 본질이 드러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지로는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어쩐지 아버지처럼 살고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드는 걸!

간만에 유쾌하고, 그리고 사유하게 만드는 픽션을 읽었다. 일본 문화_소설, 영화, 게임 등_가 가지는 미시적인 것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문득 최근에 시놉시스만 접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가 떠오른다. 그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의외의 생활소품들 말이다.

다만 이치로가 주변인들과의 연대에 인색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랬다면 이 <남쪽으로 튀어>의 컨셉을 깡그리 뭉갰겠지만.

마지막으로,

혹시 이 짓_이것을 쓰는 것_이 출판사 좋은 일이나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나를 위한 기록 쯤으로 여긴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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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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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327쪽

인간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자신이 안전할 때뿐이다.
-348쪽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건 어딘가 유쾌한 일이었다.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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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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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에 사각형 얼굴의 일러스트와 국민연금 어쩌구 저쩌구의 글귀가 있는 것을 보곤 당췌 저것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갸우뚱하는데 또 다른 버스가 지나가고 그 버스 옆구리에 또 그것이 있다. 흠. 광고구나. 국민연금을 내라는 것같진 않은데, 흠흠흠.

근데 또 버스가 지나가고 옆구리에 또.. 또...또... 마침에 정류장에 서 있길래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 광고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궁시렁궁시렁. 광고하는 책이야 뻔하니까 보면 안되겠군.  사실 책광고는 그닥 좋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광고야 그 광고값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니 좋은 광고야 없다손 치면 되니까. 그런데 그게 또 책광고일 땐 사정이 달라진다. 책은 책의 힘으로, 독자의 사유와 필요에 의해 그렇게 사고팔면 되니까.

그러다가 새해가 왔다. 이제 내 뇌리 속에 버스옆구리의 그 광고와 사각형 일러스트는 그저 잔영으로 남아 있다. 1월에 알라딘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한 사각형의 이 남자. 앗! 그 버스 옆구리!!!

최근 <라라피포>를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은 터라 무심코 1권을 신청했다. 그리고 풀지도 않은 알라딘 책박스를 방 한 켠에 밀어뒀다. 그 박스에 어떤 책들이 들어있는지 알 바 아니라는 심정으로. 그리고 오늘 아침.

그 박스를 풀었다. 알라딘 머그컵이 나온다. 스콧니어링 자서전도 나오고 암튼 책이 제법 들어있는 눈치로 보아 1월 어느날 미친 적하고 지른 것은 분명하다. 출근길에 이 책을 들고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다. 정말로 추호의 거짓말도 보태지 않고 아무 일도 못하고 이 책만 읽었다. 지금 시간 2시 40분. 약 다섯 시간만에 1권을 다 읽었다. 아~~~ 오늘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오늘 야근은 따 논 당상이다.

이 책은 철저히 지로의 관점에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로 아버지 이치로의 관점에서 어머니 사쿠라의 관점에서 아키라 아저씨의 관점에서 심지어 여동생 모모코의 관점에서 구석구석을 읽어내려 한 의심많던 모습이 발견된다.

철저히 12살 초등학생 지로의 관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과 연민, 아키라 아저씨의 무모하지만 거침없는 자존감과 약속, 신념에 대한 치명적 자유의지를 읽어야 남쪽으로 튈 생각이 도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2권은 야근 뒤 근처 서점에서 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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