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공화당, 민주당의) 두 개 국가로 분열된 2036년을 다룬 근미래 SF이자, 첩보스릴러.주인공인 정보국 요원 샘 스텐글이 이복동생을 암살하기 위해 중립지대로 파견되면서 영화평론가로 위장해서 그런지 20세기 중반 영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영화들이 떠올랐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일랜드, 인타임 같은 근사한 디스토피아 SF적 설정에 팅커 테일러 솔저스파이의 과거 냉전시대 첩보 감성을 잘 녹였다. 공화당 주도 국가를 거의 북한처럼 묘사하는 덕에 추가된 공동 경비구역JSA적 감성도 반가웠다.미국 정치에 그닥 관심이 없기에 책을 읽기 전에 좀 걱정을 했는데, 작가의 불꽃같은 반공화당-트럼프 정서에도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지 않게-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설정과 초중반 진행이 매끄럽고 세련됐다.장강명 작가의 추천사처럼 상당히 재밌고 몰입감 높은 sf적 첩보전이 진행되는데, 이 작품이 '빅피처'작가가 쓴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글쓰는 스타일도 다른것 같고 이야기 진행이 훨씬 긴박하고 속도감 넘쳤다.작품의 전체적 완성도가 상당히 높고 재미도 있는 '밝은 세상표 스릴러'가 다시 한권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영감을 받은, 아예 작품 내에서 여러번 해당소설을 소개하고 인용한, '그리고 아무도~~를 영리하고 흥미진진하게 재해석한'(워싱턴 포스트) 페이지 터너 스릴러.'죽여 마땅한 사람들' 과 '살려 마땅한 사람들'에서 이미 폭풍같은 전개와 놀라운 반전으로 실력을 입증한 작가가 써낸 맹렬한 속도감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최대 특징이자 장/단점은 9명 모두에게 성의있는? 서사를 부여한 점이다.이 책은 서두에 9명의 명단을 제시하고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는(명단에서 삭제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경우 희생자들이 죽기전에 비교적 간단하게 (호구조사 정도) 소개되는데 반해, 이 책은 무려 9개의 멀티버스를 생성하여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서사를 부여한다.마치 9개의 단편을 보는 듯 각각의 사연들이 개성있고 재미있으며 몰입도도 높지만, 한편으론 각각의 세계에 몰입했다 금세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에 살짝 피로감이 들기도 한다.이 피로감은 일견 이 피해자들이 공통점이 없어 전체적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리한 작가는 동일한 포맷에 지쳐갈(무려9번이나??!) 독자를 배려하여 FBI 요원을 죽여 공포심을 더하기도 하고 갑자기 살인범을 등장시켜 텐션을 높이기도 하며, 이것저것 반전의 떡밥을 뿌려주기도 한다.결국 어느 정도 둔한 독자라도 어.... 좀 이상한데 하고 알아채기 시작하는 시점이 오게 되고, 결국 작가는 숨겨놨던 비장의 칼을 꺼내들고는 혼란스러운 독자에게 친절하게 반전을 설명해 준다.이 반전을 보고 앞으로 돌아가보니 작가가 일종의 서술트릭을 얼마나 정교하게 써놨는지, 또 작가 나름으로는 얼마나 공정하고 친절했는지 알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결말부의 설명 부분은 클로즈드 서클이 아닌데도 희생자들을 너무 쉽게 처리해 개연성이 부족한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 스스로를 민망하게 할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그간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스티븐 킹의 책들은 보통 두 권 이상으로 분책되어 나올만큼 길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원체 이야기속 이야기까지 재밌게 하는 바람에 다소 산으로 가기때매 저자의 책들은 속도감은 다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되는 '홀리'만의 장점은 '휘몰아치는 속도감'이다.(겸손한 킹 할배는 작가의 말에서 '낸 그레이엄'이라는 편집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녀가 일부분을 덜어내자고 할때면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덕분에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산으로 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자백하신다..)이 책은 2012년부터 3년 주기로 벌어진 80대 노부부의 쇼킹한 범죄행각과 현재 시점의 홀리 기브니의 수사과정이 교차 서술되다 결국 2021년 7월에 하나로 수렴하게되는 구조를 가진다.590여 페이지의 한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벽돌이지만, 메인스토리 위주로 힘있게 진행되기에 그리 길다는 생각은 안들었다.'악에는 끝이 없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소재가 극도로 혐오스러워 읽기 힘든점은 있지만, 홀리가 차근차근 수사를 진전시켜 진범을 특정한 중후반부 부터 양들의 침묵 내지 검은집 느낌으로 쫄깃하고 스릴넘치는 결말을 맺게 되기까지의 막판 스퍼트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보여준다.아무래도 홀리 기브니 스탠드 얼론이다보니 '파인더스 키퍼스' 3부작과 250여페이지 경장편인 '피가 흐르는 곳에'의 내용이 많이 언급되긴 하는데, 전작을 안봤더라도 읽는데 지장이 없는데다 오히려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대가의 스토리 텔링 솜씨는 여전했다.마지막으로 이 책의 특이점은 아무래도 할배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런지 '코로나19'사태가 (다른 작품들처럼 수사과정을 더디게 하는 귀찮은 이벤트 정도가 아니라) 노인들의 죽음과 연관지어 꽤나 진지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엄마가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홀리의 각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아울러 범인들의 범행 동기이기도 한 노화와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와 고민 역시 여타 작품에 비해 더 진하게 느껴진다.'소설계의 마지막 진정한 록스타 중 한사람이 작가로서 계속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워싱턴포스트의 서평에 격하게 공감한 작품이었다.
캐드펠 시리즈는 5권을 거쳐오며 마치 오늘날의 미드처럼 각 에피소드의 전개방식에 대한 공식을 어느 정도 확립한 느낌이다.<오만한 기성세대와 순진 무구한 젊은세대의 대립 -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살해당하자 누명을 쓰게된 젊은이 - 젊은이의 도주- 캐드펠의 활약- 누명을 벗고 사랑을 완성- 에필로그에서의 반전과 쿠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전개되는데 이번 권도 유사하다.5권을 포함한 캐드펠 시리즈가 마음편히 술술 잘 읽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글솜씨와 세심한 묘사, 촘촘한 플롯 덕분일 것이다.하지만, 좋은 글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위의 이유들 외에 명확한 선과 악의 대립과 인과응보라는 사이다적 요소에 사회를 보는 풍자적이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과 따뜻한 인간애가 더해졌기에,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은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이 완성된다.특히, 여성, 노인, 하인, 병자 등 다양한 층위의 사회적 약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을 이야기의 핵심적 조연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세상이 꼭 강자의 논리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 진실과 진리 같은 것들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주는 점도 좋다.5권의 에필로그 쿠키에서 캐드펠이 십자군에 참가했을때의 과거사가 살짝드러나는데,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 캐드펠 개인의 서사가 완성되어가는걸 보는 재미도 기대된다.
4권은 불꽃같았던 앞 권들과 달리 성 베드로 축일 축제장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기에 분위기가 다소 부드럽고 흥겹다.작가의 묘사력이 원체 좋아 마치 중세 장터에 와 있는 듯한 오롯한 몰입감을 느끼게되어 좋으면서도, 쉬어가는 권인가? 싶을때 즈음 (당연히) 첫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1~3권의 진행방식으로 봤을때 다른 음모를 은폐하기 위한 살인이겠거니 싶은 즈음에 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작품 분위기가 생각보다 (미스터리적으로) 상당히 진지해진다.진지한 수사 이후 범인을 잡았나 싶은 시점이 책 중간부분 이길래 대체 뭐가 남았지 싶었는데, (어느정도 예측 가능했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았던)반전이 등장한다.마치 명탐정 코난의 검은 조직 스토리처럼 캐드펠 시리즈의 기본 토대가 되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권력다툼과 관련된 음모가 이번 작품의 연쇄살인의 배경임이 밝혀지면서, 다소 심심하고 파편적으로 느껴졌던 초중반부의 사건들이 멋진 퍼즐로 조합된다.역시 이번권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캐드펠 시리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