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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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훌륭한 종이책 판타지 소설을 읽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재능있는 젊은 판타지 작가들이 죄다 웹소설 시장으로 몰려갔나 싶을 만큼 웹소는 괜찮은 작품이 많지만 종이책은 뜸했는데 간만에 걸작을 만났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고백했듯이 데뷔 20년 동안 이런저런 작품을 써 왔지만 나름의 방향성을 가진건 최근이라 한다. 개인적으로도 '타워'나 '화성과 나' '미래과거시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가능성과 창의성, 실험과 난해함사이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확실히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SF만 써오던 작가가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처럼 '계속 좋은 소설을 갱신해 나가는' 아니 아예 전작에 비해 퀀텀점프를 해버린 비결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언급한 '느슨하게 이어진 동료집단의 연대' 덕분일수도 있겠다.

즉, 이 작품에 앞서 존재했던 수많은 판타지, 역사 창작물들이 작가에게 느슨하게 영향을 미쳐, 작품의 빛나는 오리지날리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명작들의 오색찬란한 장점을 흡수하지 않았나 싶다. 마치 작품속에 등장하는 '오색찬란한 색깔의 봉황이 황금빛을 뿜어내듯'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정의하자면, 이 작품은 1)십이국기 스타일의 탄탄한 역사 판타지적 세계관, 즉 꼼꼼히 고증 또는 직조된 작품속 현실에 발붙인 개연성 있는 판타지적 설정 2)눈물을 마시는 새의 건조한 문체와 작품속 세계의 완결성 넘치는 언어/논리/문화체계 정립 3)만화 킹덤이 생각나는 군대간 생생한 전투묘사 4)내부 권력싸움과 영토확장 전쟁 정도로 시작했다가 미지의 재앙과 맞서게되는 결말로 이어지는 '왕좌의 게임' 느낌의 2차원적 세계관의 확장 5)국산 명작 sf '돌이킬수 있는'의 두 주인공과 같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세계관의 시간적 확장 등을 특징으로 한다.

사실 위와같은 점은 이 흥분되는 작품을 읽고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해서 무리하게 갖다 붙인것일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작가가 어떠한 영향을 받았든 이 작품은 여러 명작판타지들이 보여주는 장점을 '차용'이 아닌 '흡수'하고 '소화'해서 새롭게 '창작'해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검과 마법'이라는 서양 중세식 판타지 설정이 우리 문화권과 달라 어딘지 빌려온 느낌이 들어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무대를 설정했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기에 제목은 '기병과 마법사' 이지만 작품은 '유목민과 주술사' 로 진행되는데, 작가가 말하듯 '이야기의 숨겨진 지향점이 바로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인덕에 정통 판타지?가 아니에도 생생함이 느껴진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우혁의 '치우천왕기'가 생각나기도.

오랜만에 등장한 고품격 역사+한국형(작품에선 한반도가 유추될뿐이다) 판타지가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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