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책일기
고종석 / 문학동네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고종석의 이 책은 그가 한겨레 신문에 쓴 조각글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전체는 일관성이 없다. 그래도 한 조각 한 조각은 읽을 만하다.
아니 사실은 나한테 좀 넘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신입생이었다.
그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아마도 선배들과 동기들의 손에 이끌려
두주불사하고 있었을 거다. 처음 술을 먹고 아스팔트가 나한테 박치기하는
경험을 한 것도 아마 이때쯤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뚜렷한 지향 없이 살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뭔가를 느끼고 실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막 질투가 난다.
나도 나름대로 손에서 책을 멀리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책을 그 나이에 읽었으면 지금 내가 좀 다른 모습이 돼 있지 않을까
이미 흘러버린 시간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이 책을 읽다가 난 흘러간 7-80년대 평론가들의 논란과 출판의 간단한 흐름을 보았다.
기억할 만한 출판사의 흘러간 과거도 조금 보았고 고종석이란 사람이 가진
개인주의에 대한 태도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평론에 대해서 무척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조금쯤은 수정하게 되었다. 시집을 읽으면 웬간하면 뒤에 붙은 해설은
잘 안 본다. 괜히 어려운 말로 이것저것 지껄여셔 그나마 얻었던 감흥까지
앗아가버릴까 두려워서다. 근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을 갈무리해두긴 해야겠지만 나보다 나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
같은 글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적어도 그 시인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은 글을 읽었고 더 고민했을 테니까.
그러니 무조건 어려운 말로 쓴다고 해서 뭐라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래도 암튼 어려운 단어와 현학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버거운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고종석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 경계의 느낌을 준다.
어려운 글을 읽을 때 좀더 앞으로 밀어주는 감각을 주는 것이다. 그 점에서 고종석의
글은 나에게 귀하다.

아직도 읽고 싶은 그의 책이 몇 권 남았다. 조금 아껴두고 읽을 요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