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길동전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5
허균 지음, 허경진 옮김 / 책세상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조선시대에도 요즘의 대여점 같은 곳이 있었던가 보다. 하긴 사람 사는 곳이 고금을 통틀어 어느 곳이건 비슷하지 않겠어. 이 책은 조선말기에 돌았던 세책본(貰冊本)이다. 말 그대로 빌려주는 책. 이 판본이 번역된 것은 처음이라는데 부끄럽게도 이 책의 원본이 일본의 '동양문고' 중의 1권이다. 일본의 문고가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옮긴이 허경진 선생은 연대 국문과 교순데 그간 조선의 글에 관심을 기울이고 쓴 책이 부지기수다. 평민사에서 낸 한국의 한시 시리즈를 선생이 거의 혼자 내다시피 했고 조선시대의 출중한 문인 대부분은 대개 다룬 것 같다. 선생이 그중 특히 애정을 가진 사람이 허균이었다고 한다.
홍길동 하면 다들 안다고 하겠지만, 그 이름을 알고 그 이야기의 대강을 들어 알 뿐이지 정작 원본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의 대강은 비슷하지만 이 판본에는 홍길동이 나중에 조그만 섬에 들어가서 율도국을 세운 것이 아니고 율도국이란 나라가 원래 있었는데 그 나라의 왕이 패악무도하여 홍길동이 의병을 이끌고 혁명한 뒤 태평천국으로 다스렸다는 얘기다. 세책본이라 흥미위주였다고 하고 필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허균이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서얼도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의 건설'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얘기를 잠시 더 해보자. 특이하게도 뒤에 필자가 허균과의 가상대담을 붙여둔 것이다. 이 형식은 미시사 연구로 유명한 백승종 교수가 가상으로 하서 김인후와 나눈 대화 형식으로 썼던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이 구상이 편집자에게서 나온 것인지 필자에게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부록은 허균의 일대기인데 그 정리가 일목요연하게 간략하게 풀면서도 흐름을 가지고 있어서 허균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사실 난 본문보다도 부록이 더 재미있었다. 책세상의 책은 언제 보아도 교정 상태가 훌륭하다. 기본이 돼 있다. 이 책은 옛 한글소설을 현대어로 바꿨다. 한문을 알 줄 아는 이들이 펴내는 책들을 보면 항상 한문을 공부해서 이것저것 읽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는데 부럽고 다른 경계를 바라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