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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시문선 ㅣ 나랏말쌈 13
이규보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책은 도대체 왜 읽는 것일까? 아마도 나는 지적허영에서 읽는다. 창피한 노릇이지만 숨길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일단은 읽는 것이 즐거우므로 단지 읽는다.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지금 이 시대에도 읽힐 정도의 문장을 갖춘 이. 고려의 태생이 고구려의 계승임을 확인함으로써 민족적 자부심을 강조하고 당시 보기 드물게 중화풍도에 경도되지 않고 민족적 자존을 꿈꾸었다.
이규보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가 어떠한지는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유유낙낙 유학자이면서도 하긴 아직까지 딱딱하게 경직된 성리학이 도입되기 전에 유학이 아직 물렁물렁 하던 때였으니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유람하며 흥에 취하여 적어낸 글은 산이며 물이며 바람이며를 논한 것이라서 굳은 유학자의 느낌은 없다.
읽으면서 자꾸 민족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써놓은 글을 보면 중국에 대척되는 신라의 개념. 이것은 최치원의 경우 어린 나이에 중국에 가서 문명을 날렸다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경계로 나누어진 나라의 개념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중화민족의 민족과 대치하는 한민족의 개념 또한 가지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요즘 내가 아는 바로는 민족과 같은 거대담론은 한물가고 개인을 더 중시하고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시사보다는 미시사에 더 비중을 두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반드시 민족과 개인이라는 개념을 대척에 두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테면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사카모토(장동건 분)의 경우 어떤 것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그런 경우에 처한다면 보통 다들 역사를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영화에서도 간간히 보여지듯 조센진들이 당하는 차별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바꾸고나서 동등하게 대했다고 하면 과연 굳이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단지 민족정기를 되살린다는 그 거대한 몸에 와닿지도 않는 이유로? 모를 일이다. 나 같으면 자신 없다. 민족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라, 는 식의 명령은 거부감이 생긴다. 거부감.
책의 서체와 문장 부호에 사용된 서체가 아마도 다르지 싶다. 따옴표가 더 똑똑하고 명확해보인다. 물음표는 반으로 좀 뭉그러졌지만.
판형도 포켓사이즈고 가볍고 좋은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종이가 너무 얇아서 뒤가 비쳐보인다는 것이다.
나랏말 시리즈. 챙겨 읽어두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