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신 판 세계문학의 숲 41
크누트 함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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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한 눈에 들어온 사람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그 떨리는 순간을?

​혹,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가 덧없이 지나가는 다정한 인사처럼 내 심장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맑은 봄날이었다. 그 후 나는 줄곧 그날에 대해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반달 같은 눈썹에 감탄했다.

......

내가 오두막으로 돌아올 때, 익숙지 않은 무언가의 숨결이 내 쪽으로 풍겨왔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목신 판>의 토마스 글란은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주인공 토마스 글란의 사랑이야기인 <목신 판>은 사랑에 빠진 남성의 감성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짐승같은 눈을 가진 토마스 글란은 숲에서 이솝이라는 개를 데리고 사냥을 하며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자연속에서 자연의 신이 되어 살고 있다. 이런 그에게 우연히 나타난 에르바르다. 그녀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팜므파탈이었다. 글란은 그가 좋아하는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을 그녀와 함께 느끼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글란이 묵직하고 진중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역시 즉흥적이고 아이러니한 인간이었다. 질투와 욕망에 자신의 발을 쏘는 무모해보이는 열정의 소유자. 조용하다가 발작이 난 것처럼 행동하다가. 마치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그는 에르바르다에게 강하게 끌리지만 에바라는 여인과 결혼도 약속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글란이 인도로 가서 방랑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을 서술하는 화자는 글란이 유도한대로 그를 질투하여 글란을 죽이고 만다.

이 책은 두 개의 중편으로 되어있는데 <목신 판>과 <빅토리아>다.

목신 판이 불같은 사랑의 감정에 흔들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야기인 반면 <빅토리아>는 흔히 볼 수 있는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다.

10대에 만난 연인의 꿈과 현실은 꿈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이루어질 것 같다. 10대의 소년은 새알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공주를 얻겠다는 포부를 밝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밖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자신이 신분상으로 얼마나 초라한지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공주와 같은 그녀를 사랑하고 시를 읊는다. 그녀는 그에게 시와 삶의 전부였다.

사랑에 대한 멋진 두 작품을 한 권에 모아 둔 이번 작품은 사랑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그래서 어긋나고 오해하기 쉬운 감정이라는 것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내었다. 너무나 섬세해서 어쩌면 마음 속과 머리 속을 직접 들여다 본 듯 생생하고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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