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 프랑스.태평양.스탈린그라드 KODEF 안보총서 39
남도현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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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우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과학에 특성화된 교육을 받아왔기에 이공계와 관련 없는 인문학 분야의 과목들은 거의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특히 세계사는 아예 과목 자체가 없었다. 국사나 사회, 지리, 도덕 등 2학년 때까지 배웠던 인문 과목들조차 전혀 시험 공부를 하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배우지 않은 세계사는 더할 나위 없이 무식 그 자체라 해도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서양 고대사는 '로마인 이야기'에 푹 빠지면서 관련된 다른 책들도 읽어나가며 어느 정도 알아나갔지만, 그 이후의 중세나 르네상스, 근현대 세계사에 관해서는 내가 생각해도 참 아는 것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 중 근현대사에서의 가장 큰 세계적인 사건으로 세계 제 2차대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전체의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사상자나 피해 수준 자체가 다른 전쟁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크고 거칠었기 때문에 가장 끔찍했던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며, 이런 참상이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었기 때문에 더욱더 모든 세계인들은 이를 잘 파헤쳐서 명심하고 경계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러 처음 선택한 세계 2차대전에 관련된 책이 남도현 지은이의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 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곧장 집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적 순간들'이라는 문구는 나처럼 2차대전에 대해서 무지한 초짜가 혹할 만한 것이었다. 2차세계대전에 관련된 다큐를 한 번 본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복합적인 나라 사이의 관계, 정치적 관계 등이 얽히고 섥혀 있어서 이 전쟁을 한 번에 죽 훑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들을 집어서 설명해주는 책인 듯 했고, 그렇게 접근하게 되면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부분들을 직접 찾아서 더 자세히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들은 3가지이다.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 1942년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 전쟁, 1942년 스탈린그라드의 독일의 러시아 침공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각각 독일, 미국, 러시아가 승리했다고만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게되니, 이 끔찍한 참상에 이런 수식어를 덧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참 흥미진진했다. 수많은 국가와 인물들의 이해관계 및 성격과 문화, 역사에 따라서 예상을 빗나가면서 짜임새 있게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역시 실제 사건만큼 탄탄한 스토리는 픽션들이 따라올 수 없구나라고도 느꼈다.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 내가 몰랐던 부분들 위주로 적어나가도록 하겠다. 보통 2차대전이라함은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소련) vs. 독일,이탈리아,일본 이라 생각할텐데 훨씬 더 복잡한 관계들이 있었다. 실제로 러시아에게서 독립을 꾀하던 핀란드와 같은 여러 나라들은 추축국 편에 가담했었고, 크게 보았을 때에는 프랑스는 연합국 측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일본은 추축국 진영에 아시아 식민지를 위해서 살짝 발만 담근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전쟁이 유럽 대륙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알고보니 오히려 이탈리아가 독일에게 걸림돌 수준일 정도로 한심한 실력을 보여줬고, 오히려 일본은 초반에 미국을 압도할 정도의 전력을 갖고 태평양 전쟁을 이끌었다 한다. 나는 단지 일본이 진주만 사태를 일으키고 미국에게 혼쭐이 났다고만 생각했지, 그 사이의 일들을 몰랐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것이 요행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침략 수준도 엄청났다. 나는 그냥 우리나라의 일제 시대에만 신경썼지, 일본의 중국 침략은 천안문 사태 등을 제외하면 만주 부근에서 약간 일어난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2차대전 전체 사상자 중 소련을 제외하면 중국의 사상자가 제일 많다는 후문이다. 일본의 침략이 가히 잔인하게 가혹했던 것이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대해서는 독일이 마지노선을 돌아가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어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네의 일기'를 탄생시킨 네덜란드 침공과 유대인 학살이 동반되었는데, 사실 독일의 주력군은 룩셈부르크 부분의 아르덴 고원을 가로지른 군대였다. 오히려 네덜란드로 돌아서 침공해서 프랑스를 격파한 것은 1차대전이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프랑스가 이렇다할 반격 없이 무너졌나였다. 프랑스는 독일과 대등하거나 더 많은 전력을 갖고 있었고,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관계였던 영국과도 동맹을 맺으며 독일을 견제하였는데 어떻게 힘없이 무너지게 되었는가. 1차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분명 군대나 영토 등에 굉장한 제약을 받았었는데, 어떻게 그동안 전력을 슬금슬금 늘려나갈 수 있었는가. 모든 일에는 원인과 그 배경이 있는 법이니, 이 프랑스 침공은 그 배경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무시했던 일본이 2차대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은 태평양 전쟁 파트에서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미국을 직접적으로 전쟁에 끌어들인 꼴이 되었고, 이는 2차대전의 추를 확 기울게 하였으며, 자신들의 파멸 또한 초래했다. 진주만 사태는 정말 미국에게 큰 타격이었던 것 같다. 그 직후 일본의 해상전력과 공군전력은 미국을 압도할 정도였다 한다. 아무래도 태평양을 끼고 치른 전쟁이라 육군은 전혀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서 해상전쟁은 항공모함을 누가 많이,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느냐에 달리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항공모함을 어느 공군이 가장 먼저 발견하여 일격을 가하느냐가 전쟁의 핵심이었고, 여기서 우리는 정찰과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초기의 일본은 미국보다 더 많은 항공모함을 지녔지만, 역시 미국의 물량을 넘을 수는 없었다. 미국은 다 무너져가는 항공모함도 짧은 시일내에 수리해서 내보내고, 계속해서 많은 물량과 항공모함들을 만들어내면서 서서히 일본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많은 전투에서 일본이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항공모함이 가담한 큰 전투 역시 일본이 승리로 거두었다고 나오지만, 최종 승리는 미국이 거두었다. 일본은 전투를 근근히 이겨나갔지만, 그 이후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자동차에게 부을 연료가 떨어진 것이다. 이는 전쟁에서도 중요한 교훈이 되겠지만, 우리네 삶에게도 필요한 부분들이 될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가장 크게 보여주는 부분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시가전이 바로 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격정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히틀러가 잠시나마 러시아와 조약 관계를 맺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스탈린의 붉은 나라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이념적, 사상적 차이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 세계대전의 화룡점정은 러시아 침략이었고, 이는 프랑스를 쉽게 점령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두고 두 독재자가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 전투는 각 나라의 군대들의 투지도 더 불살랐나 보다. 강을 뒤에 끼고 좁은 시가지에 갇힌 러시아 부대들은 끝까지 건물 속에서 게릴라 작전으로 독일군에게 피해를 안겨주었고, 러시아는 강을 통해서 끊임없이 군대를 보충하고 보급하고, 그 끔찍함은 상상조차 힘들다. 그 이후 러시아가 기습적인 감행을 통해 오히려 독일군을 포위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정말 비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미 수없이 피를 흘린 독일군은 포위가 시작된 무렵 후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히틀러의 옹고집으로 인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보급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다. 30년만의 혹한과 같이 찾아온 희망없는 마지막 발버둥을 하던 병사들의 심정을 어찌 알 것인가. 그 와중에 만슈타인 장군의 아군 탈환 작전 역시 극적이었고, 포위당한 군이 내응을 했으면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였지만 히틀러는 여전히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사수하라고만 했고, 포위당한 군을 이끌던 한심한 젊은 장교 역시 히틀러의 말에 따르면서 이 극은 비극이 되었다. 책에는 독일군이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가 있다. '어머니, 창피한 이야기지만 너무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을 보내주세요. 어머니, 저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책을 맺은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프랑스 침공으로 전쟁의 배경과 서막을 알리고, 태평양전쟁은 사실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의 활약들이 마치 게임하듯이 전쟁 속에 푹 빠지게 했다. 그렇지만 스탈리그라드 전투는 전쟁 속에 푹 빠지게는 했지만, 절대 이런 과거가 되풀이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갖게 한다. 이 전투에서는 승리자가 없다 한다. 소련은 독일에게 항복 선언을 받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자료로는 100만의 사망자와 500만의 인명피해, 미확인 자료로는 150만의 사망자에 800만 인명피해란다. 그냥 한 세대의 젊은이가 싹 사라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2차대전은 무조건 꼽힐 것이다. 좀 더 이에 대해 공부를 할 것이며,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해야할 것이다.
[출처] <책><리뷰>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 남도현 지음 / 플래닛미디어|작성자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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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보급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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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작년 말일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집었고, 설 연휴 때 사흘 간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세간의 엄청난 관심거리가 되기 전부터 애플 제품은 단 하나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적이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히 부끄러운 일인 듯 했다. 책을 읽은 지 약 3달이나 지난 후에 굳이 책의 감상평을 쓰는 이유는 하도 글을 안 쓰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바꾸어 보자는 의도도 있으나, 그 3달 사이에 10권 이상의 책이 그냥 스쳐 갔다는 점에서 확실히 '스티브 잡스'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스티브 잡스에 관심이 없었고, 이분법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쪽에 서 있었다.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기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는 놀라웠지만, 전자제품, 더 나아가 과학 기술 자체를 브랜드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안 그래도 의류나 악세사리류 등의 명품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쓸데없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지니게 하는 현 세태에 현기증을 느끼는 판국에, 전자 제품까지 그렇게 된다니. 특히나 각종 명품에 눈이 가장 먼저 뒤집히는 사람들이 일본인과 한국인이라고 했던가. 소위 '앱등이'라는 무조건적인 애플 신봉자와 그들과 맞서는 인터넷 워리어들, 맥은 쓸 줄도 모르면서 사과 마크를 슬쩍 보인 채 맥북을 들고다니는 종속적인 사람들. 이런 것이 보기 싫었다. 그냥 새로운 기술이 탑재된 제품이 나오면 그것을 즐기고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만을 생각하면 너무 무딘 것일까.

즉, 스티브 잡스는 과학 기술을 정말 사랑하는 공학자가 아니라 장사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기업의 첫째 덕목은 물건을 팔아먹고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지 잘 안다. 그렇지만 기술에 대한 respect가 좀 없다고 느꼈다 해야하나. 책을 읽고 나서 잡스가 장사꾼이라는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하지만 지금껏 늘어놓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조금 완화되었고 배울 점 역시 찾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히려 괜시리 내가 큰 변화를 이끌어 냈던 잡스에게 respect를 보내지 않았던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책은 잡스 신봉자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을 것 같다. 내가 보아도 잡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호감을 받았는데 그의 팬들은 훨씬 더할 것이다. 필자는 <타임>지의 편집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히 잡스의 괴팍하고 결코 사회적이지 않아 보이는 그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그는 사람들을 잘 이끌었고, 그 마력이 이 책에서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이 책을 읽어도 잡스를 실제로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잡스의 리더쉽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그의 괴팍함의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고 변덕을 부리기 일상이며 남의 아이디어조차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뻔뻔함은 세상에 어떤 사람도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항상 드림팀이 있다. 참 이건 보면서도 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남아있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이러한 점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무나 특별한 삶을 살았고, 정말 기이한 인간 관계를 지녔기에 그 어떤 픽션보다 재미있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동시에 리더쉽 측면에서는 잡스에게 배울 것이 별로 없다. 그의 리더쉽은 타고난 점과 더불어 운이 좋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의 리더쉽을 배우고자 괴팍함을 따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좋은 점만 따라해보자니 대체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특히나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인물상이다. 게다가 어설프게 이런 리더쉽을 펼쳤다가는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만큼의 능력을 갖추었을 때 이 모든 관계의 아귀가 맞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의 리더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는 거칠게 사람들을 다루면서, 아래 사람들 역시 자신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좋아한 듯했고, 이 점이 다양한 의견을 사람들이 쉽게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를 통해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목적 의식이 고취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점을 굳이 잡스처럼 이끌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운이 따랐다고 말하는 점은 그가 좋은 사람들과 시작을 함께 했고, 그들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처음 애플을 공동 창업했던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잡스 역시 없었을 것이다. 잡스는 프로그래밍을 못 한다 했다(이 내용을 보고 장사꾼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워즈니악이 초창기 애플 제품을 다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잡스는 그것을 팔러 다닌 것뿐이다. 애플을 창업하고 난 후에도 그가 쉴새 없이 들들볶는 같은 부서의 팀원들 역시 그에게는 행운의 사람들이다. 글로만 읽은 느낌으로는, 그의 성격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견뎌내면서 동시에 훌륭한 능력까지 갖춘 사람들을 곁에 두었으니 이 어찌 운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획일화된 기업 구조를 갖고 이에 맞추어진 책 교육받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잡스가 그러한 기회조차 잡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기술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피부로 느낄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공학자들은 그냥 기계 취급하고 오히려 디자이너들이나 마케팅맨들을 더 중용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확실히 기술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커머셜 광고, 다른 기업과의 관계, 배포 과정, 신제품 발표회, 포장 등. 이러한 것들이 애플 기업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높여주었고, 하나의 명품 브랜드처럼 만들어 준 것이다. 애플 전문 매장인 프리즈비나 앱스토어 등은 놀라운 마케팅 전략이었고 성공한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특히 검정색 터틀넥으로 표상되는 그의 신제품 발표회는 딱딱한 기업의 제품 설명서 낭독이 아닌 기승전결이 있는 그의 쇼였다. 이를 통해서 잡스가 일반인들이 과학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한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케팅이나 디자인도 기술만큼 중요하다, 이 점만 인지해서는 사실 겉핥기만 한 수준이다. 그의 위대함은 도전 정신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창의성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 창의성이 도전 정신에서 온다고 본다. 사실 잡스가 직접 관여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아이콘 형식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타 회사에서 구상해 놓았던 아이디어를 보고 이를 실용화 시킨 것이고, 아이팟에 달린 원형 스크롤 역시 애플 사원이 제안한 것이며, 프리즈비의 탄생도 다른 건축가의 작품이다. 최근 애플이 내놓은 siri 기능 역시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기술을 사들여 장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이 주변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었고,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컴퓨터 만드는 사업으로 시작하여, 음악 산업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애플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에 픽사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관여하고, 최종적으로는 휴대폰 시장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놀라운 개혁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iTV를 출시할 것이라는데, 지금은 잡스가 세상을 떴지만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잡스로부터 시작되었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공학으로 시작하여 의류 사업도 하고 건축 사업도 하고 요식 사업도 하고 호텔 경영도 하며 모든 사회를 움켜쥐려는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단지 자신들의 사업 간의 유려한 소통을 터 놓고 자신들이 사회 전반을 움직이려는 야심에 의한 것이고, 잡스의 새 사업 진출은 그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보았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자신이 보았을 때 더 좋은 산업을 만들 수 있는데 정체되어 있는 듯한 산업에 뛰어들어 자신이 구상하던 일들을 직접 해내는 것이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잡스와 같은 경영인이 나올 수 없는 교육 구조, 산업 구조라며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단지 이러한 의견들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책만 파고드는 교육 정책하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눈치만 보며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는 세태는 말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내가 공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은 잡스의 정말 세세한 일거수일투족, 필요없을 것 같은 이야기까지 다 다루어 그의 삶을 영화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의 역동적인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개인 몫이지만, 다양한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며 삶인 것 같다. 특히 이공계열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욱 흥미가 가는 것 같다. 물론 단순히 재미로만 읽기에도 훌륭한 책이다.

아, 글을 좀 짧게 쓰는 법을 익혀야 겠다.
[출처] <책> '스티브 잡스'를 읽고|작성자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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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3 (양장)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시리즈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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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 시리즈 중 가장 평도 좋고 인기도 많은 작품이 이 '바스커빌 가문의 개' 인데, 이는 10대 추리소설 안에도 들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앞서 소개한 작품들에 비해 반전이 크지도 않고 잔잔하고 음산하지만 짜임새 있게 플롯이 진행된다. 보통의 홈즈 시리즈가 그렇듯이, 왓슨 박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적절히 홈즈의 행동 중 숨길 것은 숨기면서 우리가 실제로 이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생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여기에 셜록 특유의 냉철하면서도 꼼꼼한 관찰력은 독자들을 반하게 한다.

바스커빌 가문의 저주로 시작되는 이 기묘한 범행(?)은 정말 사람을 물어뜯는 개가 있느냐 없느냐, 또한 개 스스로 물어뜯은 것이 아니라면 과연 범인은 누구일 것이냐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주변에 사는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이웃들과, 황무지에 숨어있는 탈옥한 살인범, 그리고 홈즈는 왜 왓슨만 보내고 어디서 무얼 하는가?! 이 모든 의문점에 대한 답은 책 속에 있다.
최근 영국 드라마 '셜록'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셜록 홈즈 시리즈가 재조명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군더더기 없이 현대적으로 홈즈 시리즈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시즌2 2편이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내용인데, 드라마만 본 사람에게는 원작 책을, 책만 읽은 사람에게는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다.
[출처] <책> 추리소설 추천선 4~6|작성자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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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의 비밀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4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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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제목은 '813의 비밀'이지만 원제는 그냥 '813'이란다. 나도 원제가 더 깔끔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덧붙인 제목이 아쉽다. 이 작품은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찬사를 받는 책이며, 세계 10대 추리소설 안에 든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일단 스케일 자체가 굉장히 커서, 독일 황제까지 등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이용하여 국가별 정치나 외교까지 좌지우지되는 이 작품의 배경은 조금은 복잡하지만 독자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스토리의 시작은 부호인 루돌프 케셀바흐의 살해로부터이다. 뤼팽은 자신이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고 케셀바흐의 집을 나오지만, 케셀바흐는 살해된 채 옆에는 아르센 뤼팽이라 적힌 메모지가 놓여져 뤼팽은 순식간에 천일공노할 살해자가 된다. 그렇게 뤼팽을 의적이라 칭하던 대중들마저 그를 욕하기 시작했고, 사회에서 고립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뤼팽은 루돌프 케셀바흐의 진짜 살인범을 찾으며 피에르 르뒥을 황태자로 만들며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주느비에브를 그의 비, 황태자비로 만들 계획도 꾸민다. 이 작품의 묘미는 뤼팽은 초반에 직접적인 등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뤼팽은 베일 속에 숨은 채 살인범-경찰 (르노르망, 구렐 형사)-뤼팽 이 3개의 세력 구도가 서로 쫓고 쫓기며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든다. 이 작품에서는 수많은 반전과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어마어마한 반전 2개가 존재한다. 이 책은 꽤 두꺼워 크게 2개의 편으로 나뉘는데, 각 편에 굉장한 반전이 들어있고 새로운 사실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책 속에 푹 빠지게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범인을 뤼팽이 밝히면서 우연성이 많이 포함되어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놀라운 반전들과, 큰 스케일과, 뤼팽이 감옥이 갇히기까지 하는 긴박감, 살인범으로 쫓기는 상황을 탈피하고, 813의 비밀을 풀고, 살인범을 밝히는 뤼팽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점들은 눈에 밟히지도 않는다. 홈즈가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재탄생 되었듯이, 뤼팽 역시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면 한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5권을 읽기 전에 이 4권 '813'을 먼저 읽어야한다. 5권 중간에 '813'의 스포일러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책> 추리소설 추천선 4~6|작성자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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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마개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5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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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 시리즈 중 '수정마개'. 뤼팽 시리즈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들로는 '기암성', '813의 비밀'이 있는데 나는 이것들보다 '수정마개'를 더 재미있게 보았다. 장편이지만 그리 길지 않은 양이고, 뤼팽 시리즈는 보통 유럽 특히 프랑스의 문화나 역사에 익숙하지 않으면 꼼꼼히 읽어야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이 작품에서 뤼팽은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러한 면에서 결코 정의의 수호자라고 불릴 수는 없는 괴도 뤼팽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익살스럽게 볼 수도 있고, 뤼팽에게 애정을 주면서 스토리를 더욱 긴박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일단 처음부터 뤼팽은 자신의 부하들이 세운 계획을 따르다가 다른 마음을 품은 부하들의 행동에 의해 경찰에게 포위당하고, 자신은 빠져나오지만 부하들이 잡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부하들 중 하나가 사람을 살해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 부하들 중 하나를 구하기 위해 아르센 뤼팽은 수정마개를 찾는 일에 매달린다. 그 수정마개 속에는 파나마 운하 스캔들에 가담한 명단이 있고, 이를 손에 넣는다면 그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이용하여 부하들을 구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를 손에 넣고 권력을 마구 부리는 영악한 하원의원 도브레크와 이러한 사실들을 파헤치고 수정마개를 빼앗으려는 뤼팽의 대결! 도브레크는 아마도 '813'의 범인과 더불어 가장 뤼팽을 괴롭힌 상대가 아닌가 싶다. 수정마개를 왜 부하들이 찾으려 했는지, 그 안에 있는 명단이 무언지, 그 명단으로 도브레크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 마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로 이어지는 뤼팽의 물음과 그 물음을 해결하는 과정이 짜임새 있고 독자들을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비록 활자지만 영화처럼 눈에 장면들이 그려지는 스토리텔링은 일반 영화와는 다르게 절로 상상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뤼팽은 홈즈와 다르게 실패를 겪을 때마다 크게 탄식하고, 성공을 거두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기쁨을 감추지 않는 프랑스인의 전형이다. (이렇게 말하면 편견일라나..) 이는 뤼팽의 수정마개를 좇는 과정을 그의 감정을 같이 느끼면서 스토리의 고저를 함께 하기에 정말 스릴 넘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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