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보급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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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작년 말일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집었고, 설 연휴 때 사흘 간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세간의 엄청난 관심거리가 되기 전부터 애플 제품은 단 하나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적이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히 부끄러운 일인 듯 했다. 책을 읽은 지 약 3달이나 지난 후에 굳이 책의 감상평을 쓰는 이유는 하도 글을 안 쓰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바꾸어 보자는 의도도 있으나, 그 3달 사이에 10권 이상의 책이 그냥 스쳐 갔다는 점에서 확실히 '스티브 잡스'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스티브 잡스에 관심이 없었고, 이분법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쪽에 서 있었다.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기업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는 놀라웠지만, 전자제품, 더 나아가 과학 기술 자체를 브랜드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안 그래도 의류나 악세사리류 등의 명품 브랜드들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쓸데없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지니게 하는 현 세태에 현기증을 느끼는 판국에, 전자 제품까지 그렇게 된다니. 특히나 각종 명품에 눈이 가장 먼저 뒤집히는 사람들이 일본인과 한국인이라고 했던가. 소위 '앱등이'라는 무조건적인 애플 신봉자와 그들과 맞서는 인터넷 워리어들, 맥은 쓸 줄도 모르면서 사과 마크를 슬쩍 보인 채 맥북을 들고다니는 종속적인 사람들. 이런 것이 보기 싫었다. 그냥 새로운 기술이 탑재된 제품이 나오면 그것을 즐기고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만을 생각하면 너무 무딘 것일까.

즉, 스티브 잡스는 과학 기술을 정말 사랑하는 공학자가 아니라 장사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기업의 첫째 덕목은 물건을 팔아먹고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지 잘 안다. 그렇지만 기술에 대한 respect가 좀 없다고 느꼈다 해야하나. 책을 읽고 나서 잡스가 장사꾼이라는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하지만 지금껏 늘어놓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조금 완화되었고 배울 점 역시 찾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히려 괜시리 내가 큰 변화를 이끌어 냈던 잡스에게 respect를 보내지 않았던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책은 잡스 신봉자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을 것 같다. 내가 보아도 잡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호감을 받았는데 그의 팬들은 훨씬 더할 것이다. 필자는 <타임>지의 편집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히 잡스의 괴팍하고 결코 사회적이지 않아 보이는 그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그는 사람들을 잘 이끌었고, 그 마력이 이 책에서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이 책을 읽어도 잡스를 실제로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잡스의 리더쉽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그의 괴팍함의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고 변덕을 부리기 일상이며 남의 아이디어조차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뻔뻔함은 세상에 어떤 사람도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항상 드림팀이 있다. 참 이건 보면서도 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남아있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이러한 점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무나 특별한 삶을 살았고, 정말 기이한 인간 관계를 지녔기에 그 어떤 픽션보다 재미있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동시에 리더쉽 측면에서는 잡스에게 배울 것이 별로 없다. 그의 리더쉽은 타고난 점과 더불어 운이 좋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의 리더쉽을 배우고자 괴팍함을 따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좋은 점만 따라해보자니 대체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특히나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인물상이다. 게다가 어설프게 이런 리더쉽을 펼쳤다가는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만큼의 능력을 갖추었을 때 이 모든 관계의 아귀가 맞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의 리더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는 거칠게 사람들을 다루면서, 아래 사람들 역시 자신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좋아한 듯했고, 이 점이 다양한 의견을 사람들이 쉽게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를 통해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목적 의식이 고취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점을 굳이 잡스처럼 이끌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운이 따랐다고 말하는 점은 그가 좋은 사람들과 시작을 함께 했고, 그들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처음 애플을 공동 창업했던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잡스 역시 없었을 것이다. 잡스는 프로그래밍을 못 한다 했다(이 내용을 보고 장사꾼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워즈니악이 초창기 애플 제품을 다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잡스는 그것을 팔러 다닌 것뿐이다. 애플을 창업하고 난 후에도 그가 쉴새 없이 들들볶는 같은 부서의 팀원들 역시 그에게는 행운의 사람들이다. 글로만 읽은 느낌으로는, 그의 성격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견뎌내면서 동시에 훌륭한 능력까지 갖춘 사람들을 곁에 두었으니 이 어찌 운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획일화된 기업 구조를 갖고 이에 맞추어진 책 교육받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잡스가 그러한 기회조차 잡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기술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피부로 느낄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공학자들은 그냥 기계 취급하고 오히려 디자이너들이나 마케팅맨들을 더 중용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확실히 기술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커머셜 광고, 다른 기업과의 관계, 배포 과정, 신제품 발표회, 포장 등. 이러한 것들이 애플 기업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높여주었고, 하나의 명품 브랜드처럼 만들어 준 것이다. 애플 전문 매장인 프리즈비나 앱스토어 등은 놀라운 마케팅 전략이었고 성공한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특히 검정색 터틀넥으로 표상되는 그의 신제품 발표회는 딱딱한 기업의 제품 설명서 낭독이 아닌 기승전결이 있는 그의 쇼였다. 이를 통해서 잡스가 일반인들이 과학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한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케팅이나 디자인도 기술만큼 중요하다, 이 점만 인지해서는 사실 겉핥기만 한 수준이다. 그의 위대함은 도전 정신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창의성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 창의성이 도전 정신에서 온다고 본다. 사실 잡스가 직접 관여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아이콘 형식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타 회사에서 구상해 놓았던 아이디어를 보고 이를 실용화 시킨 것이고, 아이팟에 달린 원형 스크롤 역시 애플 사원이 제안한 것이며, 프리즈비의 탄생도 다른 건축가의 작품이다. 최근 애플이 내놓은 siri 기능 역시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기술을 사들여 장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이 주변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었고,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컴퓨터 만드는 사업으로 시작하여, 음악 산업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애플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에 픽사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관여하고, 최종적으로는 휴대폰 시장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놀라운 개혁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iTV를 출시할 것이라는데, 지금은 잡스가 세상을 떴지만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잡스로부터 시작되었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공학으로 시작하여 의류 사업도 하고 건축 사업도 하고 요식 사업도 하고 호텔 경영도 하며 모든 사회를 움켜쥐려는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단지 자신들의 사업 간의 유려한 소통을 터 놓고 자신들이 사회 전반을 움직이려는 야심에 의한 것이고, 잡스의 새 사업 진출은 그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보았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자신이 보았을 때 더 좋은 산업을 만들 수 있는데 정체되어 있는 듯한 산업에 뛰어들어 자신이 구상하던 일들을 직접 해내는 것이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잡스와 같은 경영인이 나올 수 없는 교육 구조, 산업 구조라며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단지 이러한 의견들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책만 파고드는 교육 정책하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눈치만 보며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는 세태는 말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내가 공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은 잡스의 정말 세세한 일거수일투족, 필요없을 것 같은 이야기까지 다 다루어 그의 삶을 영화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의 역동적인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개인 몫이지만, 다양한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며 삶인 것 같다. 특히 이공계열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욱 흥미가 가는 것 같다. 물론 단순히 재미로만 읽기에도 훌륭한 책이다.

아, 글을 좀 짧게 쓰는 법을 익혀야 겠다.
[출처] <책> '스티브 잡스'를 읽고|작성자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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