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6년간 사귀었던 국어교사와 작가의 재회.
추리처럼 밝혀지는 만남과 그 사이의 비밀스런 이야기들.
단숨에 책을 읽었습니다. 책에도 호흡이 있어서 끊어 읽는 경우가 많은데 [국어교사]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2~3시간만에 다 읽었습니다. 일단, 소재가 흥미롭습니다. 16년간 사귀었던 국어교사와 작가와의 재회라니. 서로의 삶도 궁금하고 어째서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들은 다시 만나 쌓였던 오해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이 책은 독일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독일에서 유명한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상이겠지요? 처음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국어교사와 작가. 두 사람의 만남, 헤어짐. 그리고 재회.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연애소설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읽었습니다. 여자의 이름은 마틸다, 남자의 이름은 크사버입니다. 마틸다는 크사버를 열렬히 사랑했고, 크사버도 마틸다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티브는 각각 달랐습니다.
크사버의 모티브는 [허영]이었습니다. 작가가 되어 글을 쓴다는 지적 허영이 좋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상을 타는 영예,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보내는 노골적인 숭배를 좋아했습니다. 마틸다도 작가인 크사버와 사귄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고요. 이어, 마틸다의 영감을 받아 3부작을 출간하여 작가로 유명해지는 크사버.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자는 마틸다의 바람과는 달리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크사버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전개됩니다.
크사버는 아이를 원치 않았기에 국어교사 마틸다와는 16년을 사귀고 헤어지게 됩니다. 마틸다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거든요. 헤어지고 나서 훗날 뉴스에서 크사버가 다른 여자와 결혼 후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에 마틸다는 충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낳은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납치사건.
상상치 못할 일들로 둘 사이의 오해는 더욱더 커지게 됩니다. 좋지 않은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낳아 눈덩이처럼 부풀어오릅니다. 책 속에 사건 전개가 빠르고 속도감이 있어서 전개 자체를 방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등장인물도 간단해서 이야기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기민한 마틸다의 예지력과 크사버의 허영이 만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치닫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때로는 눈을 멀게 하고 좋은 것들만 보게 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좋았던 면도 점점 좋지 않은 이유들로 바뀌게 됩니다. 마틸다와 크사버의 사랑도 그러했겠지요. 궁극적인 모티브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공통적인 모티브는 문학에 대한 열정, 사랑, 이야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소설 3부작을 쓰고 유명해질 수 있었지요. 하지만, 출판사에서 크사버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게 되고 고스란히 크사버에게만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마틸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더군요. 사랑했던 사람이 마틸다와 헤어지고 더 잘 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을까요, 미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나마 국어교사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랑스런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슬픔을 극복해 나가려 노력했던 마틸다. 크사버의 허영을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여자와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는 작가 크사버를 (뉴스를 통해) 보며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틸다의 마음을 조금만 알아줬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싶네요. 흐르는 강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더군요.
국어교사라는 제목과 표지. 왼쪽에는 유아차와 크사버의 모습. 오른쪽에는 술과 권총, 그리고 저택. 둘이 함께 했던 책과 나눈 편지들. 어쩜 이렇게 표지도 잘 그려냈는지 싶습니다. 아마도 이 책에 푹 빠진 북 표지 디자이너의 센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말에 책에 푸욱 빠지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어교사의 스테레오 타입과는 거리가 있으니 유의하시고요)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