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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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탁월한 묘사력과 상상력으로 놀라움을 안겨 주는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이다. 전작인 <종의 기원>에서는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들며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보노보라는 영장류의 행태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야기는 두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동물 연구자이자 사육사인 이진이와 집에서 쫓겨나 부랑자 신세로 살아가는 김민주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두 사람의 과거를 회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독자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늘 그랬듯 정유정 작가는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촘촘히 채워 넣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진이가 상대방의 언어와 행동을 분석하여 심리를 읽어내는 장면을 자주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며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집안에나 한 명 쯤 있으며 어디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민주 같은 인물도 그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진이/지니의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데, 이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조건이나 능력만으로 사람을 쉽게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함을 꼬집는 것도 같았다.

작중에도 언급되지만 보노보 지니의 행동과 표정을 상상할 때 영화 <혹성 탈출>의 장면이 자주 떠올랐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의 꿈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에서도 여러 소설이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비록 기시감이 든다는 것은 아쉽지만 누가 정유정만큼 이런 소재들을 잘 요리하여 개연성 있게 엮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인간답다’ ‘인간적이다’ 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되뇌여 보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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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나는 내 머릿속 거울로 아이의 머릿속을 비춰봤다. 먹고 싶다는 욕망과 잡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시끄러운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 해결법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먹고 싶다는 욕망이 공포를 이길 때까지 잠자코. 서로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정적의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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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누군가와 같이 살아보는 경험을 거치고서야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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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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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핫! 뜻밖의 혜민스 디스.

요즘 나의 별명은 ‘망원동 혜민스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내놓은 뒤 결코 멈추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속세를 질주하고 계신 혜민스님처럼, 나도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내놓고는 좀처럼 힘을 빼지 못한 채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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