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탁월한 묘사력과 상상력으로 놀라움을 안겨 주는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이다. 전작인 <종의 기원>에서는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들며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보노보라는 영장류의 행태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이야기는 두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동물 연구자이자 사육사인 이진이와 집에서 쫓겨나 부랑자 신세로 살아가는 김민주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두 사람의 과거를 회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독자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늘 그랬듯 정유정 작가는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촘촘히 채워 넣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진이가 상대방의 언어와 행동을 분석하여 심리를 읽어내는 장면을 자주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며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집안에나 한 명 쯤 있으며 어디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민주 같은 인물도 그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진이/지니의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데, 이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조건이나 능력만으로 사람을 쉽게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함을 꼬집는 것도 같았다. 작중에도 언급되지만 보노보 지니의 행동과 표정을 상상할 때 영화 <혹성 탈출>의 장면이 자주 떠올랐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의 꿈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에서도 여러 소설이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비록 기시감이 든다는 것은 아쉽지만 누가 정유정만큼 이런 소재들을 잘 요리하여 개연성 있게 엮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인간답다’ ‘인간적이다’ 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되뇌여 보게 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