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누군가가 내 존재 안의 결핍이라는 자각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혼자‘라는 것과 깊이 상관되는 일이다. 우리 각자가 ‘혼자‘가 아니라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다. 우리 각자가 혼자라는 자각, 결핍의 존재라는 것, 그리고 실존적 외로움은 타인과의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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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기제의 복잡성

게다가 사람은 다른 기제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상위 기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숲 속을 거닐다가 갑자기 굶주린 사자와 잘 익은 장과가 가득 달린 덤불과 매력적인 잠재적 배우자를 만났다고 상상해보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장과와 잠재적 배우자를 포기하더라도 일단 사자를 피하고 보자고 선택할 수도 있다.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사자를 피해 달아나기 전에 일단 장과를 한 움큼 챙기려고 모험을 할지도 모른다. 진화한 심리 기제들은 분명히 서로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다양한 순서로 켜졌다가 꺼진다. 사람이 진화한 상위 조절 기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그것은 추후의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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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세 가지 이론 창조론, 생명의 씨앗설, 자연 선택론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경이로운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서 유일한 과학적 이론이다. 또,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포함해 복잡한 적응 기제-굳은살을 만들어내는 기제에서부터 큰 뇌에 이르기까지-의 기원과 구조를 설명하는 능력이 있는 과학적 이론 중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예측을 틀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요컨대, 어떤 진화 이론의 평가는 증거가 얼마나 누적되느냐에 좌우되며, 어떤 한 가지 예측에 좌우되지 않는다. 진화 가설은 정확하게 기술한 것이라면 검증 가능성이 매우 높고, 거기서 도출된 예측을 증거로 뒷받침하는 데 실패하면 틀렸다고 쉽게 반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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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 여성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남성들은 똑같은 인류애를 발휘해 오래전부터 신음하며 처참한 환경에서 최하층 인간들과 뒤섞여 지내는 여성들의 관대한 보호자로 나서야 한다. 끊임없이 종속당해왔던 여성들의 불행이 나를 부추겨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자선의 집을 만들어줄 것을 국가에게 요구하도록 한다.

<여성의 권리>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수 있는가? 그대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건 여자다. 여자에게서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빼앗지 말아 달라. 말해보라. 나의 성별을 억압하는 지상 최고의 권한을 누가 그대에게 주었는가? 그대의 힘인가? 그대의 재능인가? 창조주의 지혜를 살피고 그대가 닮고 싶어 하는 위대함으로 가득한 자연을 들여다보라. 그런 후에 이토록 전제적인 제국의 예를 들 수 있으면 내게 알려달라.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고 원소 체계를 들여다보고 식물을 연구해보고 분화된 물질의 모든 변형 상태를 관찰해보라. 이렇게 방법을 알려주니 그대는 확실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찾고 뒤져서 자연 상태에서의 성별을 구분해보라. 성별은 도처에서 섞인 채 자연이라는 불멸의 걸작을 위해 조화롭게 협력하고 있다.
이런 예외의 원칙을 꼴사납게 고수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계몽과 통찰의 시기에 더없이 지독한 무지 속에서 이상하고 맹목적이며 학식으로 잔뜩 겉멋 든 퇴보한 남성은 모든 지적 능력을 갖춘 특정한 성을 전제군주처럼 통솔하려 든다. 혁명을 향유하고 평등의 권리들을 주장하면서 그 이상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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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 - 알리스와 샤를로트, 르노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박정연 옮김 / 팝툰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만화가 바스티앙 비베스가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내놓은 데뷔작이다. 작년에 비베스의 대표작인 <염소의 맛>과 <폴리나>를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이 작품에도 흥미가 생겼다.
작가는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만화는 별로 읽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쩐지 명암의 표현이나 (영상으로 치자면) 시퀀스, 쇼트의 구성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했다.
자유분방한 걸 넘어서 방탕해보이기까지 하는 18세 아이들의 치기가 답 없어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 와중에 그녀(들)에게 이끌려 스토킹(으로 보이는 행동)까지 하는 26세 청년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한다. 딱히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청춘의 들끓는 감정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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